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 존 에러렛 밀레이 눈 먼 소녀.
 당신의 생각(믿음)을 조심하십시오,
 생각은 곧 말이 됩니다.
 
 당신의 말을 조심하십시오,
 말은 곧 행동이 됩니다.
 
 당신의 행동을 조심하십시오,
 행동은 곧 습관이 됩니다.
 
 당신의 습관을 조심하십시오,
 습관은 곧 운명이 됩니다.
 - 찰스 리드 <운명>
 
그리스로마신화에, 그리스로마신화는 없다

 본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은 없다. 디즈니판 영화로 유명한 라푼젤·빨간 모자·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등이 민속학자였던 그림형제가 채집한 독일의 구전설화이듯, 그리스로마신화도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던 미케네문명에서 비롯되어 오랫동안 그리스와 그 변방에서 구전되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비롯한 작가들의 구미에 맞게 채록 변형되었다. 이야기도 사람과 같아서 오랜 시간의 결을 따라 천천히 변화해간다. 가령, 아이들이 읽고 아쉬워하는 ‘판도라의 상자’ 속 아리땁고 호기심 가득한 여인 판도라는 본디 미케네의 태모신이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처럼. 그러나 잦은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모계중심 사회는 가부장제를 중심한 부계사회로 변환되었고, 위대한 여신 판도라는 인간 세상에 재앙을 가져온 한낮 여인으로 전락하였다.

 고전의 묘미는 그 기원을 찾거나 알게 되는데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눈높이를 맞추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은 때때로 두 가지 친절함을 위해 더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친다. 친절함 첫 번째는 지적인 이해를 위해 쉬운 언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은 삭제하는 것, 두 번째는 도덕적으로 아이가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을 잘라내 버리는 오만! 그러나 문학은 ‘사건을 말하려고’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가십과 무에 다를 게 있는가. 내가 의도와 마음을 전달하기위해 말의 힘을 빌리듯 작가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독자에게 말 걸기 위해 사건을 빌린다. 따라서 사건은, 항상 사건 이상이다. 가령 그리스신화에서 자식들을 미워해 아내 가이아의 배속에 그대로 머무르게 했던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살아남은 크로노스는, 그 후로 자신도 같은 일을 겪을까 두려워 자식이 태어나면 꿀꺽! 삼켜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감행한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어로 ‘시간’, 시간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 아무리 도망해도 생은 언젠가 마지막을 고하고,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사랑의 기억도 어느새 서서히 희미해진다. 현재는 금세 과거가 되고 오늘을 다시 기약하기위해 내일을 기다리지만 그 내일도 눈 깜짝할 새에 어제가 되어버리는 나날. 거인신 크로노스가 아버지와 자식을 삼키는 사건은 시간의 속성에 대한 은유다. 나 또한 시간이니, 내 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을 잠식하며 서서히 자라오지 않았던가. 인간의 기억 또한 시간이니, 먼 과거를 망각으로 가두며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모습을 한 제우스가 아비를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에 가두니 시간을 가두는 일은 오랜 인간의 숙원,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몇 번의 장기 기증 후 죽어야할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복제인간들의 학교가 등장한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예고했듯 인간은 불멸을 받아들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의 죽음을 유예하는 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는 일. 아프고 가여워도 인간은 자기를 보존하기위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가혹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생에 대한 집착은, 삶에 대한 이유 없는 의지는.

 그리스 신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그렇다. 신을 속여서 몇 번이고 지옥에서 탈출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시지포스가 그렇고 포세이돈의 방해에도 기필코 자신의 땅 이타케로 돌아갔던 오디세우스가 그렇다. 인류는 오래,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과 신화 속 믿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며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신화는 믿었던 자들이 그 믿음을 어떻게 실현해 가는지 보여주는 인물들로 가득한데,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추구하기에 결말의 성공이나 비극적 파국과는 상관없이 위대한 인물로 기억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믿느냐고, 무엇 때문에 믿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우선 믿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고, 현재의 불완전함을 믿고, 그렇기에 자신이 노력할 것임을 믿고, 언젠가는 완전에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아이가 말한 완전이란 말 그대로 ‘흠결 하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점점 더 나아지려고 할 거라는 것, 그런 태도의 완전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인물들도 그러해서 자기의 힘만 믿고 돌진하는 영웅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점을 의식하고 있던 인물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자신과 더불어 타인들을 구원한다. 아이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아이들에 기대어 인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박혜진 <문예비평가>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