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과 현장실습 문제를 이야기하다

 지난 주 ‘인연’을 읽은 지인은 저에게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현장에서는 폭언과 욕설이 난무하고, 자칫하다가는 팔다리가 잘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데, 학교에 ‘촛불청소년인권법’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면 현장은 어느 세월에 안전해질 수 있을까?” 맞습니다. 학교와 더불어 현장도 함께 고민해야겠지요. 오늘은 실습을 나가는 현장, 즉 사업장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교육감들이 주장대로 ‘현장실습이 노동이 아니라 교육’이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는 ‘사업장을 제2의 학교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펼치기 보다는 제가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내용들을 전달하는 데에 무게를 두겠습니다.

 운좋게도 저는 지난주에 전남지역에 있는 특성화고 2학년 학생들 20여명을 만나서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문제의 ‘원인’을 고민했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문제의 ‘해법’을 함께 찾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저는 2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독일 슈튜트가르트 지역의 이원화전문대학(Duale Hochschule), 위르겐 지이글(Jurgen Siegle) 교수로부터 ‘독일의 이원화교육제도’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설명 가운데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나 오늘날 현장실습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내용들을 이 학생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현장실습 문제점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에 현장에 대한 사전 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더 나아가 현장에서도 실습 나오는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계의 오작동 점검을 미리 한다던지, 학생들이 미리 알아야 할 현장의 상황들을 사전에 계획해두면 학생들이 현장에서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합니다. 정작 실습을 나가면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골칫덩어리’ 취급을 당하기 일쑤라더군요. 사소한 내용이라도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작성된 계약서 원본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고 교사가 일괄적으로 보관해서 계약의 주체로서 태도를 가지기 어려운 점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리다고 얕보거나 무시하는 일도 많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감독관’의 활동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현장에 나와서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실제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또한 실습생들도 실습기간 중 사업장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가 사업장에 실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자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정리하자면, 사업장도 제2의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관리 및 견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독일의 이원화교육제도의 경우는?

 2년 반~3년 동안,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일주일에 2일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3일은 사업장에서 실습을 하는, 학교와 사업장이 연계된 이원화 직업 교육제도(Duale Berufsausbildung System)는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와 사업장은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요? 독일의 이원화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려 주체들이 협력을 합니다. 사용자, 노동자, 16개 주 교육부, 연방 교육부( 및 연방직업교육연구원)에서 함께 논의하여 직업교육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각 참여 주체는 각자 고유한 과제를 가지고 있지요.

 먼저, 독일 연방 교육부 차원에서는 법 제·개정을 통해 이원화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합니다. 16개의 주 교육부는 교과 과정을 만들고 각 직업학교 운영에 따른 비용을 제공하며 회계감독을 맡고요. 사업장의 사용자와 노동자는 새로운 직업군을 개발하여 이 직업교육시스템에 편입시키고, 또 직업교육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안을 정부에 제출합니다. 또 단체 교섭을 통해 직업훈련생의 급여를 비롯한 노동 조건을 보장하기도 하고요. 상공회의소는 직업교육에 참여하는 회사에 대해 조언, 지도, 관리, 감독을 진행하고 직업교육실태를 조사하기도 합니다. 또 두 번의 자격시험을 관장하기도 합니다. 추가로 상공회의소는 회사와 직업훈련생의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회사에 있는 트레이너가 제 역할을 하는지 관리, 감독합니다.
 
▲사업장이 어떻게 제2의 학교가 되는가?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눈여겨 볼 대목들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머리를 맞대고 교육 내용 및 전수할 기술들을 계획한다는 점입니다. 교육내용이 결정되면, 학교와 교육부 대표들이 와서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학교교육계획을 세우고 교육을 진행합니다. 학교의 교과구성이 사업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 사업장에서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첫 번째 요소입니다. (더 나아가 교육을 받은 학생이 내용을 잘못 배웠다고 법적으로 소송을 할 경우, 책임을 회사에 물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해두었다고 하는군요.)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나 상공회의소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계약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직업훈련생 당사자가 실습을 나가는 사업장의 구성원으로서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거로 선출된 직업훈련생 대표도 사업장평의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독일노동법’, ‘제3장, 청소년 노동자, 직업훈련생’조항) 즉, 자신들이 직접 대표를 뽑고 사업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적으로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일의 직업훈련생들은 사업장에서 이미 법적 주체로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기술과 함께 실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에서 제시한 대책대로 규정을 보완하고 그에 따라 관리와 통제를 엄격히 한다고 오늘날 현장실습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학교와 현장의 ‘전면적인 결합’말입니다. 그것은 사업장이 교육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작은 공동체’로 거듭날 때만 가능합니다. 노동자가 일회용 부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중요한 만큼 그 기술을 체득한 사람도 중요하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고, 사람을 길러내고, 성장시키는 힘과 의지를 여러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현장에서부터 갖출 때만이 오늘날 현장실습의 문제, 더 나아가 노동인권의 열악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꿈 같은 생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냐고요? 오히려 이 질문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이렇게 지면을 낭비한 것입니다. 자, 이런 변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함께 생각을 펼쳐봅시다!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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