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주체’로 거듭나야!

 지난 5개월의 ‘촛불정국’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적 사건을 텍스트 삼아 곱씹어 읽으며 촛불을 각자의 일상으로 옮겨 붙이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민교육’을 주제삼아 정리하고 있는 중이죠. (‘청소년 18세 선거권’,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질문하기’, ‘판단하기’, ‘공감하기’, ‘광장과 언론’의 순으로 글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현장의 이야기에서 인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보다, 일방적인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우리는 어떤 일을 겪었습니까? 지난 10월, JTBC와 한겨레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보도하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이어 ‘이게 나라냐’며 분노하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쉼 없이 광장에 모여서 함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특별검사에게, 헌법재판관들에게 촛불은 단일한 목소리로 주권자의 의지를 전달했으며, 대선정국으로 들어가서는 각 후보자와 정책, 정당을 골고루 검토하며, 각자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판단을 투표로 드러냈지요.

 

탄핵 정국 5개월, 판단의 연속 

 지난 일들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결과 우리는 어떤 ‘판단’들을 연속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는 분노했습니다.(‘이건 나라가 아니’라는 판단 등) 쏟아지는 정보들에 대해 참, 거짓의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팩트체크),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판단 및 결정했습니다.(대통령 선거 투표 등) 대표적인 사례로, 같은 기간 동안 JTBC 손석희 앵커의 정치인 인터뷰 발언 중 가장 많은 표현이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였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판단의 주체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로써 시민성(Citizenship)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건강한 판단력’이며, 시민교육의 과제 중 하나는 ‘판단력의 함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판단이란 (국어사전의 설명을 다듬자면) ‘①사태를 인식하여 ②기준에 따라 ③논리적으로 생각을 매듭짓는 일’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정의에 따라 좋은 판단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이 도출됩니다.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능력입니다.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구분할 줄 할며,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균형 있게 수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각종 팩트체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양질의 정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좋은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판단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요구되는 능력은 가치, 지향점 등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빗대어 정보들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이게 나라냐’며 분노하고 광장에 모였던 일이나, 대선 기간 동안 인물·정책·정당 등을 선택할 때 우리는 삶의 지향점을 함께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필요한 능력은 논리적 사고력입니다. 다양한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정보를 해석해낼 수 있는 적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왜곡시키거나, 비약적인 방식으로,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하면서 판단을 내려서는 곤란합니다. 생각의 합리성이라는 적절한 방식을 갖추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교육 현장, 살아있는 문제 다뤄야” 

 정리하자면 ‘양질의 정보 및 자료들을 균형 있게 다루는 능력’(media literacy), ‘기준을 설정하고 적용하는 능력’, ‘논리적 사고력’이 건강한 판단력을 위한 세 가지 능력들입니다. 그리고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능력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과를 설정하고 교육을 하는 것이, 촛불의 경험에서 시민을 길러내려고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교육현장에서 판단력을 교육할 때 학생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살아있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사와 학생 모두가 그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수준과 범위를 설정해야겠지요. 그렇지 않고, 가공의 문제들, 임의로 주어진 사례 속의 연습 문제들만 반복해서 다루면 반드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연습 문제를 통해서는 현장의 문제가 바뀌지도 않고 참된 의미의 ‘자기 성취감’을 확인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발 딛고 있는 현장 문제를 파악하고 기준을 설정하여 합리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릴 때,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가 실제로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을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할 때 시민으로서의 경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치 사회 교과서에서 주권자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100번 읽고 시험 문제를 푸는 것보다, 실제로 촛불 정국에서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때 시민들이 주권자로서의 경험을 가졌듯 말이죠.

 이렇게 말로는 쉽게 나열해봤지만, 사실 한 사람이 판단의 주체로 거듭나는 일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판단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늘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결과를 판단내린 사람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또 불안합니다. 일일이 정보를 찾아보며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일, 자신과 공동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을 세우는 일, 그리고 생각의 합리성을 견지하기 위해 늘 긴장해야 하는 일 모두 귀찮고, 복잡하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시민’이 되기 위해, ‘주권’을 다루기 위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몫인 걸요. 그리고 그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그림자처럼 뒤따라 다니는 혼란, 불안, 어려움들이야말로 학교현장에서부터 제대로된 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촛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할 일이 많습니다. 현장의 교사 및 학생 여러분, 함께 힘을 냅시다.

추교준



추교준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