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마소서!’ - 존재가 잘못일 수는 없다

 그림으로 읽어보는 그림동화 이야기 ‘어른들의 다시 보는 그림책’을 새롭게 이어갑니다. ‘어른’의 시선으로 그림동화를 다시 읽어보는 것에 우리 아이들의 실제 삶에 담긴 또다른 ‘동화’를 더해 함께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그림책에 비치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리하여 한 편의 그림책이 서로 기대고 함께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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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지어라 던지어라 울밖에다 던지어라, 울대밭에 던지어라.
 던지어라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산대밭에 던지어라.
 이름은 버렸다 버리데기로 지어 놓고, 던졌다 던지데기로 지어 놓고
 울 밖에다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바리공주’ 중에서
 
▲가져다 버려라
 
 옛날옛날 해동조선국에 오구대왕이 살았는데,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어 그가 열 여섯 되던 해에 혼례식을 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점치는 자들이 말하기를 ‘오구대왕이여, 혼례를 내년으로 미루소서.’ 혼례를 미루라는 이유인 즉슨 오구대왕이 열 여섯인 올해에 혼례를 올리면 공주 일곱을 보게 될 것이고, 다음 해에 혼례를 올리면 왕자 셋을 볼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오구대왕의 가슴은 사랑으로 이미 뜨거웠기에 그것은 결혼을 미룰 이유가 되지 못 했다. 결국 오구대왕은 그의 나이 열 여섯인 해에 사랑하는 여인과 혼례를 올렸다.

 혼례를 올리고 이, 삼년이 지나 왕비는 아기를 가졌는데, 열 달을 품어 아기를 낳으니 어여쁜 딸이더라. 그래서 왕과 왕비는 아이를 분으로 세수시키고 비단옷을 입혀, 은 쟁반 금 쟁반에 고이고이 길렀다. 다음 해에도 왕비는 아기를 가졌는데, 열 달을 품어 아기를 낳고 보니 어여쁜 딸이더라.

그 다음해에도 아기를 가져 낳고 보니, 딸이더라. 딸을 낳고 또 딸을 낳고 또 딸을 낳으니… 왕이 말하기를 ‘아, 어찌하여 나에게는 아들이 없을까?’ 왕과 왕비는 일곱 번째 딸이 나자, 명하기를 ‘가져다 버려라.’
 
 나는 우리 집에서 네 번째로 태어난 딸이다. 나의 아버지는 장손이었고, 그렇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등 집안 어른들은 우리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번번이 딸을 낳았고, 그때마다 죄인이 된 듯 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어머니에게 아들을 못 낳는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딸만 낳는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줄줄이 딸을 낳고 네 번째 딸인 나를 낳았을 때, 어머니는 산부인과에 나를 두고 몰래 혼자 퇴원하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동네아주머니들과 나누던 이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10살 아이였던 나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방 밖에서 혼자 몰래 울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나의 탄생이 어머니에게 수치심을 주고 어머니를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사랑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려 했다는 것이…. 어머니가 나를 낳고 가졌던 수치심과 죄스러움이 내 안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그 후로 며칠 간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에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나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나에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숨결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확신하며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났지만, 내 안에는 10살 때 내 안으로 들어왔던 어머니의 수치심과 죄스러움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바리공주 이야기를 읽는 순간, 내 안에 있던 그것이 뜨겁게 꿈틀하였다.

 
▲왜 나에게는 부모가 없소?

 바리공주를 한여름에 솜저고리 솜바지 입혀 뙤약볕에 죽으라 두고, 겨울에 삼베 저고리 삼베 바지 입혀 음지에 죽으라 두고, 뱀 밭에 버려 뱀에 물려 죽으라고 두고, 대나무밭에 던져 대나무에 찔려 죽으라 했지만, 바리공주는 죽지 않았다.

옥으로 만든 함에 넣어 바다에 던지니, 바리공주 담은 함이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둥실둥실 떠올라 어디론가 사라지더라. 바닷가에 살던 늙은 부부가 바닷가로 떠밀려온 함을 열어보니, 그 안에 아기가 들었더라. 그 아기 거두어 자기들 먹는 대로 먹여 키웠건만, 총명하고 튼튼하게 쑥쑥 자라더라.

 이 아기 일곱 살 되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새에게도 부모가 있고 강아지에게도 부모가 있는데, 왜 나에게는 부모가 없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나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기관에 가서 수업을 한다. 이곳에서 나는 ‘선생님, 그거 알아요?’ 라는 말로 자기만 아는 아주 특별하고도 비밀스러운 정보를 내게 가르쳐주겠다는 듯이 말을 붙여, 나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진아를 만났다.

 여름날이었다. 그 날도 진아는 ‘선생님, 그거 알아요?’라고 내게 이야기를 붙여왔다. ‘뭔데?’라고 말을 하니, 진아는 정말 비밀이라며 내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선생님, 유은이요. 중학교 2학년 되면, 집에 갈 거래요.”

 진아가 앞뒤 맥락 없이 유은이가 집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갑자기 내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은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려면 5년이나 남았는데…. 진아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진아를 가만히 쳐다보며, ‘아, 그래. 진아야.’라고만 이야기 했다. 진아는 고개를 숙이며 ‘네.’라고 이야기하고는 더 이상 뒷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그 후로 세 달이 지난 가을날이었다. 갑자기 진아가 유은이에게

 “유은아, 너희 엄마, 아빠는 너 몇 살 때 이혼했어?”

 “나, 네 살 때.”

 “그래? 우리 엄마, 아빠도 나 네 살 때 이혼했는데.”

 아이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부모의 이혼이 기관시설에 와 있는 우리들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만 힘들고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들 마음의 생채기가 조금 덜 아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데.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 이혼을 어렵게 선택하기도 해. 함께 살면서 아프고 힘들고 서로 불행하다면…. 서로 행복해 지기 위한 방법으로 이별을 선택하기도 하지. 우리 모두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

 라고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진아가 말을 잇는다.

 “선생님, 그런데 그거 알아요?”

 “뭔데? 진아야.”

 “우리 엄마 뱃 속에 아기 있어요. 우리 엄마 결혼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 보러 오지 못 한데요. 아빠도 결혼했어요. 이름이 뭔 줄 알아요? 영애에요. 우리 만나러 자주 못 온다고 했어요.”

 이 말을 하고 진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저쪽 벽면을 보며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인가?’ 혀끝을 깨물었다.

 진아의 엄마, 아빠에게는 진아와 함께 살지 못 하고 만나러 오지 못 하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아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겨버린 박탈감.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진아는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자주 다투었고 이혼했다고 했다.

그리고 진아가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아빠는 일하기에 바빴고 그래서 늦게 들어왔고, 들어오지 못 하는 날도 많아서 진아는 혼자 있는 날이 너무 많아졌고, 그래서 자신이 기관시설에 오게 됐다고 했다. 이곳에 언니오빠들이랑 생활하고 있으면, 얼마 전에 집으로 돌아간 민석이처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 아빠의 가정은 지금 진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아는 이제 엄마의 집이든 아빠의 집든 돌아갈 집이 없다. 유은이는 중학생이 되면 돌아갈 집이 있지만, 진아는 5년이 흘러도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다.

진아는 자신이 놓여진 이 상황과 관련하여 어떤 것도 선택한 적이 없다. 결정한 적은 더더욱 없다. 아이에겐 말할 기회, 이해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아이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거짓말 마오

 “할머니 할아버지, 새에게도 부모가 있고, 강아지에게도 부모가 있는데, 왜 나에게는 부모가 없소?”

 “하늘이 아버지요, 땅이 어머니라.”

 “거짓말 마오.”

 바리공주가 내뱉은 ‘거짓말 마오.’라는 말은 바다를 가라앉힐 만큼 무겁다. 자신이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었을 수많은 밤과 낮이 담겨 있기 때문에 무겁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향한 그리움이 쌓여 무겁고, ‘왜 찾으러 오지 않지?’, ‘왜 하필 나지?’라고 묻고 ‘엄마!’하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죽음 같은 침묵 때문에 무겁고, 그로 생겨난 깊고 벌건 아이의 상처가 담겨 있어 무겁다.

 나는 엎드려 있는 진아의 등을 토닥거려줄 수 없었다. 아이의 아픔이 혀끝의 가벼운 몇 마디 말과 미화된 논리로 위로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의 작고 흔들리는 등을 보며 알았기 때문이다. 진아의 등은 ‘거짓말 마오, 거짓말 마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오소서

 한 달 후 쯤, 진아는 시설 대문 앞까지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더니, 마구 뛰어온다. 그리고 나를 꼭 끌어안더니

 “선생님, 그거 알아요?”

 “뭔데? 진아야.”

 “우리 엄마가 12월에 온다고 했다요.”

 “그렇구나. 엄마가 12월에 오신다고 했구나.”

 진아가 환하게 웃는다. 나는 진아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었다.

 진아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 아빠의 연락이다. 엄마아빠에게서 연락이 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진아를 보러 오겠다는 말이다. 그 말은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른 말이고, ‘너를 사랑한다’는 또다른 말이자 약속이다.

 제발 오소서.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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