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코를 가려주세요

▲ ‘까만 코다’ 이루리 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 그림, 북극곰.
▲까만 코다

 북극곰 마을에 북극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사냥꾼 보바가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총을 들고서 말이다. 사냥꾼 보바는 북극곰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극에서 눈처럼 새하얀 북극곰을 찾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사냥꾼은 어떻게 새하얀 눈밭에서 북극곰을 찾아낼 수 있을까? 북극곰에게도 숨길 수 없는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난히 크고 까만 코다. 사냥꾼 보바가 찾는 것은 북극곰이 아니라 북극곰의 까만 코였다. 하얀 눈 속에서 까만 코를 찾는 것.

 “찾았다. 까만 코!”

 사냥꾼 보바가 소리쳤다. 저 멀리서 까만 코 두 개가 보였기 때문이다. 까만 코 두 개는 왼쪽 오른쪽 움직이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춤추는 까만 코 두 개는 실은 눈밭에서 목욕을 즐기던 아기곰 코다와 엄마곰이었다. 목욕을 즐기던 엄마곰이 까만 코를 벌름거렸다.

 “사냥꾼이다!”

 보바는 두 개의 까만 코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눈앞에서 까만 코 한 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 어찌 된 일이지?’ 보바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하지만 까만 코는 여전히 하나 뿐이었다. ‘어? 이상하다. 까만 코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갔나?’ 어찌된 일일까? 엄마곰이 아기곰 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아 코다의 까만 코를 가려버린 것이다. 코다의 까만 코는 엄마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엄마곰은 코다를 꼭 끌어안고 기도했다.

 “부디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

 보바는 다시 커다란 총을 들어 남아있는 커다란 까만 코에 총구를 겨누었다. 엄마 품속에 들어있는 아기곰 코다도 엄마를 따라 기도했다.

 “부디 우리 엄마를 살려 주세요!”

 그리고 코다는 팔을 뻗어올려 엄마의 크고 까만 코를 자그마한 두 손으로 꼭 가려주었다.

 “어? 또 까만 코가 어디로 갔지?”

 보바는 눈앞에서 금세 사라져버린 까만 코를 또 두리번두리번, 눈을 쓱쓱 비벼가며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까만 코는 보이지 않았다. 코다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엄마곰 위로, 엄마곰의 까만 코를 가려주고 있는 코다의 손 위로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은 새하얀 눈뿐이었다.
 
 까만 코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까만 코 덕분에 세상의 정을 맞기도 하고, 겪지 않아도 될 고초를 겪기도 하고,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아파서 남몰래 눈물 흘리기도 한다. 자신의 까만 코가 원망스럽고 까만 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본다. 까만 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까만 코를 가려줄 손이 없는 것이 문제일까?

북극곰 마을에 북극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사냥꾼 보바가 나타났다.
 
▲유은이가 가린 까만 코

 유은이는 동생과 함께 시설에 들어왔다. 시설에 들어오기 전, 유은이는 아빠와 동생 민호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 엄마는 유은이 네 살 때 아빠와 이혼을 하고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다. 유은이 아빠는 당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못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일을 하러 다녀야만 했고, 집에 들어오지 못 하는 날이 많았다. 집에 들어와도 늦은 시간에나 들어올 수 있었다. 유은이 집에는 어린 남매, 유은이와 민호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아빠가 집을 비울 때면 다섯 살짜리 유은이가 네 살짜리 동생 민호를 돌보아야만 했다. 가스레인지 불을 사용할 수 없는 유은이에게 밥을 차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섯 살짜리 유은이가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은 빵과 우유를 사 먹는 것이었다. 아빠가 놓고 간 돈을 들고 동생 민호의 손을 잡고 수퍼에 갔다. 그리고 민호에게 먹일 빵과 우유를 샀다. 가끔은 동생이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도 샀다. 하지만 유은이는 자신이 먹을 빵과 우유는 자주 사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가 놓고 간 돈이 여유롭지 못 해서였는지, 아니면 앞으로 몇 번의 끼니를 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돈을 아끼려고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은이는 자주 동생 민호 것만 사고 자신의 것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 살짜리 유은이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손을 뻗어 자기의 까만 코가 아니라 어린 동생 민호의 까만 코를 가려주고 있었다.

보바는 두 개의 까만 코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101호 후원자들이 가린 까만 코

 유은이가 사는 101호에는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후원자들이 있다. 이들이 101호 아이들을 후원하는 방법은 아이의 생일날에 아이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다. 101호에 사는 아이의 생일이 되면, 이들은 생일주인공을 위한 생일케익과 작지만 마음을 다해 준비한 생일선물과 생일파티 음식과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득 가지고 아이가 있는 101호에 찾아간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하루 종일 설레며 자신을 찾아올 후원자들을 기다린다. 저녁도 먹지 않고 기다린다. ‘○○아, 생일 축하해’ 하고 들어서는 후원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생일 파티는 시작된다. 생일케익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준비한 생일선물을 전하면, 아이는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생일선물을 풀어본다. 생일선물이 공개될 때 들리는 101호 가족들이 부러워하는 소리와 축하하는 소리는 아이를 한층 더 기분 좋게 만든다. 이 날은 101호가 조금 더 소란스러워도 102호도, 201호도 모두 이해해 준다. 007빵도 하고 끝말잇기도 하고 개다리춤도 추고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놀아도 이해해 준다. 아이의 생일을 한껏 축하해 주고 이들은 다음 생일 주인공의 생일을 기약하며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101호를 나온다. 101호 아이들도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다음 생일을 기약한다.

 101호 후원자들이 아이들을 후원하는 방법은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특별하다.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것은 아이가 이 세상에 온 것을 함께 기뻐해 주는 일이고, 네가 이 세상에 온 것을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며, 아이의 존재를 기쁨으로 인정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101호의 후원자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5년 동안 계속 이 일을 해 오고 있다. 101호에 머물렀던 숱한 아이들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탄생을 지지받고 축하받았다. 101호 후원자들은 두 손 모아 아이의 생일에 아이의 까만 코를 가려주고 있었다.
 
 나는 101호의 후원자들을 따라 유은이의 여섯 번째 생일파티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유은이를 처음 보았다. 한국 나이로 일곱 살. 하지만 유은이는 일곱 살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키와 체구를 가진 아이였다. 조금 까만 피부빛에 쌍꺼풀이 없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그냥 수줍게 웃기만 하는 아이였다. 유은이 옆에는 유은이 만큼 작은 동생 민호가 있었고, 유은이는 자신이 받은 생일선물을 조심히 동생 민호에게 보여주고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꾸자꾸 동생의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고 있었다. 유은이는 이곳에서도 민호의 까만 코가 걱정되었나 보다.

눈앞에서 까만 코 한 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엄마곰이 아기곰 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아 코다의 까만 코를 가려버린 것이다.
 
▲진아가 가려주고 싶었던 까만 코
 
 “선생님, 그거 알아요? 어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일하다가 잠도 잔데요. 그리고 옷도 막~ 벗고 뛰어다닌데요. 유은아, 너희 엄마 나라가 그러지? 너, 너희 엄마 나라에 가봤어?”

 “우리 엄마 나라인데, 내가 안 가 봤을 줄 알고? 우리 엄마 나라 안 그러거든. 내 동생한테 그런 말 하지 마라!”

 유은이 눈 주변이 빨개졌다. 입술도 꽉 깨문다. 유은이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잔뜩 주며 진아에게 대꾸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지는 것이다.

 “진아야, 그 나라는 기온이 아주 높아서 여름 한낮에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아.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부지런히 일하고, 한낮에는 잠시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거야. 그래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거든. 시에스타는 베트남에 맞는 풍습이고 문화란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이 옷을 벗고 달려 다니지 않아. 그건 미수가 잘못 안 것 같구나.”

 나는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로 사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공격당하고 있는 유은이도, 공격하고 싶은 이유를 가진 진아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 진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아야, 아까 유은이에게 왜 그런 거야? 선생님이 보기에는 진아가 한 말에 유은이가 놀라고 상처받은 것 같던데...” “유은이가 우리 수영이한테 못 되게 굴었단 말이에요. 유은이가 수영이가 놀이하는 것도 못 하게 하고, 같이 놀지도 않고, 자꾸 이상한 말을 한단 말이에요.”

 “유은이가 수영이를 힘들게 하는 것이 속상했구나. 유은이를 혼내 주고 싶었던 거야?”

 “네.” “그런데 유은이 엄마 나라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면, 유은이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플 텐데… 유은이 마음에 상처내고 싶었던 거야?”

 “아니오. 그건 아니에요. 그냥 우리 수영이에게 그러지 못 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의 손은 누구의 까만코를 가리고 있을까?
 
 진아도 유은이처럼 동생과 함께 시설에 들어왔다. 유은이가 남자아이들의 짖궂은 장난과 놀림으로부터 민호를 보호하려고 남자 아이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며 째려보는 것처럼 미수는 유은이의 수영이에게 함부로 하는 행동으로부터 가은이를 보호하고 싶었던 뿐이다. 다만, 진아는 수영이의 까만 코를 가리기 위해 유은이의 까만 코를 때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아는 안다. 까만 코를 건들면 얼마나 아픈지. 유은이와 같은 까만 코로 자신도 아파보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더욱 잘 안다. 그래서 ‘유은이를 아프게 하고 싶었던 거야?’라는 물음에 진아는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이고 울먹이는 소리로 ‘아니오’라고 진심을 말한 것이다. 진아는 유은이의 까만 코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유은이의 까만 코를 감싸려고 노력할 것이다. 유은이의 까만 코를 감싸주는 것이, 자신의 까만 코를 감싸는 일인 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까만 코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까만 코를 가려줄 손도 가지고 있다. 나의 손은 누구의 까만 코를 가리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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