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에 잠긴 백양사.
-깨알같은 단풍잎, 지상의 별인듯

 가을의 도로를 차로 달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불쑥 눈에 들어오는 선연한 단풍잎에 눈길을 한번이라도 마주쳐보면 안다. 마치 도로 안으로 뛰어든 들짐승을 피하려는 운전의 급박성만큼 자연이 수놓은 단풍의 사태에 눈길 닿으면 이제 운전은 그만 두고 저 단풍안에 내 몸을 섞어보고 싶어진다. 내 몸의 붉은 모든 것을 토해내서 저 가을빛에 일조하고 싶은 순간을 비단 나만 경험했을까 질문하고 싶은 계절이다.

 간밤에 마셨던 술과 나눴던 얘기들이 꿈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통음의 가을날, 이러다간 이 가을도 놓치고 말지라는 조바심에 벌떡 일어나 마음 이끄는데로 가리라 하면서 심상을 스쳐가는 곳을 호명해 본다. 화순의 적벽, 모후산 유마사, 석곡의 반구정 습지, 임실의 회문산, 순창의 장구목, 강진의 석문, 지리산 피아골 등등. 많지가 않은 가을풍경안에서 강하게 유혹하는 곳은 장성의 백양사였다.

 

 벚나무 단풍으로 봄·가을 호응

 

 상상해보는 백양사의 가을은 이랬다. 춘백양, 추내장이라고 말하지만 백양사 초입의 나무들은 봄과 가을에 조응하며 식재되어 있다. 봄을 상징하는 벚나무와 가을을 대표하는 단풍나무가 함께 도열하며 사계절을 풍찬노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애기단풍의 모습은 앙증맞아 이런 단풍이라면 하루 왼종일 보아도 즐거울 것 같아진다.

 거기에 백양사의 숲길만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땅에서 가장 늙은 갈참나무 군락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넓직한 참나무의 잎에 들어오는 단풍도 멋스럽고, 잎새의 갈색과 7백년을 버텨온 나무의 검은 등걸이 보여주는 색대비는 그야말로 환상과 같다. 7백년간 잎새를 버려내며 굳건하게 서온 나무를 보면 참으로 초라한 인간의 행적이 또 스쳐간다. 고작 이것 살면서 아등바등 거리며 욕망에 사로잡히는 몰골이라니.

 이런 생각에 어지럼증이 들작시면 바스락 거리던 다람쥐가 소리를 지르며 종횡무진한다. 상수리 하나 건졌을 법한 다람쥐는 대여섯개의 식량창고를 소유하고 있다. 그곳을 향해 가는 길에 무언가의 방해물이 나타났다는 증거일 터다. 부지깽이도 바쁜 농사철이 지났고, 그곳 산문으로 가는 길섶의 들녘은 모두 비워져 있다. 농가 근처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익어졌고, 나뭇잎을 버린 감나무는 붉은 태양전구를 주렁주렁 메달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는 추녀 밑에 곶감을 걸어놓았다. 모빌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붉은 사파이어의 조합같이 보이는 풍경들도 결코 무심하지 않다. 상상과 경험속의 장성 백양사를 찾아 길을 이제 떠나보자.

 

 단감·대봉·곶감 …감 풍년

 

 아침 일곱시, 열코 이르지 않은 시간이다. 광주의 대기 온도 13도, 이 정도의 날씨면 백양사 근동은 10도 정도는 될 것으로 예견된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가다 1번국도를 탄다. 정말 들판은 비워져 있고 안개는 모락 거리며 올라온다. 서리는 아직 내리지 않았지만 습한 땅에 비추는 태양의 열기에 대한 반응이리라 여기며 아직 미세한 안개속에서 심연의 가을을 호흡해 본다. 가을 공기는 달작지근하다. 마치 홍시라도 먹은 것처럼 달달한 산소, 기온은 차갑다. 아직 장갑을 낄 계절은 아니지만 카메라의 금속과 닿으면 손이 싸늘해질 것이 예감된다. 헐렁한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가니 어느 새 백양사다. 장성호를 거쳤으면 더 깊은 안개를 만났을터인데, 약간의 아쉬움도 들지만 그래도 좋다. 독립된 나무로 단풍 물든 은행도 보았고, 잎새 떨군 감나무가 꽃등 달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멈추고 싶었지만 차를 멈출만한 공간을 도로는 허용하지 않는다. 하긴 사람이 걸을 길도 안주는 이 야박한 세상인데, 또 한번 차로 움직이는 고통에 허위적댄다.

 백양사에 닿았다. 길가의 가게들은 모두들 감 풍년의 장성을 얘기하고 있다. 곶감, 단감, 대봉 등등이 길가에 도열한다. 며칠전 순천역 앞에서 단감의 경매 현장을 본 기억이 난다. 10KG에 1만5000원 정도였다. 가지치기, 거름주기, 제초하기, 농약하기, 따내기 등의 노동을 생각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그런 헐값에 도시의 사람들은 농촌과 가을을 흡입한다. 고마움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차를 내려 일주문 앞에 섰다. 고불총림 백암산의 백양사. 맞다 백양사는 내장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 바위의 백암산을 병풍으로 두르고 탯자리를 삼고 있다. 본디는 백암사인 것을 나중에 정토사라고 했다가 조선 선조때 흰양이 나타나 설법을 듣고 제도가 되어 극락으로 가게 되면서 백양사라고 이름하였다고 전하는 곳이다.

 

 총천연색 대자연을 다 담을 수 없어

 

 불교의 곧은 전통을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백성들과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는 절답게 임진왜란때, 정유재란, 갑오농민혁명때, 민주화운동시기에 스님들이 해온 역할도 잊히지 않는 절이다. 이런 고풍스러운 곳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고 산문으로 들어선다. 온갖 단풍의 무리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운수납자 한분이 홀로 절집으로 걸어가신다. 사바의 사람들은 결코 혼자가 아닌데, 저 스님은 이 아침에 불붙는 단풍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묻고 싶어진다. 당연히 따라 붙을 말씀은 “화무십일홍”일 것 같다고 여기며 혼자 웃음지어 본다. 그럼에도 저 단풍들 눈에 쏙쏙 들어선다. 아직 가을인지 깨닫지 못하는 단풍나무도 보이고, 진즉에 몸을 비워버린 단풍나무도 보인다. 깨알같은 단풍잎이 지상의 별로 들어온다. 묵직한 둥치로 하늘을 떠받드는 갈참나무는 우주의 기둥 같다. 그 나무 뒤편으로 사철 푸른 비자나무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주인공이 될 채비를 하는 듯 하다. 점점 더 푸르러질 기세로 보여지니 말이다.

 경내까지 진입할 생각을 않고 걷다가 개울물에도 눈길 주고, 두 개의 보를 막아낸 곳의 징검다리도 걸어본다. 완연한 가을을 간직한 길과 산모롱이와 저기 하얗게 등불 밝히는 백암산의 정상이 낱개로 눈에 박힌다. 이제 부분 부분 보던 것을 한꺼번에 담아 본다. 물그림자에 쌍계루와 백암산과 단풍과 이팝나무와 갈참나무가 모조리 인화되어 있다.

 카메라의 렌즈로 담을 수 없는 색감과 조밀함과 원대함을 눈은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을 요리 조리 물러서며 다시 렌즈에 담을 욕심 부려본다. 어림없다. 어찌 이 총천연색의 대자연이 들어오겠는가. 포기하며 다시 시각을 바꾼다. 부분경과 세밀경으로 보는 단풍들. 다시 보아도 아름답기만 하다. 이 순간을 위해 뭇 바람과 눈보라와 강우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아 들였으니 참으로 위대한 나무들이다. 뿌리를 박고 꿈쩍하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자연과 순응하는 나무를 옛 사람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싶어진다. 더구나 700살 먹은 고령의 나무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만다.

 

 담양 바심재로 오지게 가을 구경

 

 이른 아침의 단풍 구경은 그렇게 나무의 생애와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사찰과 나무가 풍겨내는 향연 속에서 마감지어진다. 그럼에도 쉽게 발길 떨어지지 않는다.

 언제 또 이런 풍경과 마주할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는 곳에서 불과 40여분의 거리임에도 그 통속적이면서도 초라하지 않는 이 풍경을 보고 싶어했던 것 몇 년이었는데. 돌아오는 길,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타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연에 동화된 인간의 난만함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아쉬움속에 행여 또 나타날 가을 소경을 보자고 이번에는 길을 달리 잡았다. 담양 바심재를 넘어 오는 것이다. 용흥사가 있고, 월산면의 대숲이 보이고, 메타세퀘이아의 단풍이 물드는 담양을 거쳐 오지게 가을 구경을 했다.

 아직 나무의 붉은 기운 물든 11월의 중반, 멀리 가지 못한다면 도심의 단풍나무 한그루라도 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가을이 가는 것은 내 삶의 나이테가 더 영글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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