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여린 우리는 자유로운 먼지여라
불행한 삶, 작은 나를 감싸안는 신의 미소

▲ 큰 것들에 의해 부서지는 작은 것들. 그럼에도 거기엔 사랑이라는 큰 순간이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한낮 깊은 산 속, 아이들이 누군가를 땅에 묻는다. 무리는 흩어지고 혼자가 된 소현이 모텔방으로 돌아온다. 소현은 욕조 옆에 몸을 뉘고 손목을 긋는다. 그 순간 똑똑, 노크소리. ‘꿈결일까…?’ 생각하며 소현이 문을 열면, 그 앞에는 제인이 서있다. “안녕, 돌아왔구나.” 소현은 제인을 따라간다.

 제인은 뉴월드에서 일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모아 함께 산다. 제인팸(fam) 아이들은 일하지 않는다. 그녀 왈 어차피 나이 먹으면 염병 죽을 때까지 일만 하고 살 테니까. 아이들은 놀고먹고 수다를 떤다. 미러볼 밑에서 춤을 춘다. 달에게 미소 가득 지으며 오라이, 오라이 손짓 한다. 그래도 불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먹먹한 슬픔이 언제나 거기에 있다. 무력할 때면 제인과 아이들은 거실 소파에 멍하니 둘러 앉아 휘파람을 분다. 휘 휘.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다면, 불행은 크고 행복은 작다. 언제나 물 컵의 빈 공간에 인생이 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큰 것을 크게 작은 것을 더 작게 한다. 내가 제인에게 큰 위로를 받고 극장을 나와 스마트폰을 켜니, 거기엔 LGBT 혐오시위에 대한 기사들이 있다. 저울은 아주 정확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컵에 반 쯤, 그보다 적게 채워져 찰랑이는 물.

 “이거 봐봐. 케익이 몇 조각 남았니? 세 조각 남았지? 니네가 앞으로 살면서 말이야.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넷 중 하나라도 케익을 포기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야.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어? 차라리 셋 다 안 먹고 말아야지, 그치?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제인이 케익을 잘라 나눠주며 말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빠른 계산은 시시한 인간을, 간단한 논리는 황폐한 영혼을 만든다는 것을. 그러나 제인을 만나기 전, 아이들은 뭔가를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는 곳에서 서툴게 서툴게 자라났다. 그들은 언젠가 친구 한 명을 묻었고 파우치 속 돈을 나눠 가졌다. 돈이 아니라 파우치가 갖고 싶었던 소현은 울음을 삼키며 혼자 빗속을 달렸다. 소현은 늘 가족(family)을 꿈꾼다.
 
▲개미들의 싸움을 내려다보며 웃는 이들

 한 아줌마가 동영상 속에서 소리를 지른다. 핏대를 세워가며 확성기에 끝도 없이 혐오로 가득한 말을 쏟아낸다.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며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행복한가요“ 남의 것을 뺏으면 당신 접시로 오나요?’ 무엇이든 가차 없이 부술 수 있는 사람들이 밉다. 그럴수록 다 같이 구렁텅이로 빠질 뿐이라는 걸 모르겠지. 개미들끼리 싸울 때 누군가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는다는 것을. 아줌마, 당신도 개미예요. 우리 다 같은 개미라구요.

 깜깜한 밤 고속도로를 달린다. 우린 다 같이 어딘가로 가고 있다. 사방이 어둠인데 헤드라이트는 전방 5미터 정도만을 비추고, 옆 창문으로는 검은 산들이 휙 휙 지나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점점이 반짝이는 주황색 불빛들. 작은 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운전자 졸림 방지를 핑계 삼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대화를 나눴다. 끝도 없이 깔깔대고 티격태격, 그럴 때면 진짜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차 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어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또 혼자가 될 것이다, 우주의 한 톨 먼지처럼.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자기의 얘기를 들려주지 않을 것이다. 먼지에서 더 먼지로…그리고 영원히 사라지겠지. 문득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먹먹하고 쓸쓸한 기분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각자 앞에 작은 케익이 한 조각씩 놓여있다. 자기 몫을 맛있게 먹고, 그래도 우울하다면 서로에 기대 앉아 휘파람을 불거나 달구경을 하자. 하지만 우린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모든 게 지금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을 거야.’ 그때 무언가가 빠르게 사라진다, 뜨거운 커피에 각설탕이 녹듯. 불안과 분노로 물귀신 짓거리 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때마침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에 모든 것이 휩싸인다.

 “큰 신이 열풍처럼 아우성치며 복종을 요구했다. 그러자 작은 신이 스스로 상처를 지져 막고는 무감각해진 채 자신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떨어져나갔다. 아젠 아무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신은 공허하게 웃어대며 쾌활하게 깡충깡충 뛰어갔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고, 돌을 발로 찼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읽었다. 책은 덥고, 습하고, 또 알록달록했다.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서 피어나는 끔찍한 비극에 숨이 막혔다. 1969년 인도 케랄라. 아예메넴이라는 작은 마을에 한 가족이 있다. 에스타와 라헬은 암무의 뱃속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쌍둥이의 부모는 이혼했고, 암무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영국에서 놀러온 외사촌 소피 몰이 물에 빠져 죽는다. 그때쯤 암무는 동네 파라반 청년 벨루타와 사랑에 빠진다.
 
▲아름다운 문장 속 끔찍한 비극

 암무와 벨루타의 사랑, 그리고 소피 몰의 익사 사고.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 둘의 사랑 때문에 아이가 죽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삼촌 차코는 아이를 잃은 분노의 화살을 암무와 그녀의 쌍둥이에게 돌린다. 맘마치는 자신의 딸과 불가촉천민 남자의 추문으로 충격을 받고 혼절한다. 비극을 음미하고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먹는 이들이 있다. 벨루타는 경찰들에게 맞아 죽는다. 암무는 집에서 쫓겨나고, 에스타는 도시에 사는 아빠에게로 보내진다.

 두 거대한 비극의 수레바퀴가 부딪히자 작은 것들은 그 폭풍에 힘없이 휩쓸린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남을 짓밟고 파괴하여 스스로 끝도 없이 비참해졌다. 그들은 가족인데도 서로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내 케이크가 망가진 것은 너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먹을 자격 없지.’ 혼란 후에 찾아온 끔찍한 평화 뒤로 가족은 숨는다. 하지만 깨진 유리컵은 깨진 유리컵일 뿐. 그 속에 다시 물을 담을 방법은 없다.

 큰 것이 있다. 카스트제도, 남성중심사회. 그리고 작은 것들이 존재한다. 불가촉천민, 여성. 큰 것에 의해 부서지는 작은 것들. 여러 가지 크나큰 절망들이 뒤엉키고 다투는 사회 속에서, 작고 여린 것들의 상처와 울부짖음은 충분히 크게 울려 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기엔 사랑이라는 큰 순간이 있다, 작은 것들을 지키려는. 암무와 아이들의 사랑, 쌍둥이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암무와 벨루타의 사랑.

 굴러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큰 것들이 작은 것들을 굴리고 있다. 교묘한 속임수가, 고리타분한 질서가 아직도 있다. 예전에 읽은 단편소설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 우주에 어떤 행성은 수많은 생물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다. 별은 자신의 구성원들을 우주 곳곳으로 파견시킨다. 오랜 세월 정보를 수집한 그들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 신호를 받고 다시 고향 행성으로 돌아온다. 거대한 별은 더욱 더 거대한 우주에서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지구인인 나는 이 이야기가 오싹하다. 난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것에도 종속되어있지 않다. 먼지가 먼지일 뿐이듯, 나는 작지만 작은 대로 자유롭다. 누군가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상상을 하면 섬뜩하다. 큰 파도가 내 작은 모래성을 집어삼킨다면 난 틀림없이 절망하고 말 것이다. 또 내가 어긋난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다른 누군가의 것을 부수는 상상을 하면 견딜 수가 없다. 이게 먼지의 논리다.

 달이 환한 밤, 서울 어딘가의 골목. 뉴월드에 찾아온 모든 불행한 얼굴들 앞에서 제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 하염없이 눈부신 무대에 소현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로부터 40년 전, 인도의 작은 마을. 암무는 벨루타를 만나러 강가에 메인 배로 찾아온다. 서로의 사랑을 확신한 두 남녀는 마치 신들처럼 보이고, 이윽고 신화가 창조되는 밤이다. 다른 땅 다른 시대. 지독히도 불행한 인간들, 그럼에도 환희와 빛으로 가득한 순간.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 살아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대로라면 인물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하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큰 존재로 우리 앞에 서있다. 눈부신 아름다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귓가에 작은 것들의 신이 속삭인다. “그래. 네 삶은 불행했고, 불행하고, 불행할 테지. 하지만 그 속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었어, 위대한 정답이 있었어.”

 제인이 내 손목에 경쾌하게 톡, 찍어준 보라색 스탬프.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어본다. ‘UNHAPPY’. 그리고 그녀가 담배연기 가득 불어준 숨으로 난 다시금 살아난다. ‘그래,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달콤한 향기가 동맥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나는 춤을 춘다. 사람들은 내 몸에서 나는 불행의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그때, 내 삶에 빛이 있어라.

 큰 것이 만드는 질서 아래 작은 것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자유로운 먼지인 우리들은, 그 어떤 큰 것에도 종속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먼지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먼지들끼리 힘을 합해 큰 무언가를 부숴야 하나? 그래도 여전히 불행하다면, 아직도 실패하고 있다면. 작년에 사람들은 큰 싸움을 했고, 그리고 승리했고, 그래도 부숴야할 것들은 아직도 산더미다.

 제인은 뉴월드를 찾은 청중들에게 말한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암무는 그녀와 사랑하는 이에게 곧 닥칠 일을 모른 채 웃으며 내일을 기약한다. “나알레이.” 갈 길은 아직 멀고, 전쟁은 더욱 교묘해졌다. 그리고 이 불행한 삶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지 같은 우리들은 아랑곳 않고 서로의 속삭임을 듣고 냄새를 맡는다. 그때 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본다. 작고 여린 것들을 부르는, 지키는, 감싸 안는 신의 미소를.
김연우 <조선대 국문과 2년, 청년인문학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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