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공룡부터 우주 쓰레기까지

▲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네 번째 날 영훈이 준비한 일정은 나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 미국 LA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흘린 게 그의 귀에 들어갔나 보았다.

 그날 햇살은 무척 따가 왔다. 거의 아열대의 한 여름을 방불케 했다. 왜 이곳 도시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려 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추운 것도 싫고 더운 것도 싫고 바로 사계절 따사로운 기후 때문인 것이다. 물만 알맞게 공급된다면 사막이 오히려 살기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식물들은 물을 주면 주는대로 마치 제크의 콩나무처럼 쑥쑥 잘 자라고 열매도 매우 풍성하고 맛있었다. 거리의 수많은 노숙자들조차도 추위가 심하지 않아 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도시였다. 멕시코·시리아 같은 곳에서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고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 등 외국인들이 특히 많은 미국 내에서 드물게 모든 인종을 따뜻하게 품는, 말 그대로 천사표 도시였다.


 자연사박물관은 앞면은 현대식 유리 건축물이고 뒷면은 고풍스런 재래식 벽돌 건물로 신·구 양식이 뒤섞인 형태였다. 들어서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수염고래 뼈가 우리 머리 위를 유령처럼 날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것이 나타났다. 바로 티라노가 트리케라톱스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형태의, 진짜 공룡 뼈화석으로 만든 뼈 박제였다. 공룡의 뼈들을 하나하나 모와서 이렇게 리얼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었다.

▲공룡 뼈 하나하나 맞춰서 장면 연출
 
 요즘 박제는 예전같이 머리만 싹둑 잘라 벽에 거는 것이 아닌 이렇게 뼈나 가죽을 휘고 뒤틀어서 동물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게 만든 게 대세였다. 뻣뻣한 장식물처럼 생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박제는 이제 시대에 뒤처진 수준 낮은 전시물이었다.

미국 LA자연사 박물관.

 그 밖에도 박물관 안에는 수많은 뼈로 만들어진 아주 옛날에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 빙하기의 매머드 같은 동물들이 여기저기 수도 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막의 나라답게 고고학 화석들이 많이 출토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달리는 치타를 비롯한 검치 호랑이, 동굴 곰, 커다란 아르마딜로의 완전한 골격모양도 있었고 특히 보기 드문 작은 익룡 화석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계의 대륙별 동물박제와 인공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꾸며진 파노라마 동물 전시관도 멋졌다.

 특별전시관에서는 인체해부 모형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2만 원 정도여서 가격 부담도 있었지만 이날 만큼은 사람 해부 모양은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 해부 전시물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은 단단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할 듯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항공우주전시관도 개장 중이었다.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

 여기선 달에 다녀온(?) 아폴로 11호의 녹슨 삼각추 모양의 귀향선 등이 있었다. 특히 전시관의 핵심은 바깥벽에 전시하고 있는 거대하고 녹슨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린 로켓과 그 안쪽 건물에 들어가 있는 실제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였다. 여기까지 이것을 운반하는 것만도 엄청난 노력이 들었고 기막힌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이곳은 마치 미국의 과학의 힘을 입증하는 듯 했다.

 엔데버는 거대한 비행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방 둘레가 고열 방지를 위한 수많은 열 방지 타일들로 도배돼 있었다. 마치 목욕탕처럼. 그것도 각각의 부위마다 세 가지 정도 서로 다른 성분으로 구성돼 있었고 이 작은 타일 하나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하니 마치 전체를 동량의 금두께로 도금한 것과 비슷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이들 말만 듣고 있으면 마치 미국 국력이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 같지만, 우리도 그냥 한 번 해보면 되지 않을까? 인공이든 자연이든 거대한 피조물을 대하는 건 늘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익룡 화석

 그래서 일부러 그런 고철 쓰레기일 수도 있는 걸 주워 모아다 전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는 비록 용도 폐기된 우주 쓰레기를 전시하는 곳이지만 그것이 긍지와 역사의 기록이 되고 다시 새로운 물건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쓰레기는 쓰레기로 끝날 수 있지만 쓰레기조차도 우주를 갔다 온 것은 무척 위대하게만 보였다.
 
▲ 코리아타운서 맞이한 한식 불고기
 
 저녁엔 영훈의 제안으로 한인 타운에 가서 한식을 먹기로 했다. 불고기 파티! 아! 미국에서 먹어보는 불고기는 어떤 맛일까? 전날 먹은 순두부찌개는 꽤 괜찮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면 맛집 반열에 들 것 같았다. 불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가 골고루 섞여 나왔다. 돼지갈비는 양념이 잘 배어 있었고 소고기도 미국산이지만 그래도 무척 맛있었다.

빙하기의 매머드.

 된장에 상추 쌈을 하는 동안 입안이 매우 행복해져왔다. 그동안 햄버거, 멕시칸 음식 등 느끼한 것만 먹다가 한식을 먹으니 속마저 편안해졌다. 외국 가서 외국 음식 못 먹겠다고 하면 정말 ‘아재’라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있는 대로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식후엔 한국 사람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코리안 타운이란 이름이 무색한 거리를 산책하고 한국책 서점에도 가보고, 한국 CGV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에서 지극히 영훈 입맛에 맞는 신파조의 영화를 보았다.

 광훈이가 약간 난색을 표했지만, “미국에 오면 미국 사람을 따르는 법이야.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없으면 그냥 따라서 한번 보자”하고 달랬다. 그런데 웬걸 이 한국영화 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식 최루영화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영화 선뜻 안 보았겠지만, 휴먼드라마 같은 영화도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고 이렇게 우연히 외국에서 보았는데 국적이 서로 다름에도 어색하지 않고 마음도 통할 수 있어 우리 분위기에 딱 맞는 힐링 영화라고 생각되었다.

 영훈은 아마 이런 계산까지 하고 미리 골라놓았을까? 집도 없이 떠도는 스파링파트너 복서인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나와 어려서 자기를 버린 홀어머니와 길에서 우연히 만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자폐아인 동생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셋은 한 가족이 되어 어색한 가족생활을 이어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망 반 사랑 반이었던 어머니는 결국 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형으로서 어머니를 대신해 피아니스트인 동생을 성장시키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능글맞은 이병헌의 연기도 좋았지만 특히 자폐동생 역으로 나온 박대희는 연기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 영화 이후 영훈은 계속 그 동생의 염소 같은 “네~에!”라는 목소리를 흉내 내고 다녔다. 그가 좋으면 왠지 우리도 안심이 되었다. 그게 이번 여행의 자연스런 흐름이기도 했다.

 그날도 강행군으로 지쳐서 푹 잘 수 있었다. 여전히 진한 술 한 잔의 아쉬움은 홀로 마음속에 담아둔 채였다.
최종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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