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의 그 ‘거리’에서 누군가는 잠깐 희망을 봤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저마다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교환하던 눈빛에서다. 어느 한적한 시골의 거리에선 과거의 번성을 기억 속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을 잇고 마을을 이었던 벅적했던 그 거리다. 그러나 그런 거리들은 모두 쇠락하거나 사라진다. 전라도닷컴이 거리 거리 마다 품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배달해왔다. 이번 전라도닷컴 6월호의 주제는 ‘거리’다.

전북 임실 강진면 갈담의 거리는 “점방 나이 50년쯤은 돼야 비로소 점방 대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가게”들이 도열한 “천연기념물 같은” 거리다.

삼성상회, 뽕나무미용실, 백년철물, 호남슈퍼, 광명당·광명농약사, 중앙이용원…. 40~50년 동안 거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의 주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많이 냉길라고 안허믄 돼야”가 장사의 철칙인 이들. 이유는 어디에서 “서운하게 주드라 그 한 마디 나오믄 아홉시 뉴스맨키로 전 군민이 다 알게 돼야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잘가가던 그 거리는 이제 “개미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한적한 거리. 가게 주인들이 모두 하나같이 말하는 건 한 때는 북적거렸던 거리의 잘나가던 때다.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함께 얼굴 맞대고 서로 기대고 산다. “별나게 부자도 없고 별나게 가난한 사람도 없다”는 마을이다.

한 때는 번성했던 거리는 또 있다. 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영산강이 하구언으로 막히기 전의 이야기다. 장어 웅어 복 조개가 명물이었던 구진포에는 아직도 장어 요리집들이 즐비하다. 장어는 없지만 옛 요리비법은 여전해서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구진포에서 옛날처럼 장어를 잡을 수는 없다. 구진포에서 마지막 남은 장어잡이 어부 김재석 씨는 요즘 하루에 20마리의 장어를 잡는다.

장흥 칠거리도 옛 명성을 기억으로만 불러낼 수 있는 거리다. “그 길을 따라나가면 안 닿는 장흥 땅이 없고 반대로 길을 따라 들어오면 모두 칠거리로 집결하는” 거리다. “오늘 억서 만나끄나” 물음에 “걱서 만나” 하면 다 통하는 ‘칠거리다방’이 지금은 없다. 그러나 거리만큼 오래된 사람들은 여전히 그 거리와 함께 산다. 그 세월처럼 “낮짝 꼬락서니만 봐도 좋은지 궂은지 딱 감이 오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연과 기억을 간직한 광주 학동 팔거리는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지도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가 삶의 터전인 이들도 있다. 노점상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도 만난다. 단속에 몇 번씩 자리를 옮겨야 하고 불경기를 가장 먼저 몸으로 체감하는 이들이다.

촛불이 흘러넘쳤던 거리를 그리는 촛불화가 윤세영 씨의 이야기도 있다. 촛불에 실었던 열망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그래서 언젠가 꽃을 피워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80년 5월 살아남았다는 부채의식으로 10년 동안 80년 5월의 금남로를 모형으로 완성한 김동선 씨는 “오늘 오월이 당도한 주소가 서글펐다”고 했다.

이번호에서는 문 열면 산이 걸어들어오는 장수 번암면 국포리 도장마을과 자연의 솜씨와 도편수의 안목으로 태어난 고창 홍의재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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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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