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는 감동도 의사소통 권리가 보장돼야 가능하다

▲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을 안아주는 모습. 모든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 이 장면은 장애인들과는 소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계돼 아쉬움을 남겼다.

 # 1-전야제

 어둑어둑한 저녁 금남로에서 청각장애인 두 분과 비장애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5·18 전야제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처럼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야 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무대에서 멀리 자리잡고 앉으면 수화 통역사가 잘 안 보일텐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무대 좌우로 굉장히 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대 위에도 넓은 스크린이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멀리 자리잡고 앉아도 커다란 스크린을 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으로 전야제가 시작되었고 무대 위로 사회자가 올라왔습니다. 수화통역사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대 양쪽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 어디에도 수화통역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날은 어두웠고 무대는 멀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은 밝게 빛났지만 수화통역사의 모습은 희미했습니다.

 “왜 화면에 수화통역사를 비추지 않는 거지?”

 설상가상으로 전야제의 대부분이 공연으로 채워졌고 노래 공연이나 퍼포먼스 가릴 것 없이 공연 중에는 수화통역이나 문자통역이 전혀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전야제에 온 수화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지인을 만나 전야제 뒷담화를 나누며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 2-5·18 기념식

 5월18일 저녁 뉴스는 5·18 기념식에서의 아버지의 사망 날짜와 자신의 출생 날짜가 같다는 어느 유가족을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새 대통령 모습과 몇 년만에 재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감동적인 소식들이 전해졌습니다. 관련 뉴스들이 많았는데 제 이목을 끈 소식은 5·18 기념식의 통역을 했던 수화통역사가 통역 도중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에게 다가가 대통령이 안아주는 장면을 통역하는 과정에서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5·18 기념식 이후 SNS에서 지인들이 올리는 글에 감동적인 5·18 기념식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 3-‘몸짓’과 ‘노래’ 공연, 그 다른 듯 같은 것에 대하여

 5·18 전야제에서 함께 갔던 청각장애인 두 분과 시각장애인인 저는 서로에게 이 자리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혼굿인 듯한 퍼포먼스와 구 도청 건물에 영상을 겹쳐 연출한 멋졌을 것 같은 장면이 시각장애인인 제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멋진 화음과 노랫말들이 청각장애인 두 분에게는 그저 지루한 시간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 차라리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노랫말’이라도 스크린에 띄워주지. 저 넓고 커다란 스크린에 수화통역사 좀 비춰주지…”

 통역 도중 눈물을 참지 못했던 수화통역사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전날 밤 전야제가 더욱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 4-의사소통 권리 보장은 선택 아닌 의무

 (법) 제21조(정보통신·의사소통 등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무) ①제3조제4호·제6호·제7호·제8호가목 후단 및 나목·제11호·제18호·제19호에 규정된 행위자, 제12호·제14호부터 제16호까지의 규정에 관련된 행위자, 제10조 제1항의 사용자 및 같은 조 제2항의 노동조합 관계자(행위자가 속한 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행위자 등’이라 한다)는 당해 행위자 등이 생산·배포하는 전자정보 및 비전자정보에 대하여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 경우 제3조 제8호가목 후단 및 나목에서 말하는 자연인은 행위자 등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개정 2016.2.3.>

 

 (시행령) 제14조(정보통신ㆍ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 제공의 단계적 범위 및 편의의 내용) ① 법 제21조제1항 전단에 따라 장애인이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여야 하는 행위자 등의 단계적 범위는 별표 3과 같다. <개정 2016.8.2.>

 ② 법 제21조제1항에 따라 제공하여야 하는 필요한 수단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각 호와 같다. <개정 2016.8.2.>

 1. 누구든지 신체적·기술적 여건과 관계없이 웹사이트를 통하여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보장되는 웹사이트

 2. 한국수어 통역사, 음성통역사, 점자자료, 점자정보단말기, 큰 활자로 확대된 문서, 확대경, 녹음테이프, 표준텍스트파일, 개인형 보청기기, 자막, 한국수어 통역,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장애인용복사기, 화상전화기, 통신중계용 전화기 또는 이에 상응하는 수단

 ③ 제2항제2호에 따른 필요한 수단은 장애인이 요청하는 경우 요청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제공하여야 한다.

 ④ 공공기관 등은 법 제21조제2항에 따라 장애인이 행사 개최하기 7일 전까지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한국수어 통역사, 문자통역사, 음성통역사 또는 보청기기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개정 2016.8.2.>

 - 출처 : 법제처(www.law.go.kr)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법인의 경우도 2013년 4월 11일 이후부터는 의사소통 권리 보장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률과 상관없이 5월 행사 만큼은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권리 보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18 전야제에서 더욱 아쉬운 점이라면, ‘예산’이 아니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의사소통 권리가 보장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로 수화통역사를 비추기만 했어도 그 큰 스크린으로 수화통역을 불편함 없이 제공 받을 수 있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무대 위 노래 공연의 가사를 띄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18년 5월에는 온전한 의사소통 권리 보장으로 5·18 전야제에서 청각장애인 참여자들도 지루함 대신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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