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촛불정국을 떠올리며, `그 당시의 경험으로부터 민주시민교육의 요소들을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구체적인 교육 요소들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주시민교육의 중요 영역으로서 `법교육’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사실, 법교육은 2000년 이후 학교교육현장에 서서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촛불정국에서 나타난 법적 상황에 대해 학교교육현장에서의 법교육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촛불로부터 법교육을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오전 11시 12분,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일련의 행위들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대의 민주제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하였고,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헌법 수호의 이익’이 된다는 요지로 결정문을 읽어 내려갔었지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당시 저는 개인적으로 원하는 대로 결정이 되어서 환호성을 부르짖으며 박수를 쳤었지만,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저는 `어떤 괴리감’에 사로잡혔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민의’와 `법’이 결합돼 있지 않다”

 저 개인의 차원에서만 보자면, 작년 10월, JTBC 보도 이후, `도대체 이게 나라냐’, `대통령이 해도 해도 너무하네’ 등의 분노가 올라왔지만 그 분노의 내용에 `헌법 위반’에 대한 분노는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저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광장의 촛불 속에 `헌법 수호’라는 구호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표현이나 단어만 다를 뿐,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동일하다’고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국정농단 사태를 마주한 저의 마음 안에는 `법의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의 몇몇 조항들을 외쳤지만, 그것을 그 자체로 `법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촛불정국은 크게 두 장면으로 나뉩니다. 한편으로는 천만 이상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장기간, 집단적으로 `민의를 표출’하는 장면,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부의 수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입법부과 사법부가 `법적 절차에 근거’하여 혼란스러운 정국을 관리해 나가는 장면입니다. 저 두 장면 사이의 실질적, 제도적 연결고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말마다 촛불 들기, 의원 사무실에 항의하기, 특검 사무실에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꽃다발 보내기 등이 전부였습니다. 시민들이 `민의를 표출’하는 일과 국가 기관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가는 과정이 분리돼 있고, 시민들의 의식 속에도 `민의’와 `법’ 결합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제가 느낀 괴리감의 실체였습니다.

 민주사회에서 법의 존재이유를 생각해볼 때, 이러한 괴리는 당혹스러운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근간은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가 민주사회라면 구성원들의 논의와 합의에 의해 법이 형성되고, 다시 이 법이 구성원 자신을 지배합니다. 순환성, 자율성, 이른바 민주국가의 `법의 지배’(Rule of Law)의 특성들입니다. 더 나아가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체계야말로 그 나라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떤 권력 구조를 취하고 있는지 등을 반영하는 틀입니다.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법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5·18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것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5·18 정신으로 규정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법의식 없이 정치적 비난만 일삼아”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법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의식하며, 그것을 돌보고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갈등 상황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논의하여 합의를 이루고 약속하는 입법 능력과 그 합의와 약속의 결과물인 법을 존중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그 법의 정당성을 신뢰하는, 그러한 법의식은 민주사회를 돌보고 가꾸는 일에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성원들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조율된 민의가 법과 제도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건강한 민주국가라 하기 어렵겠지요.

 생각하면, 저는 이런 맥락에서 법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입시공부를 할 때, `헌법’, `권력분립’ 등 몇 가지 지식들을 암기한 것 이외에는 민주시민교육의 맥락에서 법을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박근혜의 위법, 위헌 행위에 대해 법의식 없이, 즉각적인 분노에 휩싸여 정치적 비난만 일삼았던 것입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이재용 등의 주요 인물들이 각각 탄핵 및 구속된 후, 광장의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간 지금, 저는 여전히 그때처럼 스마트폰 화면 속 뉴스 기사 하나 하나에 기뻐하다가 화내다가, 그렇게 일종의 무기력과 조울증을 함께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촛불정국에서 나온 문제 상황, 즉 권력의 원천(시민)과 권력의 대행(국가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관짓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촛불 이후의 민주시민교육, 특히 법교육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면, 민의와 법이 단절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토론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합의와 약속을 하는 입법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러한 능력들을 시민들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형성된 민의들이 의회에 원활하게 반영될 수 있고 기존의 의회권력을 정당하게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빈약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 모든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이런 결핍들에 주목하면 촛불 이후의 법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법적 주체? 책임의 당사자가 되는 것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먼저 `법적 주체’로 서는 것,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합의와 약속을 이끌어 내고 함께 그 책임의 당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교육현장에서는 그에 필요한 역량과 자질을 길러주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론적 내용을 현장에서의 실천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현장성이 담보된 교육이어야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학생자치교육의 맥락에서 법교육의 형식과 내용을 강화할 수 있겠지요.

 더 나아가 교내 수업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여러 국가 또는 민간 기관들, 단체들과 연계하여 사회 속에서의 입법·사법·행정 절차 속에서 법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 몸소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들을 개발하는 작업도 필요하겠습니다. 독일, 미국, 일본, 스웨덴, 핀란드, 코스타리카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소년 모의투표 축제’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과 같은, 명랑하고 신나는 고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민들이 법적 주체로 설 때,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시민과 권력의 대행자로서 국가가 더욱 긴밀하게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트리라 생각합니다.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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