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1-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 ‘송곳’, 노조가 생겼습니다. 평소 사장의 막역한 신임을 얻던 이수인 과장도 노조에 가입합니다. 그런데, 노조에 우호적인 나라로 알았던 프랑스 기업의 프랑스인 사장이 노조 가입 이후 이수인 과장을 멀리합니다.

 처음으로 노조원 교육에 참여한 날, 이수인 과장은 손을 들고 노무사인 구 소장에게 질문합니다. 왜 노조에 우호적인 국가 기업의 사장이 노조를 싫어하는지 묻는 이수인 과장에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라고 답하며 구 소장은 덧붙입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선 그렇게 되는 거요.”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2-그래야 하니까 노조가 생긴 게 아닐까?
 
 이수인 과장이 노조에 가입하게 된 것은 인원 감축을 위한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모멸감이 느껴지도록 폭언과 강압적인 업무 지시를 내리며 스스로 그만두도록 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인력은 감원이 아니라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내려온 지시는 감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과장들은 직원들을 향해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메이크업까지 문제 삼으며 직원들을 못살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장들의 태도 변화에 직원들은 그저 의례 있는 일이려니 생각하며 견디려고 노력하지만, 목적이 분명했기에 폭언과 강압적인 지시는 계속되고 강도는 더해갔습니다.
 
3-드라마 속 모습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폭언과 강압적 업무 지시는, 현실입니다. 드라마 대본을 쓰는 작가가 상상한 것이 아니라 목격하고 접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모습입니다. 땅콩이니 물컵이니 하는 물건들과 ‘폭언’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건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을 보도한 뉴스 때문입니다.

 드라마 ‘송곳’, 형-동생하던 관계가 졸지에 징계 위원과 징계 대상 관계로 돌변했습니다. 협력 업체로부터 접대받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평소 형이었던 과장은 동생이라 부르던 주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징계 위원 자격으로 큰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책임을 덮어씌우려던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사람들이 공통의 억압을 공유할 경우, 특정한 종류의 기술과 공동의 방어 전략이 발달하죠. 만약 당신이 살아남았다면, 그 기술과 방어 전략이 효과가 있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다 공통의 억압을 경험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경우, 그들 사이에 매우 절박하고 깊은 약점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흑인 여성과 흑인 남성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그런 거예요. 백인 여성과 백인 남성들은 갖지 못한 우리만의 무기를 함께 만들어 냈는데, 차이를 둘러싸고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 억압의 모습은 다르지만, 약점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은 똑같은 거죠. 공통의 억압을 거치면서 공통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함께 비밀리에 무기를 만들어 내지만, 그 무기가 서로를 향해 쓰일 수도 있는 거예요.-‘시스터 아웃사이더’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징계위원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평소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압력을 함께 털어놓고 같이 대응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상사와 회사로부터 받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대응하기 위해 함께 했던 일들이 징계 사유로 돌변해 목을 겨누는 무기가 된 것처럼 보여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4-현실, 동지는 못되도…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 ‘돈 때문에 만들었다.’라고 말했다지만, 밤에도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하면서 야근 수당이나 특근 수당을 달라고한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든 노조였습니다. 단체 협약을 만들고 싶어 했고고, 그 협약으로 폭언에 가까운 말과 갑자기 떨어지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를 개선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협약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노조에 가입했던 이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습니다. 대표는 회사를 떠난 이들 중 10년 가까이 함께 일한 한 사람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들에 ‘책임은 대표가 지는 것.’이라 말하며 든든한 배경이 되었던 그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고발하는 모습에서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과 앞서 인용한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한 대목이 연상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강산이 변할 만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고민도 기쁨도 함께 나누던 이들 사이에 모르쇠로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그이들을 또 다른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창한 봄날, 드라마 ‘송곳’을 정주행할 때처럼 고발하고 고발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운 요즘입니다.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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