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 지나 가을, 나무가 쉰다

 산자락의 색깔은 아직 초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토리·밤은 묵직하고 튼실한 갈색의 열매들을 이미 모두 쏟아냈다. 숲에 사는 포유류들과 어치들은 추수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혹독한 추위로 겨우겨우 살아가야 할 겨울이 낼모레다. 놀고만 있을 순 없다. 계절을 앞서가는 나무들은 지난 가을에 저장해 둔 양분으로 싹을 틔어, 꽃피우고 열매 익혀 숲속 동물들에게 넉넉한 인심으로 잔칫상을 펼쳐 놓았다.

 초대 받았든 초대 받지 않았든 숲속 많은 구성원들은 잔치에 참여한다. 무사히 겨울을 살아 내야만 봄을 기약할 수 있다. 따뜻한 봄이 되어야만 먹을 게 있다. 충분히 양식을 비축해야 하는 가을날, 숲속은 조용한 움직임으로 소란하다.

 사람도 분주하다. 도토리에 삶을 기대어 사는 숲속 동물들이 있을 것이다. 숲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도토리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도토리를 비축하던 디엔에이가 지금도 우릴 도토리를 보면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히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숲을 벗어난 지 오래다. 나무들은 동물들을 살게 하고 동물들은 나무들을 곳곳에 이동시킨다.

 나무들과 동물들의 공생은 지구 구성원들을 살게 한다. 많은 생명이 나무를 향해 있다. 그 나무들이 이제 쉬려 한다. 숲속 구성원들의 삶을 살게 하던 나무가 쉬려 한다. 숲이 알록달록 노랑 빨강 갈색으로 표현한다. ‘난 곧 겨울잠을 시작할거야!’란다. 봄에는 꽃 잔치를, 가을에는 단풍 잔치를 벌인다. 나무가? 아니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봄에는 제주에서부터 꽃 잔치로 들썩이고 가을에는 설악으로부터 단풍소식이 들려와 산이 들썩일 정도이다.

 쉬려 하는 숲으로 찾아가 사람들은 쉬고 싶어 한다. 진정한 쉼이 숲에서 이뤄진다고 믿는다. 나도 그렇다. 다만 그들을 존중하고 싶다. 그들의 서식처를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집 안방에 말뚝 박으면 가만있겠는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쉼도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의 봄을, 대한민국의 가을을 지구로 확대시켜 보자. 지구의 봄이, 지구의 가을이 어떻게 번져 가는지를 위성의 눈으로 보자. 북반구의 봄이 위도를 따라 번져 가는 게 보인다. 북반구의 가을이 반대로 번져 가는 게 보인다. 그 곳에 그 나라들이 있다. 그 곳에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숲속 구성원들의 잔치가 보인다. 거대한 지구식물원이다. 그 식물원에 봄이 번져 가는 것이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 어느 곳에 어떤 식물이 싹을 틔우는지, 어떤 식물의 잎이 커 가는지, 어떤 식물의 꽃봉오리가 열리는지…. 가을도 마찬가질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이 아름다움이 정말 오래 갔으면 좋겠다. 먼 세대까지도 나눠 봐야 할 공공재다. 지구 식물원도, 대한민국 식물원도.

박계순 <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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