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 앞치마를 살로메의 베일로 바꾼 오징어들
백색 프레임에 갇힌 자들의 참담한 실연

▲ 백안(百眼)의 아르고스에게 ‘이미지 프레임’은 통하지 않는다. 헤르메스는 ‘소리’ 프레임으로 그를 처치한다.
 “죄수 아저씨들! 크렌젤리 좀 주세요.”

 우리는 모두 이 맑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우리에게 생글생글 기분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깨끗하고 티없는 소녀의 얼굴을 유쾌하게 바라보곤 했다. 유리창에 짓눌려 납작해진 코, 미소 띤 얼굴에 앵두 같은 입술 사이에 반짝이는 작고 흰 이(齒)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리에겐 한없이 기쁜 일이었다.

 길고 숱이 많은 밤색 머리칼은 어깨를 지나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우리, 불결하고 침울하며 추한 인간들인 우리는 그녀를 우러러 본다. 그녀와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음성도 부드러워지고 농담도 가볍게 던졌다. 그녀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뭐든지 특별했다. 제빵사는 페치카에서 가장 잘 구워진 불그스름한 크렌젤리를 꺼내어 따냐의 앞치마에 살짝 던져준다.

 “조심해! 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 막심 고리키의 ‘스물여섯과 하나’ 中
 
 스물여섯 명의 남자들이 지금 소박하고 풋풋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축축한 지하실에 갇힌 스물여섯 개의 살아있는 기계들’이 열여섯 살의 꽃다운 처녀를 흠모하는 중이다. 스물여섯 명의 순수한 사랑에는 추잡한 음심도 없고 혼자 독차지하려는 졸렬한 이기심도 없다. 그들에게 ‘따냐’는 비너스이면서 성모 마리아와 같은 존재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악취가 나는 웅덩이가 있는 낮고 비좁은 지하실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스물여섯 명의 남자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따냐의 말처럼 ‘죄수’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기 대신 던져주는 썩은 내장을 점심으로 먹으며 때와 그을음과 거미줄과 곰팡이와 함께 수면 부족의 몽롱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물여섯 명의 남자들은 ‘아궁이 위 시커먼 두 개의 배기구가 마치 두 눈인 것처럼 끝없는 작업을 노려보고’ 있는 곳에서, ‘한결같이 어두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괴물의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눈’을 보아야 했다. ‘날이면 날마다 밀가루 먼지와 뜰에서 묻어온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역한 냄새가 나는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반죽을 개어 땀에 절은 크랜젤리를’ 주무르는 일은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절망 끝에 찾은 우상과 우상의 위기

 “두 계집애가 나 때문에 싸웠단 말이지. 그년들이 어쨌는지 아시겠소들? 하하! 한 년이 다른 년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현관 바닥에 자빠뜨려 그 위에 올라탔단 말잊지. 하하하! 꼴불견이었지! 왜 이 계집애들은 정직하게 싸움을 못하는 거지? 왜 할퀴고 난리야, 응? 그럼 그렇지, 내겐 여자복이 있다니까, 안 그래? 눈 한번 깜짝하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거야.”

촛불은 진실이다. 그러나 촛불 뒤를 따라오는 프레임은 거짓이다. 프레임은 나를 죽일 수 있다.

 “잔 나무 가지쯤은 손쉽게 넘기겠지. 하지만 소나무라면 다를 걸.”

 “그러니까, 지금 그거 내게 말한 건가”

 “네게 한 말이지.”

 “무슨 말이야? 소나무가 뭐 어째? 너 말해 봐. 그게 누구지? 넌 나를 모욕했어. 그 어떤 여자도 내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못하구 말구! 근데 네가 내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했다 이거지? 자,”

 “말해줄까”

 “말해 봐. 누구지”

 “따냐, 알고 있지? 바로 그 애야. 한번 해보라구.”

 “그 애 말인가? 내겐 식은죽 먹기지.”

 “우리가 지켜볼 거야. 그앤 자네 따위는….”

 “지켜본다구? 하하! 두 주면 충분해. 내 보여주지. 난 또 누구라구. 따냐 쯤이야, 흥!”

 “허풍 떨지 말라구, 군인 나리!”

 “두 주일이면 끝이야. 너 이 자식!”

 - 막심 고리키의 ‘스물여섯과 하나’ 中
 
 따냐에게 위기가 닥쳤다. 아니, 스물여섯 남자들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버터를 바른 고급 흰 빵을 만드는 옆 제빵장의 호색한(好色漢)이 따냐를 사냥감으로 찍어버렸다. 그 군인 출신 제빵사의 거들먹거리는 작태에 그만 따냐를 노출시키고 만 것이다. 스물여섯 남자들은 그들의 우상 따냐가 이 짐승같은 녀석의 마수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때로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심란한 나날을 보낸다. 그들의 따냐는 어떻게 될까?
 
▲Argos killed by Mercurius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 아르고스가 아흔아홉 개의 눈이 감긴 채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눈을 겨우 깜박이고 있다. 혼신의 힘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지만 그 얇은 살가죽이 천근만근이다.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눈마저 감기면 아르고스는 끝장이다.

 제우스가 또 바람을 피웠다. 그런데 역시나 아내 헤라에게 들키고 말았다. 헤라가 한눈 파는 사이에 지상으로 내려와 밀애를 즐겼으나 뒤따라온 헤라에게 딱 걸린 것이다. 다행히 그 순간 연인 이오를 암소로 변장시켜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바람이라면 이골이 난 헤라가 모를 리 없었다. 헤라는 사랑의 증표로 이오를, 아니 그 예쁜 암소를 선물로 달라고 했고 궁지에 몰린 제우스는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헤라가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를 시켜 밤낮으로 이오를 지키게 하니 제우스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오를 구출할 임무가 전령의 신 헤르메스에게 주어졌다. 그는 이 임무를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헤르메스는 목동으로 변장해 ‘임시 목동’ 아르고스에게 접근한다. 상인의 신답게 현란한 말솜씨로, 씨름의 신답게 친밀한 밀착으로, 도둑의 신답게 마음을 빼앗았으나 부릅뜬 백 개의 눈을 피할 방도는 없었다.

헤르메스는 목동의 신 판을 찾아가 피리를 빌린다. 그리고 아르고스 옆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과연 마적(魔笛)이었다. 판의 피리는 마르시아스의 피리처럼 우아했고, 아폴론의 수금처럼 부드러웠으며, 오르페우스의 노래처럼 감미로웠다. 아르고스의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꼭 하나는 반드시 뜨고 있던 아르고스의 마지막 눈마저 감기는 순간 헤르메스의 날선 칼이 아르고스의 목을 잘라냈다.
 
▲우상의 배신인가, 신념의 배반인가

 ‘우리들은 그 꼴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문을 박차고 ‘와아!’ 하고 밀려 나가서 휘파람을 불어대면서 큰 소리로 그녀를 난폭하고 잔인하게 야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들을 보고 움찔하더니 진창에 못박힌 듯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우리는 그녀를 빙 둘러싸고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마음껏 퍼붓고 더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는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앙갚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우리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고, 이 최상의 것이 비록 별것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스물여섯 명에게 그녀는 유일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고통 받아도 싸고 벌을 받아 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녀를 모욕했던지!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시종일관 사나운 눈초리로 우리를 노려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막심 고리키의 ‘스물여섯과 하나’ 中
 
 우리의, 아니 그들 스물여섯의 따냐는 어찌 되었는가? 분노로 가득찬 스물여섯 명의 차가운 눈길과 뜨거운 입질을 보면 틀림없이 바람둥이 콧수염에게 넘어가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진짜 그러한가? 그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그들이 본 유일한 장면은 두 사람이 한 장소에 들어갔다 나온 것뿐이었다.
 
▲진실의 빛, 그 빛 너머의 그림자에 있다
 
 눈 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유하의 시(詩) ‘오징어’는 ‘프레임’을 말하고 있다. 오징어에게 진실은 빛 뒤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다. 오징어에게 진실은 빛이 아닌 것이다. 빛은 프레임이다. 빛은 광명이요 진리라는 일반의 틀에 갇히면 ‘진실의 빛’을 보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진실한 빛은 오히려 뒤에 숨은 경우가 많으며 나를 해치는 휘황한 광휘는 찬란하게 나의 눈을 덮친다. 그 찬란한 빛에 내 눈이 갇히면, 그 프레임에 걸리면 오징어 꼴이 되고 만다.

 헤르메스는 ‘헤르메틱’하게 프레임을 씌웠다. 프레임은 속이는 것이다. 속이는 자는 상대의 약한 고리를 찾아 공략하기 마련이다. 아르고스의 약한 고리는 무엇인가? 백안(百眼)의 아르고스를 상대로 ‘눈싸움’을 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아르고스의 허점은 귀에 있었다.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그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신념의 프레임이 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내가 판단한 세상이 아니라 프레임을 씌운 사람이 판단한 세상이다.

 따냐를 우상으로, 따냐에게 선물하는 크렌젤리를 우상에게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 생각했던 스물여섯 명의 남자들은 맹신(盲信)하는 맹목(盲目)일 뿐 혜안을 갖지 못했다. 우상에 대한 신념은 맹목적이기에 강하지 않으며, 작은 프레임 하나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자신만만해 하는 바람둥이의 과장된 몸짓과 능란한 허언에 속아 스스로 그들의 우상을 혐오하고 파괴해버린 것이다. 신념을 잃은 우상은 악마와 같이 더러웠으므로.
 
▲프레임 전쟁, 피아 식별 못하면 죽는다

 바야흐로 ‘프레임 전쟁’의 시대다. ‘촛불’은 진실한 빛이었고 그 진실한 빛은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 만큼이다 중요한 것은 승리를 지키는 것일 터, 지금은 진정 지켜야 할 때다. 정치의 시작은 프레임이요, 정치의 끝도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힘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자중지란으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노회한 정치꾼들일수록 즐겨 쓰는 수법이다.

 흔히 쓰는 정치 프레임 하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오래되었으나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 프레임은 정치혐오를 유발하는 언어로 지금도 효력을 발휘한다. 민주세력 안에서 ‘도덕성’과 ‘순수성’을 거론하며 ‘내부총질’을 일삼는 일군의 무리들은 분명 밀파된 간자이거나 ‘민주’와는 상관없이 돈을 쫓는 모리배들일 테지만, 그들의 차가운 눈길과 뜨거운 입질에 놀아나는 수천 수만의 오징어들은 대체 무언가? 도덕과 순수가 만발한 세상을 굳이 싫어할 이유는 없으나 그 도덕과 순수라는 ‘안경’을 누가 쓰고 있는지, 혹은 모두가 아닌 특정한 누군가만이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죽 쒀 개 줄 순 없지 않은가? 정치의 본령은 ‘내 편 찾기’다. 피아(彼我) 식별을 하지 못하면 총 맞아 죽는다.

 프레임에 걸려 나를 살리는 내 친구와 나를 죽이는 적을 분간하지 못하면 어찌 되는가? 어쩔 수 없다. 모가지가 잘리고 눈깔이 뽑혀 공작의 깃털에 박히든지, 아니면 말린 오징어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든지 둘 중 하나가 되면 그뿐이다. 한 가지 더, 고운 앞치마를 두른 우리의 어여쁜 따냐가 스물여섯 ‘반죽 덩어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까지 듣고.

 “당신들, 더러운 돼지새끼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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