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미래, 이러면 불안하다!

▲ 정부는 지난 3월5일, 제19회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18~22년)을 심의·확정하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국무조정실.
 # 1-어쨌든 지역 사회로

 그는 시설을 벗어난 적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One of them으로 살며 짜여진 일상 속에 살던 시설 거주 장애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머물던 시설이 법인의 자진 폐쇄로 문을 닫지 않았다면, 시설에서 또 다른 시설로 전원되며 뺑뺑이 도는 삶은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는 또 다시 어느 시설 생활인으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 납니다. 자립생활센터 사무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그 이름 때문에 여성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인사했을 때 수줍음 많은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첫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그는 문 닫은 옛 시설에서 문을 연 또 다른 시설로 가는 대신 자립의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수줍고 조용한 사람인줄만 알았던 그는 그러나 사람들과 친숙해지고 공간이 익숙해지자 자신의 성대를 울리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문장을 이어가며 길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짧게 자주 말하며 의사 표현을 했고 한쪽 방향으로 흐르던 관계는 서로 밀고 당기는 상호 작용이 생겨났습니다.

 시설 폐쇄→전원 조치→또 다른 시설로 이사.

 이런 도식을 벗어나 그는 지역 사회로 나왔습니다.
 
 # 2-책임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 어깨에 얹힌다.

 그는 시설을 벗어난 뒤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지원을 받기 위해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70시간 남짓 지원 받는 활동지원 3등급 통지를 받았습니다. 6개월 한시적으로 지원되는 20시간 탈시설-자립 지원 추가 시간과 독거 20시간 그리고 10시간 학교 생활까지 총 50시간의 ‘추가지원’ 시간을 모두 더해도 하루 4시간 남짓 밖에는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체험홈이란 낯선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 채워가야 하는 20년 이상 ‘시설 생활인’으로 살던 그에게 하루 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 제공 결정은 그가 머무는 체험홈을 운영하는 자립생활센터 상근자들의 ‘열정 페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일 저녁과 아침을 챙기고 주말과 공휴일을 메꾸려 체험홈에 들어갈 상근자를 정하며 ‘책임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5월 초에 시작된 자립생활센터 상근 활동가들의 고군분투는 6월 중순까지 이어졌습니다.
 
 # 3-장애 유형이 문제다?

 숟가락을 들고 혼자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이 3등급 결정의 결정적인 사유라고 설명했습니다. 밥을 차려야 숟가락질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인정조사를 담당하는 기관 직원들도 수긍했습니다. 그러나 인정조사표에 따라 점수를 매겨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걷고 혼자 숟가락질을 할 만큼 사지의 기능이 있는 발달장애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활동지원서비스 3등급 이상 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15개 장애유형 중 지적장애인인 게 ‘잘못’인 모양입니다.

 이렇게 ‘결함 있는 인정조사표’는 ‘장애 유형’을 탓하게 만듭니다.
 
 # 4-장애등급제 폐지 이후가 이런 상태라면?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장애등급이 폐지되면 각 서비스별로 그 필요도를 판단하여 지원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신청 자격을 ‘1~3급’으로 제한한 것만 뺀다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에 대해 그 필요도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로 ‘인정조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지금의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복지 서비스가 어떻게 지원될지 가늠해볼 수 있는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서비스 필요도를 결정하는 인정조사표가 ‘장애유형’에 따라 유·불리가 존재한다면, 근간부터 흔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인정조사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직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참여한 활동가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밥을 차려 먹을 수 없다면, 숟가락질을 혼자서 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은 건너 뛰는 게 맞지 않냐. 설문조사할 때도 해당 없으면 1-1은 건너뛰고 2번 질문으로 가도록 설계한다.”

 그렇습니다. 밥을 차릴 수 없다면, 숟가락질을 스스로 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질문입니다. 물론 밥을 차리는 문제와 숟가락질을 하는 문제는 ‘다른 영역’의 질문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은 밥을 차리는 것과 숟가락질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ADL이니 IADL이니 구분하고 ADL은 가능하고 IADL은 불가능하니 각각 달리 평가한다는 것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그 결과는 자립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2019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장애등급을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폐지 이후 필요한 서비스를 온전히 지원할 수 있느냐 여부가 핵심입니다. 2018년 7월을 목전에 둔 지금, ‘하필…’이란 탄식을 자아내는 모습이라면, ‘장애등급제 폐지’ 목소리는 ‘○○서비스 지원 기준 규탄’의 목소리로 이어질 뿐일 겁니다.

 장애등급이 높아지면 달라질까? 성대를 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는 그는 장애등급 재심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인정조사가 좀 더 꼼꼼하게 이루어지면 달라질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조금씩 더 분명히 표현해가는 그는 활동지원서비스 이의 신청을 해놓은 상황입니다.

 수십 년 동안 ‘시설’ 속에 봉인되었던 그의 성대가 더 많이 울리며 그 목소리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가 숟가락질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상’만은 차려질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장애등급 재심사와 활동지원서비스 이의 신청 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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