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찾은 우리 색

▲ ‘꽃이 핀다’ 책 표지.
 책 표지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꽃이 핀다), 빨간 바탕에 하양 찔레꽃의 만져지는 느낌이 얼른 책장을 넘겨보고 싶게 합니다. 이 책은 그 어느 책 보다 작가의 공이 많이 들어간 그림책입니다. 그래서 좋은 그림을 집안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선택해서 구입하듯, 그림책도 그렇게 골라 집안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백지혜는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사랑하는 한국화가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한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전통 진채화를 전공했습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상을 받았고 개인전을 네 차례 열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채색화를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 책은 색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우리 산과 들에서 자라는 꽃과 열매를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꽃과 열매, 잎에 담긴 자연의 색, 우리 고유의 색을 재현하기 위해 자연 원석을 정제하여 얻은 석채와 연지, 등황, 쪽 등 옛 어른들이 쓰던 천연 물감으로 비단에 그렸습니다. 이 책은 지은이의 첫 그림책입니다. - 출판사 소개 인용

 자연에서 찾은 총 13가지 색이 이 책에 소개되었는데, 그중 첫 번째 색은 책 표지와 같은 빨강입니다.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에는 그 색에 관한 설명과 식물에 대한 설명이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식물에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자연에서 찾은 총 13가지 색
 
 ‘빨강, 동백꽃 핀다. 빨강은 불, 불꽃, 해를 상징하는 색이에요. 우리 조상들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 색상을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 다섯 가지로 보았어요. 이를 오방색 또는 오정색이라 하는데, 그 가운데 빨강은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 여름, 남쪽을 뜻해요. 빨간색에는 나쁜 귀신을 쫓는 힘도 있대요. 아이가 태어나면 붉은 고추를 대문에 매달고, 부적을 쓸 때는 붉은 글씨로 쓰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랍니다. 동백은 제주도나 따뜻한 남쪽 지방 바닷가에서 많이 자라는 늘푸른떨기나무예요. 늦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짙은 빨간 꽃 또는 흰 꽃이 탐스럽게 핍니다.’ -활짝 핀 동백꽃 두 송이와 아직 머물러 있는 한 송이 동백이 오른쪽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설명을 읽지 않고 그냥 동백꽃만 오래오래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노랑, 민들레 꽃 핀다. 노랑은 흙을 상징하는 색으로 땅, 비옥함, 풍요로움을 뜻해요. 빨강과 마찬가지로 오방색의 하나이며, 동서남북 네 방위의 한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앙을 나타내요. 민들레는 들이나 길가, 밭둑에서 저절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에요. 봄에 잎 가운데어서 긴 꽃대가 나와 노란 꽃이 피고, 꽃이 지면 흰 솜털이 달린 씨가 맺혔다가 바람에 날려 멀리 퍼져요. 어린잎과 뿌리는 나물로 먹고 꽃 피기 전의 뿌리는 소화를 돕는 약으로도 씁니다.’-연노랑 바탕에 노란 민들레 일곱송이가 하늘을 향해 피어있는 그림이 얌전합니다.


 ‘분홍, 진달래꽃 핀다. 분홍은 벚꽃처럼 엷은 연분홍부터 작약처럼 짙은 진분홍까지 여러 가지예요. 원래 홍색은 오간색의 하나로 빨강과 하양의 중간색인데, 홍색이 짙으면 진홍, 산뜻하고 밝으면 선홍, 흰색이 많이 섞이면 분홍입니다. 오간색이란 오정색들 사이의 중간색으로 홍색, 벽색, 녹색, 자색, 유황색, 다섯 가지가 있어요. 진달래는 산기슭에서 많이 자라는 떨기나무로 봄에 분홍 꽃이 피어요. 원래는 흰 꽃이었는데 두견새가 밤새워 울다 토한 피에 물들어 분홍색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어요. 먹을 수 있는 꽃이라고 해서 참꽃이라고도 불러요. 화전이나 화채를 만들어 먹고 술을 담그기도 합니다.’-분홍색, 홍색이 이렇게 여러 가지 색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 설명 덕에 구별해 알게 되었습니다. 홍색이 짙으면 진홍, 산뜻하고 밝은 선홍. 이 얼마나 선명하고 예쁜 색 설명입니까? 그리고 그런 설명 옆에 진짜 분홍 진달래가 피어 있습니다.

 ‘연파랑, 꽃마리 핀다. 연파랑은 연한 파랑, 맑게 갠 하늘 색깔이에요. 우리나라의 맑고 푸른 하늘은 고려청자와 비교될 때가 많아요. 청자를 보고 있으면 비 갠 뒤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대요. 그래서 고려청자의 빛깔을 비 갠 하늘의 색(雨後晴天色)이라 부르기도 해요. 하늘색보다 짙은 푸른색으로는 푸른 구슬빛이라는 뜻의 벽색이 있어요. 벽색은 파랑과 하양의 중간인 오간색이에요. 꽃마리는 들이나 길가에 많이 자라는 두해살이풀입니다. 봄여름에 깨알같이 작은 연한 파랑 꽃이 피어요. 꽃대가 돌돌 말려 있다가 퍼지면서 꽃이 핀다고 꽃마리 또는 꽃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돌돌 말린 꽃대가 인상적인 꽃마리가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소담하게 피어있습니다. 이름처럼 그림이 참 정겹습니다.
 
▲오방색(오정색) 중간 중간 오간색
 
 ‘자주, 모란 꽃 핀다. 자주색의 옛 이름은 자색으로 오간색의 하나예요. 자주색은 예로부터 고귀한 색으로 여겨서 궁중에서 많이 썼어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자주빛 알에서 태어났다는 건국 신화도 전해 내려와요. 여인들의 옷고름이나 끝동, 치마에도 많이 쓰였어요. 모란은 정원이나 화단에 많이 심는 떨기나무예요.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꽃이 피는데 붉은색, 자주색, 흰색, 연분홍이 많고 간혹 노란색도 있어요. 모란 꽃은 부귀영화와 복을 상징한다 하여 혼례복이나 이불, 베개 등에 많이 수놓으며 꽃이 크고 화려해서 꽃의 왕이라고도 불러요.’ -꽃의 왕답게 한 송이만 그렸는데도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장미보다 더 화려한 이 고귀한 색과 자태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연두, 버들잎 돋는다. 연두색은 노랑과 초록의 중간색으로 연한 콩 색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래요. 파릇파릇 돋는 어린 새싹이 연상되는 색깔이이에요. 봄에 새로 돋는 어린 버들잎은 짙은 연두빛이지요. 다 자란 버들잎 색은 따로 유록색이라고 해요. 버드나무는 산이나 들, 강이나 개울가에서 많이 자라는 큰키나무예요. 수양버들, 능수버들, 갯버들, 왕버들 등 여러 종류가 있어요. 봄에 잎이 돋고 꽃이 피었다가 열매가 맺히면 하얀 솜털 같은 씨가 눈처럼 날아다닙니다. 잎과 가지는 약으로 쓰고, 껍질이나 잎으로는 버들피리를 만들어요.- 바람이 부는지 버들잎이 한쪽으로 휘어 흐느적거립니다. 봄에 새로 올라오는 버들잎 색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제 막 제 모양을 갖춘 버들잎처럼 연두색이 참 선명합니다.

 ‘파랑, 달개비꽃 핀다. 파랑은 봄의 신선한 기운, 생기, 만물의 성장, 나무를 뜻하는 색이지요. 물의 맑은 빛과 풀과 나무의 푸른빛을 모두 지녔어요. 파랑도 오방색의 하나로 동쪽을 나타내요. 파랑만으로도 널리 쓰이지만 빨강과 쌍을 이루어 혼례복, 색실, 사주 보자기 등에 많이 쓰였어요. 파랑은 주로 쪽물을 들여 얻어요. 달개비는 들이나 길가, 밭이나 집 근처 습기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한해살이풀이에요. 짙은 파란 꽃이 여름이 피는데 즙을 짜서 옷감을 물들이기도 해요. 닭장 둘레에 많이 핀다고 닭의장풀이라고도 불러요.’ -달개비꽃은 어려서 아주 흔하게 보았던 꽃인데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크고 향기가 진한 꽃들에게 밀려 우리 꽃은 천대받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이 달개비꽃으로 파랑을 배우고 진달래꽃으로 분홍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양, 찔레꽃 핀다. 하양은 빛은 상징하는 색으로 신성함, 깨끗함, 꾸밈없음을 뜻합니다. 하양도 오방색의 하나로 서쪽, 가을을 나타내요. 하양은 우리 옷에 가장 많이 쓰인 색으로 옛날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고 불렸대요. 찔레는 볕이 잘 드는 산기슭이나 개가에서 많이 자라는 장미과의 떨기나무예요. 줄기가 활처럼 휘어져 덤불을 이루며 가시가 있고 꽃이 예뻐서 울타리로 많이 심었어요. 초여름에 향기로운 꽃이 피는데 주로 흰 꽃이 피고 더러 엷은 분홍색 꽃도 있어요.’ -찔레꽃은 봄이 되면 새순을 따서 먹기도 했는데, 똑하고 따면 줄기가 따졌고, 겉을 벗겨내면 아삭하고 단맛이 도는 좋은 간식이었다. 이젠 이런 찔레꽃을 따먹는 추억을 가슴에만 간직해야 하지만 찔레꽃의 검소한 하양은 다행히 이 책으로 되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책꽂이 말고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책은 우리 옛 그림의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린 색깔 그림책이에요. (중간 생략)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색이 우리 산과 들을 물들이는지. 그런 아름다운 색들을 담아 낸 우리 그림은 보면 볼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표현하려고 옛사람들은 흙이나, 돌 꽃이나 열매, 풀뿌리 등에서 얻는 천연 재료로 물감을 만들었어요. 빨강 물감 연지는 잇꽃, 꼭두서니 같은 식물이나 연지벌레에서 얻고, 노랑물감인 등황은 해등나무의 나뭇진으로, 파랑물감은 쪽풀로 만들었지요. 공작석이라는 녹색 돌을 빻아 녹색 물감을 만들고, 흙을 곱게 갈아 갈색을 만들기도 했어요. 흰색은 조개껍데기를 곱게 빻아 만들고 검은색은 그을음을 모아 만들고요. 이렇게 자연에서 얻은 색으로 그려서 그런지 꽃과 풀의 은은한 향기가 그림에서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을 만들 때도 비단 위에 옛 어른들이 쓰던 천연 물감과 전통 채색 방법을 그대로 써서 그림을 그렸답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 색과 멋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거든요. 이 책이 색깔을 찾아나서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면 참 좋겠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인용

 이 그림책은 보고 나서 특별히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에 펼쳐서 놓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봄에는 연두로, 그러다가 찔레로 펼쳐두었다가 계절이 바뀌면 다른 꽃으로 펼쳐 주세요. 우리의 예쁜 색도 만나고 꽃도 만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이 책만은 책꽂이에 꽂아두지 말고 꼭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 오랫동안 눈이 머무르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하늘 <인문학공간 소피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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