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자기만의 ‘특권 목록’을 적어보면 어떨까?

▲ 지난해 9월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제를 반대한 집단의 폭력으로 참여 단위의 깃대가 꺾이는 등 물질적 피해가 발생했다. (출처=인천퀴어문화축제 측이 올린 입장문http://sqcf.org/notice/176198)
# 1-특권의 목록들

 -내가 승진에 자꾸 실패한다면 그 이유가 성별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밤에 공공장소에서 혼자 걷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책임자를 부르면 나와 같은 성별의 사람을 만날 것이 거의 분명하다. 조직에서 더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운전을 부주의하게 한다고 해서 나의 성별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많은 사람과 성관계를 한다고 해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외모가 전형적인 매력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며 무시할 수 있다.
 (출처 : Barry Deutsch, “The Male Privilege Checklist: An Unabashed Imitation of an Article by Peggy McIntosh,” https://is.gd/mq9Y7u)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소개된 ‘남성 특권’ 목록 중 일부다. 밤에 혼자 길을 걷거나 외모에 대한 평가 항목은 직접 느끼는 항목이고, 운전과 성관계 항목은 입에 담기 거북한 단어와 연결되며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항목이다.
 
 -나는 내 자녀의 안전을 위해 구조적 인종주의를 의식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한다고 사람들이 내 피부색을 가지고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인종 집단을 대표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일이 없다.
 -내가 책임자를 부르면 거의 틀림없이 나와 같은 인종의 사람이 나올 것이다.
 -나는 내 외모, 행동거지, 냄새로 나의 인종이 평가된다는 사실에 신경쓸 일이 없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나와 같은 인종의 사람이 수용되고 허용되는지 질문하지 않고 많은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리더로서 신용이 낮다면 그 이유가 인종 때문은 아닐 것이다.
 (출처 : 혐오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 카롤린 엠케 저 / 정지인 역 | 다산초당 | 2017년 07월 18일)
 
 이건 책에 소개된 백인 특권 목록이다. 이 가운데 ‘내가 속한 인종 집단을 대표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일이 없다.’와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나와 같은 인종의 사람이 수용되고 허용되는지 질문하지 않고 많은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장애인과도 연결되는 항목으로 느껴졌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이런 질문을 받는 건 간혹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약 좀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 가능할까요?”
 
 이런 말을 서두에 꺼내는 경험 또한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제를 반대한 집단의 폭력으로 참여 단위의 깃대가 꺾이는 등 물질적 피해가 발생했다. (출처=인천퀴어문화축제 측이 올린 입장문http://sqcf.org/notice/176198)|||||

# 2-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특권을 가졌다는 신호가 있다면 큰 노력 없이 신뢰를 얻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들이다. 나에게 알맞게 주변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안한 상태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평소 안 다니던 곳에 갔을 때 일이다. 자주 가던 곳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는데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계속 물어봐야 했다. 내가 가려는 곳과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등등 평소 익숙한 공간에서는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다. 분명 이정표가 곳곳에 붙어있었지만, 익숙한 공간에서는 굳이 볼 필요가 없었고 낯선 공간에서는 볼 수가 없어 무의미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때 출신 국가나 말투, 외모 등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제가 시력이 좋지 않아서 여쭤보는데요’라는 말을 덧붙였을 뿐이다. 만약, 내가 이주노동자였다면 어땠을까? 여성이었더라도 지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그렇게 쉽게 물어볼 수 있었을까?
 
 다행히 함께 동행할 사람이 있어 크게 헤매거나 고생하지 않은 날이었지만, 앞서 인용한 ‘특권을 가졌다는 신호’와 겹치며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 경험이다. 고작 한 정거장 거리만큼 다른 곳에 서있었을 뿐인데 묵직한 느낌으로 남는다.
 
#3-폭력으로 얼룩졌던 2018년 그리고 2019년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혐오세력의 폭력은 밤늦도록 끊이질 않았고, 경찰은 이를 방관하며 오히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측에 행사를 빨리 끝낼 것을 종용했습니다. 20시가 넘어서야 경찰은 혐오세력으로 둘러싸인 비좁은 길로 축제의 참여자들을 몰아넣고 행진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혐오세력의 폭력에 노출되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저희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참여 단위의 깃대가 꺾이는 등 물질적 피해 또한 심각했습니다.’
 
 (출처 : ‘입장문’ 인천퀴어문화축제를 폭력과 불법으로써 방해한 혐오세력과 방관으로써 이를 도운 경찰은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 https://is.gd/lDhw0C)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2019년 8월 31일 인천에서는 제2회 인천 퀴어문화축제가 있었다. 위 입장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지난해 인천 퀴어문화축제는 혐오 세력의 폭력으로 얼룩지며 축제가 온전히 진행되지 못해 걱정됐다. 지인들 중 몇 명도 함께 할 거라는 소식에 다치지 않을까 더 마음이 쓰였다. 다행히 작년과 같은 극심한 폭력은 없었던 것 같았지만, 여전히 혐오 세력은 찾아왔다고 했다.
 
# 4- 혐오 없이 축제 정도는 열 수 있는 나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결심하는 대통령 권한 대행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음을 흔들었던 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가 종영됐다. ‘차별금지법 정도는 제정할 수 있는 나라’는, 20대 국회에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저 축제하기 좋은 계절에 혐오의 말을 ‘사랑’이란 단어에 덧대는 이들만이라도 없으면 하는 바람이다.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하기 위해서 퀴어문화축제 장소로 향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잠시 ‘이성애자 특권 목록’을 적어보면 어떨까?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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