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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나들이]3월, 매향(梅香)에 취하다
성미현
기사 게재일 : 2016-03-02 06:00:00
▲ 봄기운 가득 머금은 백매.

 홍매(紅梅)가 피었다기에 중외공원 비엔날레 언덕을 찾습니다. 비엔날레 언덕의 홍매는 꽃을 보기 위한 만첩홍매화입니다. 홍매는 꽃 중에서도 관찰사로 통합니다. 일찍 피어서 다른 꽃들이 제대로 피어날 채비를 갖추고 있는지 관찰하고 지켜본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영하로 내려간 날인데다가 바람까지 불어 손이 시립니다. 오후 3시가 넘은 홍매 언덕은 분홍 치맛자락을 펼쳐 놓은 진달래숲처럼 보입니다. 홍매 언덕을 오르는 마음이 설렙니다. 요 며칠 추웠던 탓인지 홍매는 꽃잎을 활짝 열지 못한 모습입니다. 식물에게 가장 힘든 상대는 날씨라더니, 홍매는 주름진 입술을 오들오들 떱니다.

 추위에 농도가 높아진 꽃잎에서 풍기는 그윽한 매향은 바람을 타고 언덕을 넘나듭니다. 나는 눈을 감고 매향을 한껏 들이킵니다. 몸속 깊숙한 곳까지 매향을 가득 채울 욕심으로 여러 번 호흡합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매향이라 하옵니다” 하면서 한복을 곱게 입은 기녀가 절을 올리는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매화 향이 이렇게 기품 있다면 ‘매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명이었을 것입니다.

 

“오메, 매화가 이삐게 피었네” 

 “오메, 매화가 이삐게 피었네.”

 “날이 차니께 꽃도 떤갑다. 그래도 니가 핀 걸 본 게 봄이 왔나 비네”

 산책하던 주민들이 치컥치컥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고 갑니다. 그 소리에 눈을 뜨고 홍매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비엔날레 언덕의 홍매는 가지가 제멋대로 쭉쭉 뻗어 수형이 산만합니다. 그렇기에 붉은 물결을 이루는 홍매 숲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둥둥 피어난 진분홍 홍매는 규방의 병풍을 옮겨 놓은 듯 화사합니다.

 홍매 언덕 가장자리를 둘러싼 백매는 봄햇살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사나흘 후면 고 뽀얀 속살을 내보일 참인지 한껏 부풀린 꽃망울만 봉곳합니다. 내친 김에 백매를 보고자 인접한 시립민속박물관 정원으로 향합니다.

 시립민속박물관 분수대 옆 양지쪽에 작은 백매 동산이 있습니다. 오후 햇살 아래 보드라운 크림색 꽃잎을 내민 백매가 가지 끝에서 방긋방긋 웃습니다. 이곳 백매는 전지를 해서 단정합니다. 이 아담한 백매에서 나는 남성의 모습과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봅니다. 굼실굼실 출렁이는 굵고 거친 가지에서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선명하고 정갈한 다섯 장의 꽃잎과 그 꽃잎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은 고혹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매화는 굳건한 기개로 표현되는 남성적인 이미지입니다. 반면 황해도 곡산 기생 매화가 해주 감사 홍시유를 그리며 읊은 시조에서는 매화가 애절하고 고독한 여성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도 하다마는 /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선비들이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는, 곧은 기개의 매화를 닮고자 했다면, 여인들은 숨결처럼 배어나와 오랫동안 매료시키는 매화의 향기를 탐낸 듯합니다. 많은 꽃 중에서도 유독 매화가 오래 사랑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립민속박물관 정원의 백매 동산을 도깨비 석상이 지키고 있는데, 석상 가슴에 매화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 석상에 매화 무늬라니.‘도깨비마저도 매화를 흠모하는가?’ 생각하니 베시시 미소가 번지며 매화에 한번 더 눈이 갑니다.

 

꽃과 향기, 오래오래 사랑받는 까닭

 백매 향을 품은 채 광주국립박물관으로 건너갑니다. 광주국립박물관 홍매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조금은 정돈 된 홍매가 비엔날레 언덕의 홍매보다는 입술을 살짝 더 열고 있습니다. 겨우내 접었던 날개를 펴듯 이제 막 퐁퐁 터진 꽃잎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흐음~흐음~ 숨구멍을 엽니다. 와인 향을 느끼듯 매향을 음미하며 홍매에 취합니다. 시커멓고 우둘투둘한 늙은 가지가 피워내는, 앙증스럽고 보들한 꽃망울의 묘한 대비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합니다.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이지만,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매화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양자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꽃을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每見月)이라고 부릅니다. 3월에는 남도 곳곳에서 매화축제가 열립니다. 운이 좋다면 바람에 매화 꽃잎이 비처럼 내리는 매우에 취할 수도 있습니다. 3월, 바야흐로 매견월입니다.

성미현<광주생명의숲 숲해설가>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물결, 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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