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지만 묵묵하게.

 콩자루를 쏟아부은 멍석 앞에 고부라지게 엎드려 쓸 것과 못쓸 것을 고르는 손길은 진중하였다.

 “어쩌다 있어. 쌀에도 뉘 있고 사람도 존 사람 속에 혹간 나쁜 사람 있는 것맹기여.”

 이미 썩은 것, 썩을 조짐이 보이는 것, 삐뚤어진 것을 놓칠세라 가려낸다. ‘못쓸’ 혹은 ‘몹쓸’ 것들을 한 알 한 알 골라내는 공력을 거친 다음에야 콩은 가마솥으로 들어간다.

 콩자루에 콩은 하늘에서 쏟아졌는가.

 팥을 심어야 팥이 나고 콩을 심어야 콩이 난다. 땡볕을 이고 사래 긴 밭에서 호미질을 거듭하여야 콩을 거둔다.

 콩대를 말리고 두드리며 콩 한 알을 좇아 멍석 밖 앉은걸음을 거듭하고 콩을 가리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콩을 삶고 쿵쿵쿵쿵 절구질을 하고 메주를 만들고 띄워서 메주꽃을 피워내고 매달고….

 ‘천로역정’을 지난 다음에야 된장독 하나가 배부르게 채워진다.

 누구에게라도 ‘완소’ 물건이 있다.

 조말순(76·순창 적성면 석산리 도왕마을) 할매에겐 된장독이 ‘완전소중’하다.

 여름 장마 땡볕을 지나며 행여 우리집 장맛 변할세라 마대자루로 꽁꽁 쨈매놨다. 벌레나 곰팡이를 단속하는 ‘조말순 식 숨쉬는 락앤락’이라고나 할까.

 “전에는 산에 갈 때 된장 한 볼테기에 꽁보리밥 한 덩어리 싸갖고 가문 하래 왼종일 나물을 껑끄고 와. 된장만 있으문 묵어. 된장 없이 밥상이 채려지가니.”

 딸 둘 아들 둘 먼저 챙기는 다섯 개의 밥상을 노상 머릿속에 담고 사는 어매. 된장독 지킴이 노릇은 생애의 끝날까지 멈추지 않으실 터이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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