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근처에 산다는 45세 여성이 최근 들어 체중이 4㎏정도 줄고 피로감이 심하다면서 내원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피로 원인은 갑상선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갑상선과 간기능 검사를 하고, 본인이 초음파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검사한 결과 갑상선은 깨끗한 데 비해 의외로 간은 매질이 매우 거칠어서 간경변증을 의심해 볼 정도였다.

 “간이 좋지 않네요! 언제 간염 앓으신 적 있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때서야 환자분이 “저 B형 간염 보균자예요”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순히 B형 간염 보균자로만 알고 계셨지만 본인도 모르게 간염을 앓으신지 꽤 된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여성은 “6개월 전 집근처 병원에서 건강검진하다가 우연히 B형 간염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됐다. 지금까지 건강검진을 여러번 했는데 간이 안좋다고 지적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력을 물었더니 여동생이 20년 전에 급성 간염을 앓은 적이 있다고 하고 나머지 가족 중 큰언니가 B형 간염 보균자라고 조심스럽게 꺼내놨다. 스무고개 하듯이 하나하나 물으면 무슨 비밀이나 알려주듯이 이야기 하는데….

 여성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B형 간염 보균자라면 좋겠지만, 이미 간경변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도 컸다. B형 간염 활동성 유무와 현시점에서 치료가 필요한지 검사를 하고자 했더니 자기는 B형 간염 보균자이지 간염을 앓은 적이 없다라고 우기는 데 참 난감했다.

 본인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지만 B형 간염이 어떤 병인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의사로서, 또 간을 진료하는 전문의로서 정확히 진단해서 치료를 도와줘야하는 의무가 있었기에 진료를 계속했다. 자녀에 관해 물었더니 “큰 애가 고 3인데 얼마전 헌혈을 하려고 검사했더니 B형 간염 항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내 소견이 맞다면 큰애도 B형 간염 보균자일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음에 꼭 자녀를 데리고 오라 하고 환자를 보냈다.

 이 환자의 경우처럼 너무 자기 병을 감추려고 하거나, 자기 병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병을 떳떳하게 밝혀서 사회적으로 좋은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병으로서 본인의 잘못은 없는 것이다. 병을 알게 되었으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치료에 동참하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병은 마음이 반’이라고 했는데, 환자들은 치료에 적극 참여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협조해야 의사가 좋은 처방을 할 수 있다. 환자들은 일상생활을 밝게 또는 즐겁게 보내면서, 병은 멀리서 지긋이 그저 바라보듯이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너무 병에 얽매여 생활해도 않되고, 예의 환자처럼 부정하는 태도도 좋지 않다. 안수열 <서울 대치동 우리들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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