“학생·청소년 통제는 수동적 노동자 양성 과정”

▲ 만화책 `페르세폴리스’ 중(저자: 마르잔 사트라피, 출판사: 새만화책).

 “네 치마길이 비정상이담”

 “이때다 싶으면 풀었던 머리 묶는 여자”

 “울 애기 무릎 보이면 옐로카드 줄거야! 넝담~ㅎ”

 “치마 봐라 치마 봐”

 “네 머리 꼬불꼬불 취업길도 꼬불꼬불”

 작년 9월, 광주 한 고교에서 있었던 등교길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이 들었던 피켓의 내용이다. 이 학교의 교장은 캠페인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렇게 썼다.

 “본교는 학교에서 3년간 직장생활에 대한 다양한 것들을 익히고 나가야 하는데 공부뿐 아니라 말씨, 인사 규율 준수 그리고 단정한 옷차림과 용모 등을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나름 기준을 정해 지켜가고 있다. 선생님들께서 사랑과 친절 그리고 배려로 지도하는 속에 학생들은 몰라보게 멋진 여성으로 변모해감을 느낀다.”

 여러 사람들의 공유와 비판으로 지금 해당글은 볼 수 없다.

 

 학생이 결정할 영역, 학교 집단이 결정

 

 캠페인의 주체가 학생이든 교사든, 교칙을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만들었든 셋 중 하나가 독점적으로 만들었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엄연히 학생 개개인이 결정할 영역을 학교라는 집단이 통제하는 것이다. 용의규제와 인사예절 뿐 아니라 핸드폰 규제, 강제학습 등 수많은 생활 규제가 학생(청소년)에게는 유독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생과 청소년에 대한 생활 규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흔히 탈선과 범죄를 예방한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실제 규정들은 범죄 예방과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는 사람들의 범죄율이 넉넉한 옷을 입는 사람들에 비해 높다’는 말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 범죄 외, 어른들에게는 허락되지만 청소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행동을 탈선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규정을 안 지키는 것이 곧 탈선이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별로 논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만화 페르세폴리스(마르얀 샤트라피 씀)의 한 장면이다.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내 바지가 충분히 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이 만화의 배경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통치하는 이란이다. 정권을 학교로 , 베일을 넥타이로, 채찍을 회초리 혹은 벌점으로 바꾸면 바로 우리나라 학교의 이야기가 된다. 거기에서 학교를 회사로, 회초리나 벌점을 징계로 바꾸면?

 학생과 청소년에 대한 통제는 곧 수동적인 노동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두발·용의·핸드폰에 대한 규제와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 머무르도록 하는 명령은 당하는 자로 하여금 위축되게 하고, 근본적인 문제 역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갑질 사건과 함께 여승무원들에 대한 용의 규제, 핸드폰 규제가 이슈가 된 바 있다. 여성 승무원들에 대한 용의규제는 아름다운 외모와 성적인 매력을 요구한다는 것 외에는 여학생들에 대한 규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 승무원들의 용의규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학생 용의규제 역시 정당화 한다. “(여성 승무원 용의규제를 옹호하며)우리는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복장과 조직의 경쟁력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인들을 고객으로 글로벌 경쟁을 해 승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성 경영학과 교수·한국항공경영학회장. 한국일보 보도)

 

 재벌 갑질 분노만큼 일상 생활 돌아보길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광주·인천 등 소수 지역에서 두발/용의 규정을 완화했다. 자유화가 아닌 자율화로 학생들이 협의해서 규정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언론은 `사실상 자유화’라고 보도했지만 사회적 시선과 교사 및 학부모의 압박으로 진정한 자유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작년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학생 모두의 의견을 받는 게 아니라 학생회 구성원에 교사 몇명이 더해진 회의에서 정해버리더라. 갈색으로의 염색은 허용하고 하복 바지가 생기고 치마 길이가 몇 센치 줄어드는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학교가 학생의 사적 영역을 통제하는 것이 옳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느냐’정도의 타협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생활 규제와 함께 학생-청소년에 대한 생활 규제 역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각각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상품적 경쟁력 혹은 ○○(학생·서비스 업종 등)의 본분, 학교나 직장/브랜드의 명예 따위를 이유로, 현재의 혹은 미래의 생계를 빌미로 통제당해서는 안된다. 재벌 3세의 무릎꿇리기 갑질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반만큼이라도 보이지 않게 학생과 노동자들을 무릎꿇리는 생활 규제에 분노한다면 멀지 않을 것 같다.

밀루



`밀루’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지부에서 활동 중이며, 아수나로가 발행하는 청소년신문 `요즘것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이지만 학교는다니지 않고, 가족과 따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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