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품서 자라는 다채로운 식생들
묵묵히 희생하는 모습 ‘모성애’ 닮아

 소설이 지나고 첫눈까지 내려 겨울이 낯설지 않은 12월 첫 일요일에 소쇄원에 들어섭니다.

 이번 소쇄원 나들이에 내 눈을 사로잡은 나무가 있습니다. 광풍각 뒷담 우측에 자리한 나무로, 키가 5미터는 됨직한 배롱나무(Lagerstroemia indica)입니다.

 필자의 허벅지 굵기의 줄기를 네 갈래나 뻗어 사방으로 자란 배롱나무는 족히 200살은 돼 보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고, 이웃한 감나무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몸체가 고고합니다.

 12월의 광풍각 배롱나무는 배배꼬인 알몸이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힘줄 돋은 장정의 팔뚝처럼 드세 보입니다. 우람한 매력에 끌려 가까이 가 보니 근육질 팔뚝에 상처가 많습니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생긴 혹도 여러 개고, 병든 가지를 치료한 인공 수피도 몇 군데 보입니다.

 긴 세월 눈, 비를 맞으며 태풍과 가뭄에 맞서고 벌레들의 공격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울퉁불퉁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가지가 부러지고 속이 썩어도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해마다 온 힘을 다해 새잎을 밀어내고 꽃을 피워 열매 맺은 치열한 생존의 발자취입니다.

 배롱나무의 상처 혹 옆에서는 철모르는 어린 맹아가 첫눈에도 용케 살아남아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습니다. 인공수피 틈새에 흙먼지가 날아들었는지 제비꽃이 자라납니다. 초록 이끼가 낀 자리엔 습지 식물인 꼬리고사리가 터를 잡고서 제법 여러 장의 잎줄기를 달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배롱나무의 상처는 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상처에 다른 생물을 키워내고 있어서 더 아름답습니다.

 광풍각 배롱나무의 품격은 키가 커서도 아니고, 가지가 많아서도 아니며, 나이가 많아서 생긴 건 더욱 아닙니다. 제 혼자 자라지 않고 이끼에게, 풀에게, 새에게 제 몸을 내주어서 눈이 가는 것이며, 이들을 안고 있음으로써 얻은 품격입니다.

 오늘 필자는 광풍각 배롱나무에서 어머니를 봅니다.

 내 어머니는 일찍 혼자 되셨습니다. 오남매를 키워내느라 젊은 아낙이 험한 지게질을 해야 했기에 배롱나무의 뒤틀린 줄기처럼 다리가 휘었습니다. 겨울 산을 누비며 약초를 캐다 파느라 남아나지 않은 무릎은 생채기 난 옹이처럼 관절염을 앓습니다. 배롱나무 가운데 뚫린 구멍은 천식으로 연신 기침을 해대고 숨이 차 색색거리던 어머니의 숨구멍 같습니다. 오남매를 위해 쉼없이 일하는 어머니의 희생은 모성애로 포장되어 힘든 내색조차 못하셨습니다.

 배롱나무에 기생하는 제비꽃이나 이끼나 꼬리고사리는 배롱나무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롱나무에 나고 자랍니다. 배롱나무는 이들이 살아있는 한 운명으로 여기고 이들 몫까지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품에서 태어났습니다만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 어머니의 고통은 깊어졌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임무를 묵묵히 해내는 동안 관절·심장·혈압·신경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툭툭 불거진 손가락, 바위버섯 같은 검버섯, 짓물러지는 눈꺼플은 우리를 길러낸 흔적입니다. 지팡이 짚은 여든 노모의 굽은 허리와 절룩이는 걸음걸이 속에는 배롱나무 맹아같은 철부지 오남매가 있습니다.

 배롱나무를 떠나기 전에 한참을 안아봅니다. 내 어머니인냥 어루만져 봅니다. ‘어머니, 당신의 상처는 사랑입니다.’ 배롱나무가 부르르 떨며 온몸으로 대답합니다.

성미현 <광주생명의숲회원/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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