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

 ‘농사가 잘 된 해.’

 국어사전에 적힌 풍년(豊年)이란 말뜻은 간명하다. 하지만 그 짧은 풀이는 만백성이 해마다 품는 간절한 꿈, 땀 흘려 일하는 농심 속에 펄럭이는 기치와도 같다.

 한 해 농사의 풍흉이 사회에 미치는 여파를 생각할 때 ‘풍년’이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갈망이었다. 상품의 이름이나 가게의 간판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 수밖에. 전국의 건강원들이 앞다퉈 ‘장수(長壽)’라는 간판을 내거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작물이든 풍년이란 최고의 기쁨이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간절한 건 쌀농사에서다. 쌀과 관련한 수많은 간판들이 ‘풍년’을 내건 까닭이리라. 풍년쌀집, 풍년방앗간, 풍년종묘사, 풍년농약사, 풍년농기구 등은 물론, 잘 팔리던 전기밥솥도 ‘풍년밥솥’이었고 농부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담배엔 ‘풍년초’도 있었다.

 진안 백운면에서 31년째 ‘풍년떡방앗간’을 하는 서금옥(60)씨는 “애기덜 애래서 이거라도 히야긋다 싶어 요 가게를 샀제만 이름을 안 바꽜제. 좋잖애, 풍성흐고. 장사도 잘했슨게 이름덕 봤제”라고 말한다. 오는 손님 누구라도 ‘풍년’이라는 상호를 좋아했더란다.

 쌀농사와 하등 무관한 사람들도 일년 내내 농사걱정을 놓지 않았던 시절, ‘풍년’이란 이름도 업종과 물목을 막론하고 여러 곳에 내걸렸다. 풍년식당, 풍년마트, 풍년주점, 풍년주단, 풍년불고기, 풍년제과, 풍년횟집….

 “너무 가물어 모를 숭굴 수가 없겄는디 어찌까.”

 “저런 바람이문 나락이 다 자빠지겄는디.”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을 사고팔든 농부처럼 쌀농사를 걱정하던 심정들이 그 간판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지난 1974년 전면적인 열차명 변경 때 호남선 특급열차는 ‘풍년호’, 전라선은 ‘증산호’라는 이름을 붙여 10년 동안 운행되기도 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쌀농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풍년이란 요즘 사람들이 즐겨 쓰는 ‘대박’과 비슷하게 흔한말이었다. 그러나 들인 정성에 비해 턱없이 많은 욕심이 담긴 ‘대박’과는 달리 ‘풍년’은 떳떳한 노력의 대가요, 정당한 수확의 의미를 품고 있다. 땀 흘려 일한 만큼의 열망이 담긴 ‘풍년’이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내걸리던 때는 참으로 순정한 시절이었다. 이젠 누구도 새로이 ‘풍년’이란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그나마 남은 간판들도 하나 둘 속절없이 빛바래 간다. 쌀농사도 농자천하지대본도 함께 무너져 간다.

글=황풍년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