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땅, 그 위 사람들과 가축들

▲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몽골의 초원에 들었다.
 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일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지난 7월1일부터 10일 새벽까지 몽골의 하늘 아래 있었다. 몇몇 지인들과 몽골을 여행했다. 애초 취재 목적이 아니었지만 거의 10일 동안이나 편집국을 비운 죄(?)로 유·무형의 압박(?)이 가해졌다.(고 느꼈다.) 하여 경험했던 몽골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볼까 한다.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엿본 몽골의 단편적, 파편적 기록 쯤 되겠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붉은 영웅의 도시 울란바토르

 몽골 국적기 미아트 항공 로고를 단 항공기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국제공항으로 고도를 낮출수록 무언가 낯선, 땅의 자태가 드러난다. 제주도 오름을 몇 백배 뻥튀기 해 놓은 듯한 황토색 고원들 사이로 이끼처럼 회색 건물들이 빽빽하게 자리한다. 얼핏봐도 건물들의 밀도가 느껴진다. 흡사 서울 도심의 달동네가 산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양새다. 창 너머 보이는 도시는 황사인지 스모그인지 모를 뿌연 층들이 낮게 깔려 있다. 드디어 몽골이다.

 우리 일행을 숙소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여행사 직원이 칭기스칸 국제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청년 준영(몽골인이지만 한국말을 잘했고 한국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씨의 차를 타고 드디어 울란바토르 도심으로 진입한다. 울란바토르는 몽골말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란다. 붉은 영웅은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수흐바타르다. 몽골의 땅 면적은 한국보다 7배 정도 넓지만 인구는 대략 300만 정도. 그 중 1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거주한다고.

 인구밀도가 높아서인지 도심에 진입하자 거대한 차량의 무리에 섞인다. 챠량 정체가 만만치 않은 데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운전 ‘스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준영 씨 역시 마찬가지. 몽골 운전자들의 호전적 운전 스타일이 인상 깊다. 준영 씨는 겁에 질린 우리를 향해 돌아보면서 “무서워요?”하고 묻고는 “몽골 사람들은 말을 타듯 운전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라고 한다. 그러나 이정도 ‘손의 땀’은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비하면 땀도 아니라는 걸, 그 땐 몰랐다. 워낙 차량 정체가 심해서 번호판 홀·수로 부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했지만 도로엔 그와 상관없이 짝수 번호판 차량과 홀수 번호판 챠량이 자유로운 기상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차량 운전석 위치도 자유로웠다. 차량은 오른쪽 통행이었는데 차량 운전석은 왼쪽에 있기도 하고 오른쪽에 있기도 했다. 주로 우리나라에서 수입된 차들은 왼쪽에 운전석이, 일본에서 수입된 차량들은 오른 쪽에 운전석이 있었다.

 인구 밀도가 높다보니 환경오염, 주거비 상승, 도시 빈민층 형성 등 도시문제들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중심가는 여느 대도시와 같은 고층빌딩과 현대적 건물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간판들과 고급 주택들이 자리했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허름한 아파트와 허름한 집들이 자리했다. 공기 역시 매우 좋지 않았다. 나중에 가이드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도시 빈민들이 사용하는 연료는 대부분 연탄으로 공기가 매우 좋지 않은 원인 중 하나라고. 몽골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심을 채운 사람들은 활력 넘쳤고 또 젊었다. 몽골은 전체 인구의 38.6%가 청년인구(15~34세)에 해당, 인구 구성에서 청년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굉장히 젊은 국가라고 한다.

 준영 씨는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여긴 위험하니까 밤엔 나돌아 다니지 말고 숙소에 있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여행자가 겪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돈을 빼앗기는 것 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얼하지?

 게다가 우리가 몽골에 입국한 7월1일은 모든 식당이나 상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 날. 매달 1일은 신성한 날이라고 해서 술을 팔지 않는다고. 더더욱 우리가 입국한 7월1일은 몽골 대통령 선거일로 더더욱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이 우리는 조신하고도 조촐하게 숙소에 모여 앉아 트렁크를 뒤져가며 팩소주와 고추참치와 뻔데기 통조림 등을 늘어놓고 몽골 입성을 기념했다.

 

 ▶끝도 없는 초원에 들다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과 거의 10일에 가까운 날들을 함께 동고동락해야하는 가이드와 운전사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차량은 ‘델리카’, 차량 운전사 나츠가(58) 씨가 “셈배노(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냈다. 그 땐 몰랐지만 헤어질 때 나는 그에게 “최고의 운전사”라고 엄지를 치켜 들었다. 우리의 가이드를 맡은 빌궁(24)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사람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냈다. 스타일이 세련된, 잘생긴 청년 빌궁은 알고보니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유학생으로 지금은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아르바이트 중이라고. 몽골말을 통역할 때 빼곤, 그가 몽골인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했다. 한국에서 배우를 하는 게 그의 꿈이라고. 나츠가와 빌궁. 우리는 그들에게 앞으로 많은 몽골의 이야기를 듣게 될 터였다.

 갈 길이 멀었다. 몽골의 면적은 앞서 말했듯 한국의 7배. 하루 몇백㎞를 이동해야 하는 여정들이 계속될 운명(?)이었다.

 우리를 태운 델리카가 울란바토르 밖 너머 몽골의 더 깊숙한 곳으로 가기 위해 시동을 건다. 말을 타듯 운전을 하는 호전적 몽골 운전자들 사이를 통과해 나간다. 차량도 건물도 사람도 밀도가 점점 더 약해진다. 공기도 점점 좋아진다. 어느 순간 우리는 도시를 뒤로 하고 초원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2차선 직선의 도로가 저 멀리 장애물 하나 없이 뻗어있다. 양 옆으론 이제 아무 것도 없다. 말로만 듣던 몽골의 초원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차량 안, 아직까지 설레임과 흥분으로 들떠 ‘팔팔한’ 여행자들은 탁 트인 몽골의 풍광에 각종 감탄사들을 쏟아낸다.

 도로 위엔 간간히 지나는 차량만 있을 뿐. 대체로 ‘무엇’이 없다. 나츠가 씨가 갑자기 도로 옆으로 차를 세운다. 도시를 벗어나 드디어 처음 밟는 몽골 ‘땅’. 도로 옆 초원에 파란 색 천 등이 걸려 있는 돌무더기가 있다. 우리나라 서낭당이랑 비슷한 ‘어워’다. 몽골에서는 이 어워에 돌을 얹고 어워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빈다고 가이드 빌궁이 설명한다. 들뜬 여행객들은 무사 여행을 기원하며 돌무더기 주위를 세 바퀴 돈다. 드디어 몽골 초원에 든다. <다음에 계속>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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