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 1976년, 양 9.1일 음 8.25일 윤 8월 공달’. 괘종시계 안에 끼워 둔 쪽지에 적힌 기록이다.

 “내가 뭐이든 간직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기록을 안해놨으문 요 날짜도 폴쎄 다 잊아불었겄제.”

 남다른 기록벽으로 생애를 한 자 한 자 새기듯 쌓아올려온 김오동(80·강진 성전면 명산리 오산마을) 할아버지.

 지난 1975년부터 40여 년간 일기 쓰기를 그치지 않아왔다. 그의 남다른 기록벽은 집안 곳곳 살림살이들에도 이어졌으니, 제각각 이 집에 흘러들어와 살게 된 내력을 이름표처럼 붙이고 있다.

 큰딸이 사준 괘종시계는 이 집에 온 지 자그마치 40여 년.

 “아즉도 썽썽해. 시방도 잘 가. 근디 그 전에는 열두 시를 치드니 인자 열한 시까지만 쳐. 열두 시를 못 쳐. 고것 말고는 암시랑토 안해.”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딸이 열여섯 살 무렵에 사준 시계다.

 “우리 큰딸이 국민학교 졸업 타고 서울로 일하러 갔어. 집은 가난하고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응께 학교를 더 못 갤쳤어. 니그 오빠 갤칠란께 학교 못 보내겄다 그런께 그 애린 나이로 서울로 돈 벌러 갔제.”

 그 딸이 월급을 모아서 사준 시계다.

 “강진읍내 시계방에 가서 만오백원을 주고 같이 샀어.”

 그 역시 가족사의 기억할 만한 장면일 것. 시계 테두리를 따라 노란 테이프가 짱짱하게 둘러져있다.

 “시계가 밥을 주문 이리 밀려가고 저리 밀려가고 근께 움직거리지 말라고 감았어.”

 애틋하야,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다. 어린 나이로 어엿한 어른 몫을 해내야 했던, 동생을 위해 오빠를 위해 학교 대신 돈 벌러 집을 떠나야 했던 그 시절의 모오든 딸들의 청춘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시계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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