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당신이여, 부디 해피 해피 데이!

▲ 애니메이션 `가구야공주 이야기’ 중. 빛나는 대나무 속에서 나온 작은 여자 아이, 가구야 공주.
 바야흐로 인문학의 시대.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찾고, 인문학을 이야기 합니다.
 청년들은 어떨까요? `청년의 눈, 청년의 인문학’은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청년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인문학 이야기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인문학을 통해 내뱉는 목소리 입니다.
<편집자주>
 
 치바는 사신이다. 그의 일은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 사신들은 어떤 한 사람을 일주일 동안 유심히 관찰한다. 8일째 되는 날, 대상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사신들은 `가’와 `보류’중 하나를 선택해 정보부에 보고한다. `가’일 경우 대상자는 죽는다. `보류’일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의 수명을 다한다.

 치바를 비롯한 사신들의 조사 결과는 대부분이 `가’다. `보류’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눈에는 어떤 사람도 `굳이’ 안 죽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사신들 대부분은 게으르지만, 치바는 성실한 편이다. 그는 일주일 동안 대상자를 꼼꼼히 살핀다. 그렇다고 그에게 무언가 기대는 마시길. 치바는 단지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 인간은 그저 인간, 죽음은 그저 죽음이다. 치바가 일할 때는 언제나 비가 내린다.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짬이 날 때면 음반 매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듣는다.

 `사신 치바’는 내가 옛날부터 꽤 좋아하던 책이었다. 주인공 치바는 차갑고 무뚝뚝한데도 묘하게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그와 함께 할 때 인간들은 비로소 죽음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통찰한다. 치바와 인간들의 다양한 모험의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일본 설화 `다케토리 이야기’를 원 소재로 한 영화다.

 깊은 산속 마을. 대나무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우연히 빛나는 대나무 속에서 손가락만한 크기의 여자 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기의 이름을 `가구야’라 짓는다. 신비롭게도 아이는 대나무처럼 쑥쑥 자랐다. 가구야는 손가락만한 크기에서 금세 팔뚝만한 크기로 자랐고, 반나절 만에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구야를 도시로 데려간다. 그녀의 미모는 널리 소문이 퍼져, 장안의 내로라하는 귀공자 다섯 명이 앞 다투어 청혼을 해오고, 급기야 황제까지 가구야에게 추파를 던진다. 하지만 그녀는 첫사랑이었던 스테마루 오빠를 잊지 못하고, 산골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유로이 뛰놀던 때를 그리워한다. 가구야는 삶의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끼고,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망한다. 그녀는 점차 속세의 모든 것에 지쳐간다.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어느 날, 가구야는 자신이 달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달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것도.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달나라로부터 부처님의 화려한 행렬이 지상으로 내려온다. 가구야는 그제야 지상의 모든 것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부처님은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선녀는 비단옷을 입혀버렸다. 그 순간 속세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그녀는 예쁜 꽃가마를 타고 달로 돌아갔다. 고래등 같은 집과 진귀한 보물들,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남겨두고.

 `죽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각자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도 변화한다. 좀 어렸을 때만 해도 난 죽음이 그리 무섭지 않았다. 까마득히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검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결승선(?) 같은 그 무엇. 모두들 거길 향해 걸어가고, 나도 그렇겠지. 별 수 있나? 근데 아직은 너무 멀다. 동화책에도 끝이 있듯이 내 인생도 언젠가 그 끝에 닿겠지. 막연한 생각이었다.

 내가 죽음을 무섭게 느끼게 된 것은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영영 못 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슬프기도 슬프지만 무서워졌다. 당신은 어디로 갔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가 나눈 그 모든 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나? 서글펐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당신이 가여웠다.

 이제 난 죽음을 투명한 유리벽이라고 느낀다. 벽들은 사방에 서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다. 벽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어느 방향에 있는지. 잘 걸어가다가도 어느 날 운 나쁘게 `꽝’ 하고 부딪히면 그냥 끝. 게다가 난 크면서 점차 사후세계나 환생 같은 것은 믿지 않게 되었다. 21세기에 태어난 탓이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때부터 난 이렇게 생각했다. `죽으면 끝.’ 언젠가 나라는 존재가 영영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같은 결말을 준비해 놓았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나
 우리는 모두 사라지리
 가련한 심장도 언젠가는
 영원한 휴식을 맞으리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의 매일이 부디
 해피 해피 데이!
 자우림 / HAPPY DAY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단편 영화를 본 일이 있다. 배우들은 `우주’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여배우가 CNN에서 본 내용을 설명한다. 150억 년 전에 그 어떤 무언가가 폭발하면서 태어난 우주. 그렇게 태어난 우주는 아직도 어리다. 그래서 지금도 크는 중이다. 우주는 끊임없이 폭발하고 팽창한다. 그러다가 결국 수축해서 한 점으로 돌아가는데, 그 주기가 자그마치 150억 년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150억 년 만 기다리면, 모든 헤어졌던 만물이 결국엔 다시 만난다! 그런 희망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

 여배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하지만 난 더 생각이 복잡해졌다. 다시 만날 걸 우리는 왜 수백 수천억 개로 갈라진 걸까? 뭘 위해서 이토록 치고 박고 사는 것일까? 알 수 없다. 150억 년 뒤에 모두 다 만난다지만, 각자의 유통기한은 어쨌든 100년 남짓 아닌가. 확실히, 놀고먹기도 아쉬운 인생들이다. 다들 멍청하게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이 온다면 아마도 후회만이 가슴 속에 가득히 남아,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겠지. 사랑한 모든 것이여 안녕, 안녕히….
 
 어차피 죽을 것라면 하고싶은 일 하자
 
 치바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인간의 죽음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섭섭하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그는 사신이다. 젊은 대통령이 달리는 차 안에서 저격을 당하거나 말거나, 한 소년이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개와 함께 얼어 죽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는 당신의 얼굴에 대고 태연하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는 죽어.”

 맞아. 사실 인간은 아무 가치가 없다. 죽는다고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린 한때 각자의 유통기한을 안고 우주에 뿌려진 작은 먼지일 뿐이다. 허무한가? 근데 이상하게 난 어깨가 가벼워진 것도 같다.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은 거니까.

 최근에 `사신 치바’의 후속 장편 `사신의 7일’을 읽었다. 오랜만에 만난 치바는 여전했다. 주인공 야마모토는 치바와 함께 하면서 죽은 아버지와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는 일생을 일에 매달려 가정에 소홀했다. 종양이 생겨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그는 아들에게 고백한다.

 “죽는 게 무서웠어. 죽으면 모두 사라져버리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게 사라져. 팡 하고 전기가 끊어진 것처럼.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몰라. `내’가 사라져버린다는 게 믿어지니? 무야. 무 속에 던져지는 거야.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어. 모든 게 무가 돼…(중략)…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한 거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성에 찰 때까지 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남들한테 칭찬받는 사람이 돼봤자 매일매일, 매초마다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내일 죽을지도 몰라. 하고 싶은 일을 참는다고 뭘 얻을 수 있을까.”

 주인공의 아버지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못 본 척 한 채, 하고 싶은 일에만 죽어라 매달렸다. 가족들은 그를 원망했지만, 어쨌든 그는 하루하루를 손에 꼭 쥐어 잡았다. “인간은 언젠가 죽어.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밖엔 없어.” 이렇게 말한 그는 특별히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미소 지으며 덤덤히 말한다. “먼저 가서 무섭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오마.”
 
 어김없이 주어진 선물같은 하루…
 
 가끔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보름달이 환한 밤. 하늘에서는 가구야를 데려갈 행렬이 내려오고 있다. 오색구름을 탄 표정 없는 천인들은 어울리지 않게 밝은 음악을 연주한다. 그 선율이 마치 이렇게 들린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가슴이 아리다. 이윽고 가구야가 마차를 타고 떠날 때, 그제야 용서해달라며 우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다. 용서해달라는 저 말은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인가?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했어야 했던 말인가? 뭔지 모를 사무치는 그리움에, 나도 가구야 공주 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행렬이 점점 멀어져 점이 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파스칼이 한 말이다. 근데 그건 인간들 사정이고, 어쨌든 죽음은 온다. 뭐랄까, 얄짤 없다. 빗방울이 `투둑’ 하고 떨어지면, 어느새 곁에 온 낯선 남자가 말을 거는 것이다. 음악이 들리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화려한 꽃가마가 내려오고, 선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비단옷을 입혀버리는 것이다. 좀 너무하잖아? 하소연 해봐야 그들은 시큰둥할 뿐.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다. 그러니 겁먹지 마라. 까먹고 있어도 좋다. 다만 부디 행복해라.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마라.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라. 각자 유통기한이 다할 때까지. 이리도 간단한 인생의 진리를, 난 또 얼마나 헛다리를 짚어야 진짜로 알게 될까? 하지만 또 어김없이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의 포장을 풀어 본다. 당신의 오늘도 부디 해피하기를!
김연우<조선대 국문과 2년, 청년인문학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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