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토 류스케 글, 다키다이라 지로 그림, 김영애 옮김
용기가 키운 불꽃

▲ ‘모치모치 나무’ 책 표지.
 거칠어 보이는 판화 그림이 인상적인 일본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제목마저도 생소한 ‘모치모치 나무’입니다.

 지은이 사이토 류스케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 문예과를 졸업했습니다. 1968년 ‘혀 내민 쵸마’로 쇼각칸 문학상, 1971년 ‘제등집의 의붓자식’으로 산케이 아동출판 문화상, 1978년 ‘하늘의 붉은 말’로 일본 아동문학자 협의회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하치로’, ‘하늘의 피리’, ‘꽃 피는 산’, ‘모치모치 나무’, ‘히사의 별’ 등의 그림책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다키다이라 지로는 1940년경부터 목판화를 시작하여 전후 일본 미술회에 참가하여 일본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고, 1968년 제 6회 국제판화비엔날레전에 초대받아 출품했습니다. 1970년에 그림책 ‘꽃 피는 산’으로 고단샤 제 1회 출판문화상을, 1974년에는 제 9회 모빌 아동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림책으로 ‘하치로’, ‘상코’, ‘모치모치 나무’ 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사이토 씨와 다키다이라 씨는 사이토 씨가 세상을 뜨기까지 30여년간 우정을 나누며 ‘모치모치 나무’외에도 ‘꽃 피는 산’, ‘하치로’, ‘반날 마을’ 등 빼어난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고 합니다.

 옮긴이 김영애 씨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며 일본어 교육에 관해 공부했고,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일본의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 역시 김영애 씨가 일본 도쿄에 살 때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이 읽어주신 인연으로 소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본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책인데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옮겨 볼 용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제 책 내용을 만나볼까요?
 
▲어째서 마메타만 이리도 겁쟁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마메타만큼 겁 많은 녀석도 없어. 이제 다섯 살이나 됐으니 밤에 뒷간쯤은 혼자 갈 만도 한데 말이야. 그런데 마메타는 할아버지가 따라가 주지 않으면 밤에는 혼자서 오줌도 못 누는 거야. 뒷간은 집 밖에 있는데다 밖에는 커다란 모치모치 나무가 떡 버티고 서서 하늘 가득 풀어 헤친 머리카락을 부스럭대며 “와악!”하며 두 손을 쳐든대나.

 할아버지는 깊이 잠든 한밤중에 마메타가 “할아부지!”하고 아주 조그만 소리로 불러도 “쉬냐?” 하며 금세 일어나지. 같이 자는 하나밖에 없는 요가 젖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산 위 사냥꾼 오두막에서 자기랑 단 둘이 사는 마메타가 가엾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마메타 아버지는 곰이랑 싸우다 머리가 쩍 갈라져 죽었지. 그렇게 담이 큰 이었어. 힐아버지도 예순넷이나 된 지금도 영양을 쫓아 험한 바위들을 펄쩍 잘도 넘어 다니지. 그런데 어째서 마메타만 이리도 겁쟁이인걸까.

 모치모치 나무는 마메타가 붙인 이름이야. 오두막 바로 앞에 서 있는 무지무지 큰 나무지. 가을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갈색 열매를 수북이 떨어뜨려 줘. 그 열매를 할아버지가 나무 절구로 찧고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지. 그걸로 떡을 쪄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게 맛있어.

 “야아 나무-, 모치모치 나무! 열매- 떨어뜨려!”

 낮에는 나무 아래서 한 발로 쿵쿵 쳐 대며 잘난 척 성화대던 마메타도 밤만 되면 꼼짝 못하지. 나무가 화가 나서 두 손으로 ‘귀신이다-!’하고 위에서 겁주는 거야. 밤의 모치모치 나무는 그 쪽으로 고개만 돌려도 오줌이 쑥 들어가 버리지.

 할아버지가 쭈그리고 앉아 마메타를 무릎 사이에 끼고 “야아, 좋은 밤이다. 별이 손에 잡힐 듯하구나. 깊은 산속에선 사슴이랑 곰들이 코 풍선 불며 곯아 떨어졌겠지. 자, 쉬-이”하고 말해주지 않으면 도대체 쉬가 나올 생각을 않는 거야. 그냥 잔 날엔, 다음날 아침에 잠자리가 홍수가 나니 할아버지는 꼭 그렇게 해주지. 다섯 살이나 돼 ‘쉬-’라니 원. 하지만, 마메타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걸.
 
▲ “산신령의 축제, 용기있는 아이만 볼 수 있어”
 
 “오늘밤은 그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지는 밤이란다.” 할아버지가 말해 주었지. “동짓달 스무날 축시엔 말이다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지지. 자지 말고 있다가 보려무나. 참 아름답단다. 이 할아비도 어릴 때 본 적이 있어. 죽은 네 아비도 봤다더라. 산신령의 축젠데, 딱 한 아이만 볼 수 있단다. 용기 있는 아이만 말이야.”

 “.....그럼, 난 도저히 안 되겠네......”

 마메타가 조그만 소리로 울 듯 말했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봤다면 자기도 보고 싶은데 말이지. 하지만 이런 겨울 한밤중에 모치모치 나무를, 그것도 혼자서 보러 나가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부들부들. 자잘한 가지 가지에까지 온통 불이 켜진 나무가 밝고 뿌옇게 빛나 마치 꿈꾸듯 아름답다니, ‘낮이라면 볼 텐데....’ 하지만 밤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들부들, 오줌을 싸버릴 것 같아.....

 마메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담배 냄새 나는 할아버지 가슴팍에 코를 들이박고 초저녁부터 자버렸어.

 마메타는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깼어. 머리맡에서 곰이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야. “할아부지-” 놀라서 할아버지에게 달려드는데, 할아버지가 없는 거야.

 “마, 마메타, 걱정마라, 할아비는, 할아비는 배가 좀 아플 뿐이야.” 곰처럼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고 있는 건 할아버지였어.

 “할아부지!” 무섭고 놀라 마메타는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방바닥에 푹 쓰러지더니 이를 앙 다물고 점점 더 심하게 신음할 뿐이야.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 해!’ 마메타는 강아지처럼 몸을 웅크리고는 앞문을 몸으로 들입다 밀어젖히고 내달렸지. 잠옷 바람에, 맨발로, 오 리나 되는 산기슭 마을까지… 바깥은 별이 총총하고 달도 떠 있었어. 산마루 내리막길은 온통 새하얀 서리로 눈이 내린 듯 했지. 서리가 발을 깨물었어. 발에서 피가 났어. 마메타는 울며울며 달렸지. 아프고 춥고 무서웠어. 하지만, 그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죽는 게 더 무서워. 울며울며 산기슭의 의사 선생님에게로 달렸어.

 할아버지만큼 나이든 의사 선생님은 마메타의 얘기를 듣고는 “오, 오…”하더니 두루마기로 마메타를 덮어 업고 약통을 메고서 한밤중의 고갯길을 힘겹게 올랐어. 달이 떠 있는데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올겨울 첫눈이었어. 마메타는 두루마기 속에서 내다봤지.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허리를 발로 툭툭 찼어. 왠지 할아버지가 죽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마메타는 오두막에 들어갈 때, 또 하나 신기한 걸 봤어.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져 있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어? 정말이네, 마치 불이 켜진 듯하구나. 하지만 저건 칠엽수 뒤로 마침 달이 떠오르고, 가지 사이로 별이 빛나고 있는 거야. 게다가 눈까지 내리고 있어 불이 켜진 듯 보이는 거지”하고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마메타는 그 뒤는 알지 못해. 의사 선생님을 도와 아궁이에 불 지피랴 물 끓이랴 바빴으니까. 하지만 다음날 아침 배앓이가 나아 기운을 차린 할아버지는 의사 선생님이 돌아간 뒤 이렇게 말했어. “넌 산신령의 축제를 본 거야.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진 거지. 넌 의사 선생님을 부르러 혼자 밤길을 간 용기 있는 애였으니 말이다. 자기를 겁쟁이라고 생각지 마라. 사람은 고운 마음씨만 있으면 해야만 하는 일은 꼭 해내는 법이지. 그걸 보고 다들 놀라는 거야. 하하하.”

 그래도 마메타는 할아버지가 기운을 차리자, 그날 밤부터 “할아부지-”하고 쉬 한다며 할아버지를 깨웠대나.
 
▲“할아버지가 죽는 게 더 무서워”
 
 우리의 옛 정서와 많은 점이 닮은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마메타가 모치모치라고 이름 붙여준 나무는 사실 ‘칠엽수’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칠엽수는 일본이 원산지이며, 높이가 30미터에 달하는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나무로, 여러 나라에서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며 봄이 되면 거리에 꽃가루를 가득 흩날리고, 프랑스에서는 마로니에라고도 부릅니다. 어린 가지와 잎자루에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의 털이 있으나 곧 떨어집니다. 잎은 마주 나고,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 겹잎에 6월에 분홍색 반점이 있는 흰색 꽃을 피웁니다.

 낮이면 발로 툭툭 차며 열매를 떨어뜨리라 호령할 수 있는 나무이지만, 밤이 되면 너무 크고 무시무시해서 나오던 오줌까지 쑥 들어가게 하는 모치모치 나무! 마메타는 동지달 스무날 그 나무에 불이 켜진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오면서 결국 불 켜진 모치모치를 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할아버지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잠이 깬 마메타는 잠옷 바람에, 맨발로, 오 리나 되는 산기슭 마을까지 차가운 서리를 밟으며 뛰어갑니다. ‘서리가 발을 깨물었어. 발에서 피가 났어. 마메타는 울며울며 달렸지. 아프고 춥고 무서웠어. 하지만, 그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죽는 게 더 무서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함께 추운 서리 위를 달리고 있는 듯 나 역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별이 총총한 추운 겨울 밤 혼자서 산기슭을 내달리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혹시나 그 사이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았나 걱정하는 마메타의 마음이 곧 읽는 이의 마음이 됩니다.

 하지만 그 용기와 따뜻한 마음 덕분에 딱 한 아이만 볼 수 있다는 불 켜진 모치모치 나무를 보게 됩니다. 불 켜진 모치모치 나무는 마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책장을 넘기는 순간 와아!하고 자연스럽게 탄성을 터트리게 만듭니다. 이 한 페이지를 위해 앞서 그토록 거친 판화로 단순하게 그린 것처럼 한껏 화려함을 뽐내는 모치모치 나무! 그 전까지 다소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형형색색 불이 켜진 모치모치 나무는 봄날의 벚꽃처럼 탐스럽고 화려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이 그림책은 이야기가 갖춰야할 기승전결의 구도를 정확하게 밟고 가면서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몰입도를 높입니다. 지금이라면 너무 뻔한 구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일본에 처음 소개된 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메타와 한 마음이 되어 밤길을 달리는 마메타를 응원했을지 가히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 몇십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에도 마메타의 용기는 이 책을 읽는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불 켜진 모치모치처럼 아름다운 선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그림책이 갖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때, 손자 손녀들에게 몇 번이고 다시 들려주어도 좋을 아름다운 이야기, 패전 후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일본인들의 마음과 소망이 담겨 있다는 비난은 잠시 뒤로 미루고 그냥 이야기 자체로 아름다운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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