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북쪽 경계인 호수는? 벽골제 아닌 금강이 유력

▲ 조선시대 전라도지도(광주시립민속박물관 소장본).
 올해는 ‘전라도’라는 이름을 쓴 지 1000년째가 되는 해다. 고려시대 현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 9년째 되던 서기 1018년, 앞서 강남도와 해양도로 나뉘어 있던 지역을 하나로 묶어 전라도라고 칭한 것이 그 시초다. 그로부터 1000년째를 맞이해 금년엔 여기저기서 이를 기념하는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전라도는 왕왕 ‘호남’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전라도와 호남은 묘한 어감의 차이를 주는 듯하다. 전라도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명백히 행정구역 명칭으로 시작된데 비해 호남은 그와 약간은 결이 다른 지역 명칭이란 느낌을 주곤 한다.

 가끔 필자가 근무하는 박물관으로는 호남의 경계선에 대해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 특히 호남에서 ‘호(湖)’가 어디를 가리키느냐는 질문이 많다. 다들 짐작해서 알겠지만 호남의 동쪽 경계선은 소백산맥이고, 서쪽과 남쪽 경계선은 서해와 남해다. 물론 1946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 명백히 전라도로 간주됐던 제주도까지 포함한다면 호남의 남쪽 경계선은 제주도의 남쪽 바다, 즉 동중국해의 어디쯤 될 것이다.
 
▲“북쪽 경계 벽골제 지칭 기록은 없어”
 
 그런데 호남의 북쪽 경계선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그 경계선에 대해 일부에서는 전북 김제시에 있는 벽골제라고 주장하고, 일부에서는 얼추 현재의 전북과 충남을 가로질러 흐르는 금강이라고 한다. 과연 어느 쪽이 맞을까?

 호남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호수의 남쪽이니 한때 거대한 인공호수였던 벽골제를 호남의 북쪽 경계선으로 생각할만하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엽에 피폐해진 벽골제를 수리해 잠깐 사용한 뒤에 다시 호수 기능을 멈췄으니 벽골제를 계속해서 호남의 북쪽 경계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더구나 벽골제는 전라도 안쪽으로 한참 들어와 있는 곳에 있어 옛 사람들이 이 호수를 북쪽 경계선으로 삼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필자가 아는 한, 옛 사람들이 호남의 북쪽 기준점을 벽골제이었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중국에서 동정호를 기준으로 ‘호남’과 ‘호북’을 나눈 공간관념이 이 땅에 적용돼 호남이란 말이 성행했을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더 나가 동정호에 비견되는 큰 호수를 찾다보니 벽골제를 그 기준점이었을 삼았을 것으로 상상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옛 사람들이 호남의 북쪽 경계선으로 생각한 곳은 금강이었다고 보는 쪽이다. 우선 전라도든 호남이든 본질적으로 이들 명칭이 행정구역 구획과 관련된 것이다. 또 예나지금이나 이런 경계선으로 삼을 만한 것 가운데 지리적 경계선만큼 분명한 것이 없는데 이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금강이다.

 또 옛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적어도 조선시대에 전라도를 그린 지도에 하나 같이 금강이 전라도 또는 호남의 경계선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본류를 기준으로 금강 남쪽에 있으면서 전라도나 호남이라 부르지 않는 땅이 있다. 대전, 부여, 논산 등이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지리적 경계선에서는 늘 상징성이 현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전라도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전, 전라도 지역의 북쪽지역은 강남도, 남쪽지역은 해양도라 했는데 강남도(江南道), 즉 지금의 전북지역을 금강의 남쪽에 있었기에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고려시대에 이미 금강을 전라도 또는 호남의 북쪽 경계선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예전엔 강을 버젓이 호수로 불러
 
 참고로 현종 9년 이전에 전라도 남쪽을 해양도(海陽道)라 했고 이는 대체로 지금의 광주전남 지역을 가리켰다. 그 치소, 즉 중심이 되는 고을을 광주에 두었고 그래서 광산, 서석 등과 함께 광주의 별칭 중 하나가 해양이다. 해양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바다가 건너다보이는 땅이라는 뜻인데 ‘양’이 더러 북쪽을 가리킬 때도 있으므로 남해의 북쪽 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전라도의 북쪽 끝이 금강이었는데 왜 호수의 남쪽이란 뜻으로 호남이라 했던 것일까? 강물이 방방하게 들어차면 호수 같은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강을 호수라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관념일 뿐 옛 사람들의 관념은 아니었다. 예전엔 강을 버젓이 호수라 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영산강의 경우를 보자. 중류인 나주쯤에서는 금호(錦湖)라고 했다. 이 이름은 어느 재벌 창업자의 호로 쓰여 지금도 익숙해졌다. 하류로 가면 같은 영산강을 서호(西湖)라고 했다. 영암군에 서호면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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