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아름다움, 마음을 울리다

▲ 에로스와 푸쉬케.
 붉은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견우노옹 <獻花歌 헌화가>
 
 용왕도 탐낸 아름다움

 신라 성덕왕대, 진골귀족이었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은 미모와 자색이 빼어나 종종 용이나 역신 등 성스러운 귀물이 데려갔다 놓아주곤 하였다. 어느 봄 순정공의 무리가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수로부인이 천 길 낭떠러지 끝에 흐드러진 붉은 철쭉을 보고 갖기를 원한다. 수로를 흠모하거나 따르던 무리들은 고개를 저으며 사람이 닿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고 청을 만류했다. 그러나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벼랑을 기어 올라가 철쭉 한 아름을 꺾어 바친다. 노인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린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마음을 건드리는 건 꽃을 꺾어 바친 사람이 이름도 밝히지 않은 노옹(老翁)이어서다. 당대 최고위층이었던 순정공과, 훗날 경덕왕비의 어머니가 되는 수로부인이니 주변에 적지 않은 호위병들과 시종들이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을 끝까지 따르겠노라 충성과 우정을 언약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안위 앞에서 그 본색과 구차함을 드러낸다. 범부의 자연스러움이다. 그 순간 일면식도 없는 시골촌부가 아무런 대가없이 꽃에 흠뻑 빠진 한 여인을 위해 꽃을 꺾어 바치고 가던 길, 마저 간다. 진실로 아름다움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은, 나이와 행색을 떠나 자유롭고 용감하다. 둘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며 아름다움 앞에서 기꺼워지는 사람이다. 나라에 가뭄이 들어 기근이 계속될 때 수로부인의 춤이 하늘을 움직여 비를 내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가만 생각하면 벽을 타고 오르는 노옹과, 수로부인의 춤사위는 하나다. 노옹이 수로부인의 마음을 움직였듯 하늘의 마음을 수로부인이 움직인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열게 한다. 아름다움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행위다.
 
 아프로디테가 질투한 프시케의 아름다움

 용왕이 납치해갈만큼 아리따웠던 수로부인과 비견되는 공주가 그리스에도 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부탁을 받고 저주를 내리러갔다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린 프시케. 프시케는 그 아름다움이 아프로디테를 능가한다는 소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소문도 거슬릴뿐더러 신전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데 역정이 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러 “프시케가 가장 추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에로스가 누구던가. 거들먹거리는 아폴론형에게 사랑에 빠지는 황금화살을 쏘아 요정 다프네를 사랑하게 해놓고, 다프네에게는 혐오감만 일으키는 납화살을 쏘아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게 만든 철부지 악동 아니던가. 신이 나서 궁으로 날아간 에로스가 잠자는 프시케의 입에 쓴 물을 흘려 넣는 순간 아뿔싸, 크고 맑은 눈을 뜬 그녀가 에로스를 바라본다. 사랑의 신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프시케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 프시케는 불가능한 임무들을 수행해야 했다. 버림받은 쓰라림과,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한 험난한 여정의 끝에서 그녀를 기다린 건 제우스의 감동이다. 인간의 몸으로 신을 사랑한 여인,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망각의 강을 건너 지하세계까지 건너갔다 온 여인. 제우스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사랑을 축복해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 프시케(Psyche)는 이름에 걸맞은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움은 내 안에

 아름다움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러나 사랑이 원숙해지기 위해서는 아프로디테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의 신이 프시케를 만나기전까지는 어린아이로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등장하는 에로스는 장난 가득한 얼굴에 누구에게 화살을 날릴까 생각하는 어린 신이다. 그러나 프시케와의 만남 후 사랑의 신은 성장해 준수한 어른 신으로 등장한다. 에로스, 사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영혼’ ‘마음’ 혹은 ‘나비’를 의미한다.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로, 그리고 깜깜한 고치 속에서 한철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다. 프시케의 외면의 아름다움은 신의 질투를 불렀으나, 프시케의 내면의 아름다움은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울렸다. 영혼의, 마음의 아름다움이란 나비와 같은 것이 아닐까. 프시케가 공주라는 신분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갔듯, 과거의 자기를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 마음은 강한 힘으로 자신을 변형시키고 타인을 성장시킨다.

 인간 프시케는 사랑을 감정놀이처럼 여기던 에로스에게 사랑이 영혼의 문제이며 성숙의 문제임을 일깨웠다. 그리고 영혼 프시케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내면에 아름다운 존재로 깃들여있다.
박혜진 <지혜의숲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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