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다는 것

▲ Le Avventure di Pinocchio. Collodi, C. Published by Marzocco Firenze, 1958
 나는 민들레예요.
 무엇이든 나를 꺾지 못하게 할 거예요.
 매서운 바람에 움츠려들지 않을 거예요.
 언제나 봄의 따스한 햇살의 미소와 속삭임을 잊지 않을 거예요.
 
 누가 뭐래도 난 햇살의 속마음을 믿을 거예요.
 그 사실이 진실 되지 않아도 말이에요.
 그 사실을 믿는 동안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걸,
 햇살의 미소가 나를 감싸는 순간
 그 포근함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희망보다
 내게 소중한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난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믿을 거예요.
 난 지지 않을 거예요, 이길 힘을 모을 거예요.
 난 용기를 믿을 거예요.
 지구가 원래 둥글지 않았다고,
 마젤란의 용기 때문에 둥글었던 거라고.
 
 난 가장 큰 보람을 알아요.
 희망과 용기를 누군가의 심장에서 흐르는 피가
 느낄 수 있게 심어주는 것보다 큰 보람이 있을까요?
 내 따스한 햇살이 겨울이 오기 전 심어두었던
 희망과 사랑, 용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어요.
 그럴 때 햇살도 가장 큰 보람을 느낄까요?
 
 나는 민들레, 내 존재를 생각하며 미소 짓고
 또다시 올 겨울을 향해 가슴을 쭉 펴요.
 - 명휘서 ‘민들레’
 
▲천 개의 관점으로 읽혀야 고전이다
 
 ‘우리는 우리가 잠재적으로 그려보고 될 수 있었을 모습을 펼쳐 보임으로써만 우리 자신이 된다’고 철학자 고병권은 말했다. ‘가능한 모습으로서의 잠재성을 펼쳐 보인’ 인물로 피노키오만한 위인(爲人)이 또 있을까! 게다가 피노키오는 다섯 살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 이름을 모르면 무색할 정도의 유명인. 그러나 우리는 피노키오를 모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정도의, 가능하면 무섭지 않게 정직성에의 교훈을 심어주기위한 피노키오 읽기. 대한민국에서 고전(古典)은 여전히 보수적으로 읽힌다. 고전을 통한 새로운 사유, 고전을 통한 의미탐색은 불가능하다.

 영화와 음악, 글로 쓰인 작품을 불문하고 무릇 천개의 관점으로 들리고 읽힐 때 고전(Classis)이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고 본 자마다 다른 장면을 기억하며, 들은 자마다 좋아하는 까닭이 다르기에 고전이다. 기존의 독법과 상식에 내 시야가 잠식당하지만 않았다면, 고전은 예기치 못한 생각의 풍경을 열어주는 창(窓)이 된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고전의 한 줄을 인용하고, 감독은 옛 영화의 한 장면을 오마주하며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고전에 경의를 바치지 않는가. 그러니 마음대로 읽으라. 다만 의식 속에 사유의 고랑이 파일 수 있도록, 가능한 밑줄을 치며 읽으라.

 가령 피노키오를 읽으며 내가 밑줄 친 문장을 이렇다. “가만 있자, 이름을 뭐로 지을까? 그래 피노키오가 좋겠군. 소나무 열매라, 아주 좋아.” 이 문장은 나를 한달음에 과거로 데려갔다. 열 살 여름 강원도에 놀러갔을 때 처음으로 만져본 단단한 솔방울. 소나무 열매는 냄새마저 푸르렀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말하는 나무토막 아이의 이름을 왜 소나무 열매라고 지었을까. 솔방울은 옹골차다. 그 안에 가능성이라는 씨앗이 촘촘히 박혀있다. 아이가 건강하기를 단단히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기를 제페토 아빠는 바랐을 것이다.
여름 솔방울.
 
▲나는 인형인가 사람인가
 
 내가 피노키오를 처음 만났을 때도 10대의 첫 관문을 통과하던 10살이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당장, 나는 이 친구가 사귈만한 아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귀뚜라미와 말을 하는 아이. 아빠가 입으라는 옷이 싫어서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달아나는 아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하지만 항상 들켜버리는 거짓말만 하는 아이. 피노키오는 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피노키오는 쾌락의 유보와 책임은 배워 익혔으나, 아직 현재에 살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투영이었기 때문이다.

 제페토 아빠를 사랑하지만 노는 건 더 좋다. 사람이 되고 싶지만 공부는 내일로! 이런 피노키오의 이중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코다. 어겨버린 약속과 만천하에 드러난 실수들을 만회하고자 변명과 거짓말을 할 때마다 피노키오의 코는 길어진다. 피노키오 증후군이란 심리학 용어가 있다. 얼굴이 하얘지거나 붉어진다. 손에서 땀이 나고 목소리가 떨린다.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피한다.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며 득달같이 화를 낸다…. 거짓말을 할 때 내 몸은, 행동은, 표정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거짓말을 할 때의 미묘한 신체변화가 피노키오증후군이다. 사람은 하루 평균 10번의 작고 큰 거짓말을 한다는데, 만약 인류의 코가 피노키오 종족과 같다면 오순도순 가족이 모이는 거실의 저녁, 코가 가장 길어져 돌아올 사람은 어른일까 아이일까. 어떤 부류가 사회에서 가장 긴 코를 달고 다닐까. 아이들은 야단맞을 공포 때문에 변명 같은 거짓말을 한다. 무릇 원만한 관계를 위해, 그리하여 내게 돌아올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어른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화라 부르지 않는가. 도덕성과 솔직함에서 아이들을 따를 자 없다.
Le Avventure di Pinocchio. Collodi, C. Published by Marzocco Firenze, 1958

 소설의 말미에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었다. 실수와 잘못을 통해 성장하던 이 아이는 어느 아침 거울을 보고 환희에 찬다. “아빠! 보세요! 드디어 제가 사람이 되었어요!”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든 힘은 무엇일까.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파란머리 요정이 상징하는 영혼의 강림, 영혼의 내재화가 필요했다. 당나귀가 되고 상어뱃속에서 아빠를 구출하는 동안 피노키오는 아직 땅의 아이다. 그러나 인간은 땅과 하늘을 매개하는 존재. 땅이 ‘지금’이라면 하늘은 지향해야할 ‘미래’, 땅이 생명력과 본능과 의지라면 하늘은 고귀한 것을 꿈꾸는 정신성. 피노키오가 병든 제페토 아빠를 위해 고된 노동을 자처할 때 그가 칭찬받아야하는 건 ‘효심’이 아니다. 나처럼 이 사람도 똑같이 아프다는 것. 나처럼 이 사람도 사랑으로 고통 받는다는 것. 사람이 된다는 건 생의 유한성과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담담히 깨닫고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던 피노키오. 그 순간 귀여운 나무인형의 안에서 영혼이 깨어나고 피노키오는 비로소 사람으로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언제 어른으로 될까. 혹 어른인 나는 아직 나무인형인 건 아닌가. 나는 인형인가 사람인가.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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