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진배 없는 한민이 업어 키운 서현 씨
관습과 금기라는 우리를 벗어난 사랑의 파문

▲ 등에 업힌 아이는 서현 씨의 조카이고 손에 이끌려 걸어가는 아이는 바로 서현 씨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한민이와 영범이가 감기에 단단히 걸리고 말았다. 서현 씨는 손등으로 둘의 이마를 번갈아 짚어보며 병세를 살펴보았다. 한민이의 증세가 더 심했다. 망설이지 않고 한민이를 들쳐 업고 영범이는 손을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영범이는 엄마가 내민 손을 뿌리치며 매달려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엄마를 한 번 눈으로 흘기더니 업히는 걸 포기하고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섰다. 마트에 가다 이 모습을 본 이웃집의 정연이 엄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이구야! 영범이 오늘도 엄마를 뺏기고 말았네. 쯧쯧쯧.”

 무슨 ‘시츄에이션’“ 그렇다. 등에 업힌 아이는 서현 씨의 조카이고 손에 이끌려 걸어가는 아이는 바로 서현 씨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여배우 김성령을 닮아 단아한 모습에 선한 눈매를 가졌지만 다부진 서현 씨는 돼지띠 남자아이 둘과 호랑이띠 여자아이 하나까지 모두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런데 큰아들 영범이와 얼굴과 몸매에서 영화 ‘7번 방의 기적’ 주연배우 박신혜의 모습이 보인다는 영재는 자기가 낳은 아이가 분명하지만 사실, 한민이는 ‘돌싱’인 언니의 아들이었다.

 나와 서현 씨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첫째 아이들을 천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면서 마음이 통했고, 둘째 아이들은 신학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면서 더욱 친밀해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집안 대소사는 물론이고 서로의 집에 있는 숟가락몽둥이 갯수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하게 한민이를 맡아서 키우는 내막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이모’가 조카를 엄마처럼 키우는 사연

 

 한민이에게 서현 씨는 그냥 이모가 아니었다. 책임감 없기로는 국가대표급인 한민이 아버지는 한민이가 첫돌을 맞이하기도 전에 한민이 엄마와 헤어졌다. 그때부터 워킹맘이자 돌싱인 엄마를 대신해서 서현씨가 한민이를 키운 것이다. 그래서 서현 씨는 한민이에게 그냥 이모가 아니었다. 한민이에게 서현 씨는 엄마 같은 이모였고 이모였지만 사실은 엄마 역할을 한 ‘이모엄마’였다. 마찬가지로 서현씨 에게 한민이는 아들 같은 조카였고 조카라지만 아들과 진배없는 ‘조카아들’이었던 것이다.

 동갑내기인 한민이와 영범이가 태어나던 즈음에 한민이 엄마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서현 씨는 전업주부였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키울 수 밖에 없었던 한민이 엄마는 동생에게 아이의 육아를 부탁했다. 영범이를 키우던 서현 씨는 어차피 차릴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는다는 심정으로, 언니가 출산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랬는데 난데없이 언니네 부부가 헤어져 버린 것이다.

 유치원 입학 때 엄마 품으로 돌려보내려던 계획은 어긋나고 차일피일 미루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한민이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서현 씨네 집에서 한가족처럼 살게 되었다. 물론 언니는 아이를 처음 맡기던 시절부터 얼마 정도의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천하에 둘도 없을 만큼 선량한 품성을 지닌 펑범한 직장인인 서현 씨의 남편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조카를 돌보는 그깟 일에 돈을 받느냐”고 정색하며 서현 씨를 크게 나무랐다. 하지만 서현 씨의 생각은 남편과 달랐다. 아무리 친자매 사이이지만 언니가 양육비를 지불하는 것은 엄마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의 최소한이라고 여겼다. 서현 씨 자신 또한 기꺼이 받아들인 일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지치고 힘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정페이’ 하나만으로 한민이를 돌보다가는 어느 순간 어린 조카에게 스멀스멀 미움이 싹틀 수 있었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서로에게 의무와 책임감을 실어줄 수 있어 훨씬 좋은 방안이라 결론지었다.

 아담한 5층짜리 건물이 줄지어 서있는 우리 아파트에 늦은 해가 저물어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란다를 통해 두 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빨래며 청소며 저녁준비에 종종 걸음을 치던 서현 씨가 아이들을 찾느라 아파트가 떠나가라 이름을 부른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라는데…

 

 “한민아! 영범아! 얼른 올라와라. 저녁 먹자.”

 잠깐 잡지책을 뒤적거리다 서현 씨의 경쾌하고 명랑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이제서야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엄마가 찾는 소리를 듣다가, 마침 퇴근하는 영범이 아빠를 발견한 아이들은 자전거는 내팽개치고 냅다 달려가 품에 안긴다. 아빠는 영범이와 한민이를 한번씩 안아준 다음 양손으로 한명씩 손을 잡더니 다정하게 셋이서 나란히 집으로 들어간다. 서현 씨 가족의 부산한 저녁 무렵의 모습과, 영범이는 아빠가 안고 한민이는 서현 씨가 안고 마트에도 가고 외식도 하러 나가던 주말이나 휴일이면 펼쳐지던 익숙한 풍경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한민이와 영범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세 살 터울로 영재도 태어나 예쁘게 자라고 있다. 한민이와 영범이는 이층침대를 같이 사용했고, 책상은 두 개를 나란히 배치했다. 그러다 보니 둘은 공부나 컴퓨터게임 운동 등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했다. 한민이와 영범이를 이란성 쌍둥이로 지레짐작 했다가 둘이 서로 성씨가 다른 것을 알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민이 엄마는 휴일에나 한두 번 짬을 내서 서현 씨 집에 와 한민이와 잠깐씩 놀다 가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잠을 자고 가는 일은 드물었고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고 가는 정도였다. 친엄마의 존재를 인지한 이후에도 한민이는 가끔씩 보는 엄마에게 매달리거나 엄마집으로 보내달라고 떼쓰는 일 한 번 없었다. 이런 사실을 직접 목격하거나 누군가에게 들어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걱정하며 되레 서현 씨를 나무랬다.

 “아. 글쎄. 이모란 사람이 모자의 정을 끊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 너무 잘해주니까 애가 엄마를 찾을 리가 있겄어?”

 정연이 엄마가 농담하듯 살짝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란디,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라고 글잖어! 그런 말이 왜 있겄어? 다 뼈가 있고 뜻이 있는 말이제. 동물은 잘 키우면 그 공을 반드시 받지만은 사람은 키워봤자 다 때 되면 지 핏줄 찾아 가버리는 통에 그런 말이 나왔지매!”

 나이 지긋한 경서할머니의 이야기는 차마 들을 수 없어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나중에 마음 다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한민이 엄마한테 보내야제. 그것이 현명하제. 안그래?”

 서희 엄마의 충고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모를 위한 한민이의 보험 영업

 

 언니와 한민이의 성격과 형편을 잘 알고 있어, 한민이를 돌려보낼 때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 외롭고 삭막한 곳으로 한민이를 보낼 수 없었다. 한민이에게도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영범이와 차별하지 않고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한민이도 서현 씨의 진심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마음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민이는 매우 활달한 아이였다. 운동신경이 남달랐고 모든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다. 반면, 영범이는 이름처럼 비범했고 조신했다. 거기에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어 전교 1등을 거의 도맡아하는 모범생이었다. 이런 영범이가 다소 덜렁거리는 한민이 공부도 챙겨준 덕분에 한민이는 그래도 중상위권의 성적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한민이가 사춘기 무렵이 되자 엄마와는 더욱 서먹해졌다. 한민이가 무난하게 잘 자라나자 마음을 놓은 나머지 한민이를 만나러 가는 발길이 뜸해져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시간이 절대 부족해진 것이다. 무심한 엄마와 달리 서현 씨는 한민이가 혹시 엇나갈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 관점을 달리하면 공부에만 묻혀 살았던 영범이보다 오히려 한민이가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특히 체육과목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체육부장은 당연히 한민이 몫이었다. 부모가 헤어진 사실이나 이모집에 얹혀사는 것도 감추지 않았다. 자기의 처지를 당당하게 말하며 이모와 이모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든지 스스럼없이 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나 잘 알지 못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전교1등 영범이와 사촌이라며 넉살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민이도 영범이 못지않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 서현 씨는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보험설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되던 어느날 한민이가 고객 한분을 물어다 주었다. 어이가 없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고객은 다름 아닌 새로운 담임선생님이었다. 고객 한 명 유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선생님께 어떤 멘트를 날리며 보험권유를 했는지 궁금했다.

 “선생님, 저는 어려서부터 이모집에서 자랐고 지금도 이모집에서 살고 있어요. 저는 세상에서 우리 이모만큼 살림 잘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뭐든 잘하시고 정도 많아요. 선생님이 만약 차를 운전하신다면 우리 이모처럼 꼼꼼하고 확실한 설계사에게 보험관리를 받으시고, 설명 들으세요. 우리 이모는 70살까지 보험을 하실 분이에요. 그리고 한번 약속하면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시거든요.”

 

 양육비 차곡차곡 모아 입시 준비에

 

 이야기를 마친 다음, 몰래 가져간 서현 씨의 명함을 공손하게 건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한 한민이의 보험영업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한민이와 영범이가 고3 수험생이 되었다. 당사자는 말할 나위 없고 수험생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의 고생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런데 아들인 영범이는 이미 고입 때 입시전쟁을 치르고 전주에 있는 전국단위 자사고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서 날마다 부대끼는 일은 없었다. 대신 한민이의 뒷바라지는 오롯이 서현 씨 차지가 되었다. 아침 일찍 밥을 먹이는 일이며 교복을 다리는 일, 그리고 진학상담까지 모두 서현 씨가 담당해야 할 일이었다. 일찌감치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한 한민이는, 이 지역에 있는 국립대 체교과를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표한 대학은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정시에서 선발했다. 대학입시전형은 크게 보아 정시와 수시로 나뉘는 데, 정시는 수능점수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한민이는 수학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수학은 난이도가 낮은 3점짜리 문제 위주로 공부했다. 부족한 부분은 국어와 영어, 그리고 탐구과목에서 보충하는 걸로 수능전략을 세웠다. 노력은 헛되지 않아 무난하게 ‘컷트라인’을 넘겼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실기시험만 남았다. 한민이가 운동신경이 좋은 것은 틀림없었지만 그것은 체교과를 준비하는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종목은 의외로 까다로워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수험생들은 입시체육학원에서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며 준비했다. 그런데 수강료가 만만치 않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구세주는 다름아닌 서현 씨 남편인 이모부였다. 이모부는 한민이 엄마에게 양육비를 받는 것은 야박한 일이라 생각하며 의견을 말했으나 서현 씨가 무시하자 나름의 방법을 마련했다. 나중에 한민이를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용돈의 일부를 적금으로 부어 놓은 것이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랑의 질료는 노력과 애씀”

 

 “이 돈을 지금 안 쓰면 언제 쓰겄능가? 이 순간이 한민이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인데, 여기에서 사랑의 결정적 한방을 날려 줄라네!” 한민이는 이모부의 결정적 한방으로 실기시험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고 드디어 목표한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 이 순간도 체육선생님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사랑의 질료는 노력과 애씀이 아닐까? 그러한 사랑이 관습과 금기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자기 자신의 발밑에서만 배회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사랑이 단지 한 점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간다면 소외와 배제로 고통 받는 이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과 진동을 통해 저 멀리 퍼져나가는 사랑을 상상한다. 지금은 서현 씨와 남편이 동심원의 중심이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이번에는 한민이가 그 원의 중심에 서있을 것이다. 이때 한민이가 보내는 사랑의 파동은 잔잔한 파문을 그리며 아주 넓고 깊게 퍼져나갈 것이다.

글=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 : 이다희<중국 전메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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