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도 수리 해녀들

 아침 8시, 수리 선창이 일순 떠들썩해진다. 고무옷 챙겨 들고, 바구리 하나씩 들고, 테왁 메고 출근중이다.

 “우리는 한번 나갈라문 준비가 애러와. 맨몸으로 가는 일이 아닌께.”

 “흑산면에서 여그 수리가 해녀들이 젤로 많애. 일곱 명이여. 지방해녀들이 옛날에는 열 몇이 되얏어. 땅토리가 좋아. 근께 잠질하문 건져올 것이 많애.”

 일곱 분의 해녀 중 목포에 나간 두 분(김영란·고정윤)을 빼곤 모두 나섰다. 문선자(73), 임추월(68), 고태순(68), 이선자(61), 최애자(59).

 “요 일이 험해. 동무가 간께 가제, 나 혼자는 못 가.”

 나 혼자는 못할 일이자 물때를 가려 하는 일이다.

 “첫조금부터 일주일 동안이 물질하는 때제. 우리는 사리 때가 쉬는 날이여, 그때는 물이 뜰뜰한께 못해. 뻘물 일어난께 앞이 잘 안 비고 작업이 애러와. 조금 때는 물이 맑제.”

 

 `쩌어 너메’로 `의지 찾아’ 가는 길

 해녀사업을 하는 문광근(63·수리)씨의 배가 선창에 대기해 있다. 막내아들 선남(29)씨가 배를 몬다.

 “바람 안 분 디로, 파도 덜한 디로 찾아가는 거여. 쩌어 너메로 의지 찾아서 가. 바다 상황 봄서 가는 디를 정하제.” 임추월 할매의 말씀.

 바람 일고 파도 세찬 바다 위에서 `의지 찾아’라는 말은 애틋한 절박함을 품고, `쩌어 너메’는 한없이 아득하다.

 배에 올라타자마자 해녀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옛날에는 광목 속곳으로 해녀옷을 맨들아서 입던 때도 있었어. 그 뒤로 고무옷 입는 좋은 시상이 왔제. 잠수복은 제주도 하귀로 부탁해서 사. 거그로 주문해. 우리는 수 년 해갖고 우리 이름만 불르문 거그서 딱딱 알아서 다 해줘. 어깨 허리 기럭지 목 팔 다리 등판, 자기 몸 사이즈가 다 있어. 안 맞으문 속에 물 들어가갖고 물질 못하제. 한 번 사문 한 삼 년이나 입으까. 물질 심하게 하문 일 년에 한 벌 입는 사람도 있고, 자기 하기 매였어.” 최애자 아짐의 말씀이다.

 몸에 꽉 맞는 고무옷을 위아래로 껴 입는 동안만 해도 땀을 동우로 쏟는다. 고무옷을 다 입고 허리께에 납줄을 찬다.

 “새 옷이라문 납줄을 더 차야 하고 헌 옷은 좀 덜 차도 되고. 새 옷은 스뽄지 기운이 많애서 물 욱으로 더 뜨고 빨리 안들어가진께.”

 납돌 두 줄은 5킬로 정도.

 “새 옷은 한 7키로, 세 개는 차야제.”

 물속 깊이 들어가기 위해 무조건 많이 매다는 게 아닌 것도 납줄.

 “너무 많이 매문 너무 지피 깔앙거불어. 자기 숨대로 들어가야제.”

 물질작업에서 욕심 내지 않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이르는 말은 `자기 숨대로’.

 “해녀는 망통(테왁)이 목숨이여. 이거 없으문 깔앙거불어. 파도 치문 이거를 타고 전뎌야제.”

 테왁을 싼 천은 모두 제각각이다. 핸드메이드의 개성과 정성이 한껏 서려 있다.

 “테왁은 이삐게 맹글어갖고 댕겨야 하는 거여. 우리한테는 얼매나 소중한 건께.”

 “요거 봐, 요 고무 닳아진 것 좀 보랑께.”

 고태순 아짐이 내보이는 것은 끄트머리가 이빠진 것처럼 나달나달해진 고무옷의 밑단. 노동의 내력이다.

 “사람 늙은 거하고 같애. 요 고무 닳아진 것이.”

 아짐은 물동이의 물을 몸에 몇 번이고 들이붓는다.

 “까깝헌께, 요 옷이 딱 달라붙은께.”

 수경 등을 넣어둔 바구리에는 치약과 말린 쑥도 한 줌 들어 있다.

 “수경 ㅤ따끌 때 요걸로 ㅤ따끄문 잘 ㅤ따까져.”

 치약과 쑥의 또다른 용도다. 물로 들어가기 전에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 약봉지의 흰 가루를 털어넣으며 문수자 할매가 “구심! 뇌선!”이라고 외친다.

 “물에 들어가문 머리 아프고 심장 뛴께. 갑자기 놀래문 저거 한께. 처녀 때는 안 묵었어. 나이묵음시롱은 계속 묵제. 속이 깎여도 어짤 수 없어.”

 문수자 할매는 수리가 고향.

 “처녀 때부터 해변가에서 우리 집 앞에서 고둥도 잡고 그러다가 이것을 했어.”

 갯밭에서 점점 걸어나가 물 속으로, 섬처녀에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때는 들어만 가문 한가득 잡았어. 물견이 많기도 했고, 소질도 있었고.”

 

 “힘드니까 저절로 나와” 숨비소리

 배가 멈춘다. 오늘의 출근지다. “여그는 재너미(재넘이). 오늘은 여가 바람이 덜 불그만.”

 망설임 없이 모두 하나둘 물로 뛰어든다. 물 밖의 사람은 모르는 물속 세상으로의 투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다. 순식간에 몸뚱이는 물속으로 사라지고 검은 오리발만 떴다가 이내 테왁만 위로 동동 뜬다. 바다는 한없이 고요하고, 이따금 새소리 들린다. 거기에 또 하나의 새소리 같은 숨비소리 섞여든다.

 “호오잇…호오잇….” 바다 위에서 그 소리는 한 없이 명징하니 울려퍼진다.

 “힘든께 저절로 나와. 숨이 꽉 맥혀갖고 나오문.”

 일부러 짓는 소리가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소리, 살려고 내는 소리다.

 이윽고 배에 올라탄 해녀들이 부려놓은 망사리 속은 바닷것들로 수북하다. 전복 미역 성게 해삼 홍합 뿔소라 고둥….

 “전북(전복)하고 해삼은 짚은 데가 있어. 욱에서는 미역 베고, 성게 잡고.”

 뱃바닥에 부려놓은 수확물 중엔 불가사리도 섞여 있다.

 “불가사리는 바다의 나쁜놈이여. 전북도 다 까묵어불고. 근께 잡을라문 일이어도 비는 대로 잡아야제.”

 미역도 몇 망태다.

 “며늘네들이 다 애기들 나갖고 다 미역이 필요해.”

 “요거는 파도 씬 데서 자란 가새미역. 너풋너풋한 떡미역하고 달르제. 가새미역은 낄일수록 뽀얗게 국물이 우러나.”

 

 “숨 가빠서 못해. 인자 욕심도 없어”

 고태순 아짐은 “들어갔다 나오문 띵띵 붓어”라고 하소연이다. 문수자 할매는 “올(올해)만 하고 그만 할라고”라고 말한다.

 “작년에는 여든까지 한다고 했거든. 그란디 숨 가빠서 못하겄어. 인자 욕심도 없어. 욕심도 다 비워불었어.”

 최애자 아짐은 “이것 험서 다 늙어. 사람이 얼매나 힘들어”라고 말한다.

 “조금 때는 다서여섯 시간을 계속 물질해. 배고프제. 몸이 빠져. 다이어트가 절로 돼 불어. 밥을 제때 못 묵잖아.”

 “숨도 길고 나이도 적고 그러문 많이 하제. 숨이 길어야제. 한 해가 달라. 작년 달르고 올 달라.”

 “인자 우리는 한물갔어. 할 사람 없제, 우리 안 하문. 힘들어서 젊은 사람은 못해.”

 수리의 자랑으로 `해녀’를 꼽던 마을 주민 채수탁(60·수리)씨의 말이 떠오른다.

 “인자 어매들이 연세도 들고 이 다음으로는 할 사람이 없제. 이 일은 본능적으로 해야 해. 내 목숨줄이다 직업이다 하고 해야 한디 인자 그럴 사람이 없어.”

 해녀사업을 해온 세월이 30여 년인 문광근씨는 “많이 돌아가시고 인자 몇 분 안 남았어”라며 “한창때는 지방해녀들도 많앴고, 물질하러 원정 온 제주해녀들만 해도 서른 명 넘던 시절이 있었제”라고 말한다.

 “인자 사표 내야제”라면서도 해녀들은 “겨울에 쉬다 봄 되야서 처음 물에 갈라문 설레제”라고 이구동성.

 “우리가 이 험한 옷을 입고 한세상을 살았어. 물질이 고통시롭제. 그래도 이거 했기땀새 아그들 먹이고 키우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작은 술판이 벌어진다. 안주는 방금 바다에서 건져올린 해물. 성게알도 미역에 싸서 한 입 몰아넣고 전복도 썰고 해삼도 썬다.

 “서울서는 해삼이 얇디 얄버갖고 물내 나. 비우에 안맞아. 이런 디서 자연산 묵다가 못 묵어.”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따오리까.”

 흥이 오른 이선자 아짐의 노래가 술판을 더욱 걸게 한다.

 이선자 아짐은 제주해녀다.

 “처녀 때 왔제. 돈 벌라고 여그까지 왔어. 동네 언니친구들 따라서. 스물 몇 살에 와서 여그 남자랑 연애해서 결혼하고. 잠질해서 아들 둘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이선자 아짐은 고태순 아짐이랑 한날한시에 배를 타고 물질하러 이 물설고 낯선 땅에 와서 정착했다.

 “여그로 심어져갖고, 살아불었어”라는 말에 긴 대하소설이 압축된다.

 여그로 심어지기 전에는 이름도 모르던 섬.

 “제주도에서 뭣허러 여그까지 왔으까. 이 머나먼 곳까지….”

 대답은 문수자 할매가 노래가락으로 대신한다.

 “끈끈한 정 때문에 여그까지 왔어요.”

 “그 말이 맞네, 하하. 살다본께 끈끈한 정이 생개.”

 이선자 아짐은 이곳에 와서 물질하고 살다 스물네 살에 결혼했다. 결혼 한 지 몇 해 안 돼 남편은 흑산도에서 배 타고 오다가 실종됐다.

 “배도 없고 사람도 못 찾았어. 그때만 해도 배가 실종되문 이북에서 납치해갔다 그런 시절이여. 삼십 몇 년 됐어. 그래도 물질 해서 아들 둘 다 갈치고.”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살다 보면 다 살게 된다)’는 제주말처럼, 굽이굽이 눈물나고 힘든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온 아짐은 씩씩하다.

 “해녀들이 다 쎄고 다 재밌어. 힘들게 물질하고 나오문 바다에서 산다이 하고 놀아. 그럼서 풀어. 노래를 하문 다 잘해. 긍께 인기최고여. 여그 세 개 부락이 다 모여도 우리 왔다고 환영환영이여.”

 

 맨꼭대기집 빨랫줄에 펄럭이는 고무옷

 리어카가 무겁다. 수리에서도 맨꼭대기집. 학교 옆에 바로 붙은 집이다.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문수자 할매네 집이다.

 할매는 깔끄막을 몇 번 쉬며 오늘 건져올린 바닷것들을 끌고 왔다.

 “물질하고 가져갈라문 힘들어. 딴 때는 연락해, 남편한테 가질러 오라고. 오늘은 해필 전화를 안갖고 와불었어.”

 “높은께 여그서 큰소리로 말하문 온동네에 소리가 다 드캐. 긍께 우리는 부부싸움을 못해, 하하.”

 아내를 화들짝 맞는 전서원(73)씨의 말이다.

 “남자는 나이묵으문 큰소리칠 일이 없어. 섬은 더 그래. 여자들이 더 경제력을 갖고 있어, 하하.”

 흑산도가 고향인 전서원씨는 인천에 나가 살다가 아이엠에프를 거치며 다시 섬으로 들어왔다.

 “아내한테 항상 고맙제. 애쓰고 산께. 잠질이 보통 힘든 일이가니.”

 어느새 할매가 빨아 널은 고무옷이 빨랫줄에 걸렸다.

 수리에서 제일 높은 집, 고무옷 펄럭인다. 오늘 물속세상에 빠져 들었던 해녀의 하루를 알리는 깃발처럼.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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