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의 잘못은 크게 2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리어왕은 아버지로서 코델리아를 대하지 않고 국왕으로서 코델리아를 대했다. 국가 재정의 흑자여부를 따지는 것과 같이 리어왕은 자식의 사랑을 수치로 환산했다. 설령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리어왕의 계산적 면모는 충분히 아버지답지 못했다 할 수 있다. 리어왕은 결국 국왕으로서 코델리아를 추방시키기까지 한다.

 둘째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 해오지 못한 상태에서 국왕으로서의 역할까지 놓아버렸다는 것이다. 두 딸의 감언이설에 속아 코델리아의 진정성 있는 말은 놓쳐버리고, 결국 나라를 전쟁상태에 도달하게까지 한다. ‘리어왕’은 나라의 대표자가 내린 불완전한 판단은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충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리어왕은 결국 자신이 꿰뚫어보지 못한 말들 속에 코델리아를 놓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누군가를 시험하려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 타이틀 아래서 결말까지 제 역할을 다 해낸다.

 서양 효녀에는 코델리아가 있다면 동양에는 심청이가 있다. 그러나 온갖 기상천외한 요소들이 등장하는 심청전이 리어왕의 이야기보다도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리어왕과 심청전은 꽤나 많이 차이가 있다.

 우선 주인공들부터가 다르다. 셰익스피어가 코델리아를 통해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강조했다면, 작자미상의 심청전은 심봉사를 통해 심청이를 강조했다. 심청전은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설령 그 시련이 부모로부터 발생된 거라 해도 제 부모를 사랑하고 효를 다하는 심청이를 내세워서 우리 모두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될 것같은 프레임을 씌운다.

 어릴 적에는 나도 심청이를 제일가는 효녀라 생각하고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다시 읽어본 심청전에게 느낀 점은 다르다. 심청이는 포장된 비극이다. 비현실적인 요소를 제외한 심청전은 간략히 요약된다. 심청은 인당수에 뛰어내려 죽었다. 이게 전부이다. 과연 심청이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효녀’인지, 죽음으로 도피한 ‘전직 효녀’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든다.

 심청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효도해야 한다는 말에 억눌렸을 것이다. ‘맹인인 네 아비는 젖동냥까지 하며 너를 키웠으니 너는 꼭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말들. 아마 심청은 강요된 효의 반복으로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무능한 부(父)를 둔 유능한 딸은 ‘익사한 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효녀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는 것에 대한 막막함은 매섭게 심청을 짓눌렀을 것이다.

 기대는 곧 불안의 시작이다. 부담감은 기대감의 옆에 기생하며 조금씩 생기를 빨아들인다. 심청전은 효(孝)라는 기생물에게 당한 숙주의 이야기다. 연가시에 기생당한 동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심청은 물로 향했을 테다. 물, 그 깊음만이 심청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유진 <동신여고 1년, 청소년인문학 소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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