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광활함…그 안에 든 사람들

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일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지난 7월1일부터 10일 새벽까지 몽골의 하늘 아래 있었다. 몇몇 지인들과 몽골을 여행했다. 애초 취재 목적이 아니었지만 거의 10일 동안이나 편집국을 비운 죄(?)로 유·무형의 압박(?)이 가해졌다.(고 느꼈다.) 하여 경험했던 몽골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지면에 풀어볼까 한다.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엿본 몽골의 단편적, 파편적 기록 쯤 되겠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끝도 없는 초원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무릉이라는 도시를 향해 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긴 여정이 될 것이라고 운전사 나츠가가 말했다. 너른 땅, 몇백 ㎞ 이동은 기본. 그 중 포장도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1/3. 나머지 2/3은 비포장 도로라고 했다. 아무렴 어떠한가. `아직까지’ 들뜨고 팔팔한 여행자들의 눈에 비친 몽골의 광활한 초원 풍광은 한국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광. 하늘과 초원, 풀을 뜯는 가축들이 있을 뿐, 시야를 가로막는 `무엇’이 없었다. `광활함’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자연이란 이런 것일까? 인간이 하찮아졌다. 압도됐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쭉 뻗은 2차선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그 때부터가 진짜였다. 몽골인들의 공간과 이동의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 광활한 초원. 사람도 사람 흔적도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가축들은 도처에 있었다. 몽골 인구가 300만인데 가축은 3000만~4000만 마리 정도라니 몽골의 실제 우세한 거주자는 가축인 셈이다.

 말이 비포장 도로라고 했지만 내 눈엔 그냥 앞서 몇몇 차량들이 지나간 흔적처럼 보였다. 360도 모두 초원인 곳에 난 바퀴 자국. 하지만 놀랍게도 비포장 `도로’ 대부분이 40~50년 됐다는 설명이다. 굳이 도로가 아니라 초원 아무 데나 맘껏 가로질러도 될 것 같았으나 지구의 `표면’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위험한 돌들이 굴러다닌다거나 가까이 가보면 바퀴가 빠질 것 같은 패인 곳이 있다거나 습지이거나 했다. 바로 며칠 전 큰 비가 내려 땅의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았다. 바퀴라도 잘못 빠지면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굶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물론 주위에 가축들은 많았으니 굶어 죽진 않겠지만….

 

 ▶초원의 사람, 나츠가의 운전

 이정표도 없고 방향도 모르겠고 가도 가도 `무엇’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나침반이 필요할 것 같은 그런 길을 헤치고 나츠가는 능숙하게 나아갔다. 나츠가는 수시로 창문밖으로 손을 내밀어 `바람’을 느껴보는 것 같았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건 낭만적 `습관’은 아니었고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 등을 참고해 운전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바람이 많이 불 때 역방향으로 너무 속도를 내서 운전을 하면 연료 소모가 많으니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조정하기 위해서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나츠가는 기분이 좋았는지 몇가지 실력 자랑을 더 했다. 20년 간 운전을 했고 별이나 달, 해 그리고 산 같은 것들을 보면서 길을 찾아 간다고.

 그러고선 저기 산 밑에 빨간 지붕 집이 보이냐고 물었다. “무…무슨? 빨간 지붕은 커녕 산도 안보이는데?”

 “몽골 사람들 시력이 좋아요. 보통 4.0 정도고 7.0까지도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빌궁의 설명이다.

 “그럼 빌궁도? 시력이 좋아요?”

 “(머리를 긁적이며) 저는 0.7이요. 도시에 살거나 젊은 사람들은 시력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초원에선 장애물이 없으니까 시력이 좋은 거고.”

 나츠가 씨가 말을 보탰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3~4㎞ 정도 떨어져서도 풀어놓은 자신의 가축을 구별한다”고. “요즘 젊은 유목민들은 가축에 표식(자기 가축을 구별하기 위해 색깔있는 페인트로 표시해둠)을 하는데 그건 좀 유목민으로서 그렇다”고,

 그 후로도 나츠가는 혹시 유체이탈이나 투시법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시력을 자랑하며 우리를 놀래켰다. 그런 시력으로 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나로선 평생 알 수 없다.

 그런 나츠가가 차를 멈춰 세웠다. 큰 비로 길 위로 지나는 물길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건너야 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자고 했다. 우리는 차량 밖으로 튕겨지듯 나와 풍광도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우산으로 화장실을 만들어 볼 일도 해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츠가와 빌궁은 길의 상태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저 먼곳까지 다녀왔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길이 끊겼다. 바로 저 건너편으로 가야하는데 멀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력과 방향감각이 탁월한 나츠가도 아무 이정표 없는 길에선 길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 마다 `좋은’ 시력으로 (우리는 안 보이는)저 멀리 게르를 발견하고 일부러 차를 몰아 게르를 방문해 길을 묻기를 반복했다. 오토바이나 말을 탄 유목민을 발견할 때면 경적을 울려 그들을 세우고 길을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선 게르 하나가 지나는 사람 하나가 모두 등대가 됐다. 누구라도 노크 없이 게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사람이 귀한 땅에서 많은 거리를 이동해 사는 유목민들에게 그 같은 `도움주고 받기’는 생존에 필수적인 문제인 듯했다.

 매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길을 알려주려 노력했다. 서로에 대한 `호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유목생활.

 돌아 돌아 가는 길. 또 다시 물길이 나타났다. 차를 세우고 나츠가 씨가 바지를 걷고 물길을 건너본다. 이리저리 살펴보는 나츠가를 보면서 우리는 긴장했다. 건널 수 있으려나. 차로 돌아온 나츠가 씨가 운전대를 잡는다. 모두들 말은 안했지만 차량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건넌다. 차량 바퀴가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간다. 느리고도 신중하게 차량이 움직인다. 모두 호흡이 멈춘다.

 잠시 후 차량안엔 “와아!”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난관을 함께 건넜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모두가 공유한 순간었다. 다섯 개의 엄지가 나츠가를 향해 세워졌고. 나츠가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우리를 태운 델리카가 다시 아무것도 없는 초원으로 나아갔다.

<다음에 계속>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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