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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ub Hur-The Journey of a Jeweler
보석 장인 허미섭 씨의 삶
기사 게재일 : 2017-09-27 06:05:01
 As I approached Misub Hur’s workshop on an overcast Saturday afternoon, the first thing I noticed were the assortment of plants potted in sneakers on the front porch of the building. I walked in, following a mutual friend, and caught a glance of Misub in the back of his shop, handling some sort of machinery. A few other locals were in the room as well, getting ready for their usual jewelry workshop where Misub teaches them how to make their own rings, necklaces, bracelets, and earrings every Saturday afternoon.

 He knew that I was coming to interview him that day, but was fairly uninterested in talking about himself. Dawning a pair of magnifying eye glasses, he shifted to a nearby table to zero in on the details of a new ring. Fortunately, a good friend of his, Vanessa McClellen, was there and helped in my effort to learn the backstory of his rarely talked about past. Essentially, she conducted the interview, and I had the pleasure of being a fly on the wall as Misub’s tale unfolded.

 Vanessa began by explaining to me, that he started the Saturday workshops about two years ago to break up his seven day work week with some socializing and teaching to whomever was interested in spending the afternoon there at the shop. Students would begin on the anvil, melting silver, to create ring bands in the traditional way. Now, more of the carving and sculpting techniques are practiced on wax, before students move on to using torches for molding metals. Buffing and polishing are taught near the end of their training.

 A native from Japan, Misub first came to Korea at age 12. His father had passed away when he was young, and his mother had remarried a Korean man that she met while the two were working at the same factory. The family moved to Naju, but Misub and his step-brother moved away to Gwangju to attend middle school where they would face daily harassment, threats, and attacks from school mates because of their Japanese lineage. He jokes around about these times, saying that the other kids at school really only attacked him because he was so handsome, but also admits through chuckles that he was a short, skinny kid. The antagonism was relentless. He recalls one fight, where another boy hit him so hard in the ear that it caused permanent damage. Taking it in stride and opening up a bit more, he laughs and mocks himself trying to have a conversation on the phone using his deaf ear.

 Misub and his step-brother soldiered on through middle school, but after about seven months of his first year in high school Misub dropped out, got his GED, and entered into a vocational school to learn about jewelry making. He was tired of being poor and hungry, and attributes praise to a high school teacher whose friend helped him enroll in the vocational school. His drive to work hard and learn carried him through three and a half years of training at this school, but as someone who comes from nine generations of jewelers, the creative edge is in his blood. He graduated and began to work on private projects for various people in Gwangju.

 In 1985, Misub was the Gwangju’s representative for jewelry making in the International Vocational Training Competition in Seoul. You can think of this contest as essentially the Olympics for vocational fields. Misub’s ring designs took home the gold medal for all of Korea and advanced him to the international championships. His success here was not only important as a representative from Gwangju, but as a spotlight for everything he had overcome. He had made his country proud, and continued to do so by serving in the Korean Marines for the next 36 months shortly thereafter.

 At age 24, he obtained a full scholarship to study jewelry design in Tokyo, where he would obtain a Master’s degree and begin his PhD. He was also working for his uncle’s jewelry company during this time, holding a position within the top three jewelers out of the 800 within the company. However, his studies were left unfinished as he returned to Seoul to take a job teaching at Sungshin University. After three years of teaching, Misub found himself longing to be in Gwangju once again to simply focus on private jewelry work. This move led to him to meet his wife, who is also an expert potter. She suggested that they start a jewelry shop together, and their popularity soon brought along five different shops throughout Gwangju. The shops were thriving until problems with Misub’s heart brought upon a very serious surgery, resulting in the closure of some of the shops. Determined and tenacious in his efforts help his wife run the stores, Misub only rested in the hospital for ten days after his heart surgery before returning back to work.

 Since then, he and his wife have transferred some of their previous store inventory to a website and continued to steadily provide hand-crafted, but still affordable, jewelry for the people of Gwangju. He says that after 38 years in the business, he still loves designing and creating jewelry. He has evolved with the times to incorporate computer programs, such as CAD, and 3D printers to construct his designs these days, and shows no signs of stopping. By the end of the interview, he has warmed up quite a bit and is playing jokes on the workshop attendees; hiding their phones and teasing them about whatever topic is at hand. He finishes up some of the rings he’s been working on and asks everyone if they would like to go grab a beer. The jewelers in training begin to pack up and organize their stations so that the shop can go back to its usual function. Misub tells me that his uncle in Tokyo is 84 years old and still working as a jeweler today. He plans to follow in those steps, and I have no doubt that he will.

Written and photographed by Josh Garcia

-<원문 해석>-
 어느 흐린 토요일 오후 허미섭 씨의 작업실을 방문하러 간 건물 현관에서 처음 본 것은 운동화를 화분으로 삼아 심어진 여러 식물들이다. 친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뒤편에서 기계로 작업 중인 미섭씨가 보인다. 몇몇 주민들도 그 공간에 모여 평소처럼 허 씨가 하는 보석 세공 워크숍을 준비한다. 허 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하는 워크숍을 통해 반지나 목걸이, 팔찌, 귀걸이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날 내가 인터뷰하러 온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고, 대신 돋보기안경을 쓰고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새로 만든 반지를 살펴볼 뿐이다. 다행히 그 자리에 허 씨의 친한 친구 바네사 맥클렌이 있었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이 예술가가 얘기를 하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인터뷰를 한 것은 바네사고 나는 그저 옆에서 허 씨의 얘기를 들을 뿐이다.

 바네사의 설명에 따르면 허 씨는 주 7일 일하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오후에 자신의 가게에서 보석 가공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2년 전부터 토요 워크숍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워크숍에 온 사람들은 모루(뜨거운 금속을 올려놓고 두드릴 때 쓰는 쇠로 된 대) 위에 전통 방식으로 은을 녹여 고리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이제는 불을 이용해 금속 성형 단계로 넘어 가기 전에 먼저 밀랍을 가지고 깎고, 조각하는 기술을 연습한다. 버핑(광내기의 한 방법)과 연마는 교육 막바지에 배운다.

 원래 일본인이었던 허 씨는 12살 때 한국에 왔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남자와 재혼했다. 가족들은 나주로 이사했지만 허 씨와 그의 의붓형은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광주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일본혈통 때문에 매일 학교 동급생들로부터 학대, 협박, 폭력에 시달렸다. 허 씨는 다른 학생들이 자신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본인만 때렸다며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자신이 키 작고 말라빠진 아이었음을 인정하며 씩 웃는다. 적대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 번은 한 아이와 싸우다 너무 세게 귀를 맞아 평생 남을 손상을 입었던 일에 대해 말한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약간 마음을 터놓자 그는 웃으며 들리지 않는 귀에 대고 전화 통화를 하는 시늉을 한다.

 허 씨와 그의 형은 계속해서 중학교까지 다녔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7개월 후 허 씨는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보석 가공을 배우는 직업학교에 들어간다. 가난과 배고픔에 지친 그는 직업학교에 입학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의 친구인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공을 돌린다. 열심히 일하고 배우려는 추진력이 직업학교 3년 반의 교육을 마치는데 도움이 됐지만 9세대를 거친 보석장인 집안 후손으로서의 타고난 소질도 있었다. 그는 졸업 후 다양한 광주 사람들을 위한 일을 개인적으로 시작한다.

 1985년 허 씨는 서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의 보석 제작 부문에 광주 대표로 출전한다. 이 대회는 직업 분야의 올림픽 대회라고 볼 수 있다. 허 씨의 반지 디자인은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단숨에 반지 부문 세계 챔피언 수준에 오르게 된다. 그의 성공은 광주 대표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가 극복한 모든 것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는 또한 바로 36개월간 해병대에 복무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조국 한국을 자랑스럽게 했다.

 허 씨는 24살에 도쿄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보석 디자인을 배웠고, 그곳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학위를 시작한다. 당시 삼촌의 보석 회사에서 일한 그는 회사 내 800명 중 가장 훌륭한 보석장인 세 명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성신대학교에 출강하기 위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공부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다. 3년 동안 가르치고 나서 그는 다시 한 번 광주에서 보석 세공에 집중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광주로 돌아온 그는 이곳에서 도예가인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함께 귀금속점을 운영해보자는 아내의 제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며 광주에 5개의 가게를 내게 된다. 번창하던 가게들은 중간에 미섭씨가 심장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게 되어 일부 가게를 닫게 되지만, 계속하여 아내를 도와 귀금속점을 운영해 나가려는 단호하고 끈질긴 노력으로 그는 심장 수술을 받고 단지 10일 동안만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후 허 씨와 그의 아내는 이전 가게의 물품들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꾸준히 저렴한 수공예품을 광주사람들을 위해 제공한다. 그는 38년 동안 이 일을 했지만 여전히 보석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CAD나 3D 프린터와 같은 컴퓨터 기술들을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하며 오늘날 자신의 디자인을 발전시켜 왔고 앞으로도 그의 행보는 멈출지를 모른다.

 인터뷰 막바지에 허 씨는 살짝 몸을 풀며 다른 사람들의 핸드폰을 감추거나 무슨 주제든 사람들을 놀리는 등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장난을 친다. 그는 반지 몇 개를 만들어내고는 사람들에게 맥주나 한잔 같이 하러 가자고 한다. 교육생들은 짐을 챙기고 가게 공간을 정리, 원상 복구한다. 허 씨는 도쿄에 있는 자신의 삼촌은 84세이지만 여전히 보석 장인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도 삼촌이 해 온 것처럼 하려 한다고 했고 나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 믿는다.
글·사진=Josh Garcia
번역=윤영호 <광주국제교류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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