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가치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 인정받아”

▲ 붉나무의 오배자.

 산속에는 이미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나무에 열린 열매도 익어가고 있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머루와 다래, 쌉싸래한 묵을 생각케하는 도토리, 도깨비도 놀라게 한 개암도 익어가고 있다. 그뿐이랴,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조그만 풀씨도 노박덩굴 열매도 익어간다.

 가을 산길을 걷다보면, 먹을 수 있는 열매만 구별할 수 있어도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은 가을이 주는 혜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산길을 굽이돌아서니, 색다른 모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보인다. 저건 또 무슨 나무이며 무슨 열매일까. 가까이 다가서 보니 주먹만한 것부터 엄지손가락만한 것까지, 크기도 다양한 것들이 옹기종기 엉킨 채 매달려 있다. 붉나무의 충영이다, 오배자라고 하는.

 

 겉모습 보고 판단말라… 만병통치

 

 충영은 벌레혹이다. 곤충이나 선충 등이 식물의 잎이나 줄기 또는 뿌리에 기생하면, 그 자극으로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부분이다. 충영은 붉나무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개다래나, 때죽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나무에서 생긴다.

 오배자는 붉나무의 잎자루에 일종의 진딧물이 침입하여 그 자극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붉나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옻나무로 오해하여 꺼리는데, 아름답지 않은 모양의 충영까지 달려 있으니 조금은 흉측한 모습이다.

 세상에는 겉모습은 번드레하지만 속이 흉측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결코 겉모습으로 평가할 수 없듯이 나무도 마찬가질 것이다. 붉나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나무인지를 안다면, 겉모습 때문에 멀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붉나무의 오배자는 염료로 이용해 왔으며 잉크를 만들기도 했다. 식물성 염료이면서도 진딧물이 들어있으니 동물성 염료이기도 하다. 요즘은 웰빙과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배자 염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옷 한 벌쯤은 오배자 염색 옷을 입고 다녀도 좋을 것이다.

 붉나무의 효용은 약용에서 빛을 발한다. 오배자는 이질이나 설사, 만성장염, 당뇨 등의 치료약으로 사용되었다. 오배자의 가장 일반적인 대중요법은 입안이 헐었을 때, 오배자 달인 물을 입안에 머물고 있는 것일 게다. 붉나무의 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진은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붉나무 뿌리껍질이나 어린잎도 약으로 쓰였으니 붉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방송되면 몸값 상승…붉나무도 부상할까?

 

 붉나무는 염료와 약으로만 쓰이는 나무는 아니다. 소금이 달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붉나무의 열매에 끼어있는 하얀 가루를 입에 대면 짠맛이 난다. 그 가루로 김치도 담그고 두부를 만들기도 했다. 잊혀진 전통을 살리려는 사람들에 의해 붉나무 열매에 있는 소금으로 두부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소금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다. 붉나무가 그 소금까지 제공하니, 붉나무는 생명을 주는 나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김새로 보아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데, 실제론 전혀 다르다. 겉모습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붉나무의 가치가 돋보인다.

 요즘에는 야생화나 나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은 약초로서의 이름과 효능이다. 방송의 힘일 것이다. 어느 누가 방송에 나와서 어떤 약초로 효험을 봤다고 하면, 그 약초는 시중에서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한다. 얼마 전 붉나무에 대해 방송이 나왔다니, 붉나무도 이제 몸값이 올라갈 것이다.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던 야생화며 나무들이 방송 때문에 급격히 부각되고 있다.

 지금은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내면의 가치를 스스로 높여간다면 언젠가는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리라 믿는다.

설연수 < 숲해설가, 병영우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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