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네 한솥밥으로 만나는 백석의 문장

▲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글, 김현수 그림.
 ‘개구리네 한솥밥’은 북한의 천재 시인 ‘백석’의 동화시이다. 대만 ‘인류문화출판사’도 번역해 출판된 책이고, 여러 곳에서 좋은 책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동화시는 동화처럼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시의 아름다운 운율과 감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글이다. 우리 주변에 출판된 책 중에 동화시가 많지는 않지만,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 있는 동화시는 한번 읽으면 오래 입으로 되내게 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작가가 바로 북한의 천재 시인 백석이라면 두말해서 무엇하랴!
 
 옛날 어느 곳에 개구리 한 마리가 살았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개구리 한 마리가 살았대.

 하루는 개구리가 쌀 한 말을 얻으러 들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섰대.

 개구리 펄쩍펄쩍 길을 가노라니 길가 봇돌랑에 우는 소리 들렸대.

 개구리 냉큼 뛰어 도랑으로 가보니 참게 한 마리가 엉엉 울더래.

 참게가 우는 것이 가엾기도 해서 개구리는 개골개골 물어보았대.

 “참게야 너 왜 우니?” 참게가 울다 말고 대답하였대. “발을 다쳐 아파서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참게의 다친 발을 고쳐주었대.

 개구리, 또 펄쩍펄쩍 길을 가노라니 길 아래 논두렁에 우는 소리 들렸대.

 개구리 냉큼 뛰어 논두렁에 가보니 방아깨비 한 마리가 엉엉 울더래.

 방아깨비 우는 것이 가엾기도 해서 개구리는 개골개골 물어보았대.

 “방아깨비야 너 왜 우니?” 방아깨비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르켜주었대.

 개구리 또 펄쩍펄쩍 길을 가노라니 길 복판 땅 구멍에 우는 소리 들렸대.

 개구리 냉큼 뛰어 땅 구멍에 가보니 쇠똥구리 한 마리 엉엉 울더래.

 쇠똥구리 우는 것이 가엾기도 해서 개구리는 개골개골 물어보았대.

 “쇠똥구리야 너 왜 우니?” 쇠똥구리 울다 말고 대답하는 말- “구멍에 빠져 못 나와 운다.”

 개구리는 바쁜 길 잊어버리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주었대.
 (중간 생략)
 
▲바쁜 길, 친구들의 어려움 외면않다
 
 발 다친 참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리켜주고, 구덩이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주고, 풀덩굴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반딧불이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 길이 늦은 개구리, 형네 집에 왔을 때는 날이 저물었대.

 쌀 대신에 벼 한 말 얻어서 지고 형네 집을 나설 땐 저문 날이 어두웠대.

 어둔 길에 무겁게 짐을 진 개구리, 펄쩍펄쩍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펄쩍펄쩍 걷다가는 뒤로 넘어졌대. 밤은 깊고 길은 멀어 눈앞은 캄캄.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 않아 어찌할까, 어찌할까 걱정하였대.

 그러자 어디선가, 반딧불이 날아와 가쁜 숨 허덕허덕 말을 물었대.

 “개구리야,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가 이 말에 개골개골 대답했대. “어두운 길 갈 수 없어 걱정한다.”

 그랬더니 반딧불이 등불 들고 앞장을 서, 어둡던 길 환하게 밝혀주었대. 어둡던 길 밝아져 가기는 좋으나 등에 진 짐 무거워 다리가 떨렸대. 개구리 할 수 없이 길가에 주저앉아 어찌할까 어찌할까 걱정하였대.

 그러자 어디선가 하늘소가 날아와 가쁜 숨 허덕허덕 말을 물었대.

 “개구리야, 무슨 걱정하니?” 개구리 이 말에 개골개골 대답했대. “무거운 짐 지고 못 가 걱정한다.” 그랬더니 하늘소 무거운 짐 받아 지고 개구리를 뒤따랐대.
 (중간 생략)

 장작 없이 밥을 지은 개구리는 좋아서 뜰에다 멍석 깔고 모두들 앉혔대. 불을 밝혀준 반딧불이, 짐을 져다준 하늘소, 길을 치워준 쇠똥구리, 방아 찧어준 방아깨비, 밥 지어준 참게, 모두모두 둘러 앉아 한솥밥을 먹었대.
 
▲ 내가 베푼 친절, 결국 돌아온다
 
 바쁜 길에도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돌아볼 줄 알았던 개구리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밥을 지어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은 참으로 훈훈하고 따뜻하다. 요즘 아이들은 바빠도 너무 바빠서 주변에 친구는커녕 자신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런 아이들이 ‘한솥밥’의 가치와 정겨움을 알까? 한솥밥, 참 예쁜 말이다.

 남을 돕는 일이 나에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을 하기 쉬운 요즘,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진심으로 돕는다면 그 친구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이 언제가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큰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남을 돕는 일이 곧 나를 돕는 일이 되는 것이다.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동화시는 아주 오래전에 발표된 시이지만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와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백석 시인이 가진 예쁘고 서정적인 시어가 글을 더 빛나게 만들고 있다.

 백석((1912년 7월 1일 ~ 1996년 1월)은 본명이 기행이며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문학가이다. 그는 정지용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꼽힐만큼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석(石)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석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백석은 한때 북한 작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색다른 작품세계를 펼쳤다.

 남한에서는 그가 북한 시인이라는 이유로 백석 시의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1987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로 백석의 많은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되고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받고 평가되고 있다. 평북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재로 삼아 특유의 향토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자기 관조로 한국 모더니즘의 또 다른 측면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시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는 1938년에 발표한 시로 현실을 초월한 이상, 사랑에 대한 의지와 소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어떤 이는 이 시에 대해 이런 에세이를 남기기도 했다. 나만큼이나 백석의 이 시를 사랑하는 것 같아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백석과 함께 겨울밤을 지난다. 백석의 단 몇 편의 시만으로도 며칠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백석의 시를 읽다보면 내 모국어가 자랑스럽다. 몇 개의 낱말만으로도 풍성해지는 언어의 성찬,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우리 토속어들의 향연에 난 절로 들뜬다. 그 중에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단연 나를 사로잡는다. 아무런 수사가 없이도 울림이 깊고, 어떠한 조탁도 없이 투명하고 청정하며, 푹푹 내리는 것만으로도 애잔한 사랑을 이리도 절절하게 그려내다니….”

 그럼 이쯤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를 소개해야겠다.
 
▲“백석의 시 읽다보면 모국어가 자랑스럽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고요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가난한 시인은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이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아 어데서 이런 시를 또 만나나! 내가 그런 시를 만나는 날이 있다면 나는 그날 너무 좋아 응앙응앙 울을 것 같다. 이 시에 비하면 개구리네 한솥밥은 절제가 아주 많이 된 시이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이 동화시를 통해 백석의 언어를 만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이 푹푹 쌓이는 겨울 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고조곤히 음미하며, 내 아이에게는 잠 들기 전 개구리네 한솥밥을 들려줘보자.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찰 것이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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