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춤추자. 점프! 점프! 울타리를 넘어서!
춤의 전복, 정교한 기술과 예쁜 이미지를 버려라

▲ 마침내 빌리는 한 마리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는 춤출 때 내가 아닌 것처럼 된다 말했지만 춤은 그의 안에 숨은 백조를 찾게 했다. - 영화 ‘빌리 엘리어트’
 사람은 변하지 않아, 다른 옷을 걸쳐 달라 보일 뿐이지
 사람은 변하지 않아, 외투로 겉모습만 살짝 감출 뿐이야
 하지만 우린 잊지 않아 발가벗은 아이를 순수했던 순간을
 당돌하게 홀로 걷는 소녀 추위를 잊고 눈밭에서 꿈꾸네
 꾸며 주면 본래 모습이 조금은 사라질 아가씨
 이제는 나의 행동을 보며 나를 비웃는 시간
 -Celine Dion(셀린 디온), ‘On Ne Change Pas’ 中.
 
 영화 마미의 명장면은 단연 셀린디온의 노래가 나올 때. 아들 스티브의 뻔뻔한 재롱에 다이는 쟤 또 저러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몸을 들썩이고. 모기 목소리만 겨우 내던 카일라의 목청이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터뜨리던 순간. 그녀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스스로를 가뒀으나 찰나의 순간 어떤 벽이 허물어졌다.

좁고 답답한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서먹한 세 사람은 아무렇게나 춤을 추며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서 발가벗은 아이가, 위태로운 소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너와 내가 춤을 출 때.

 “춤출 때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일단 추게 되면 모든 걸 잊어요. 내가 아닌 것처럼요. 내 몸이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요. 마치 나는 것 같아요. 새처럼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 中.
 
 열한 살 소년은 탄광에서 일하는 형과 아버지 밑에서 방황한다. 아버지는 빌리가 남자답게 크기를 원한다. 그러나 매일 가는 체육관에서 아들이 권투를 하는 모습은 어쩐지 춤을 추는 듯한 모양새. 옆에서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소년은 이윽고 아버지 몰래 슈즈를 신는다. 오디션 날 괴팍한 춤을 추고 난 뒤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불안한 눈동자로 답하던 소년. 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 마리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는 춤출 때 내가 아닌 것처럼 된다 말했지만 춤은 그의 안에 숨은 백조를 찾게 했다.
 
 “‘벽의 꽃 장식’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 내가 딱 그것이었다. 아니, 나는 심지어 ‘꽃’도 아니었다. 벽에 붙은 채 존재조차 잊힌 복제화나 장식품 같았다. 멀거니 서서 좋은 옷을 차려입은 소년소녀가 춤추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나와 다른 아이들 사이를 투명한 벽이 가로막아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느낌이었다.”
 -온다 리쿠 ‘나와 춤을’ 中.

춤은 전복과 파괴로 나아간다. 무너지거나 무너뜨리거나. 춤은 두 가지 결과를 만든다.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무언가가 붕괴되거나, 나를 억압하는 무언가를 파괴시키거나.
 
▲춤을 청한다는 것의 의미
 
 얼마 전 오랜만에 학교 행사에 참여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맞다. 이런 게 있었지. 백만 년 만에 해보는 국기에 대한 경례였다. 맨 앞줄 학장부터 기타 등등의 사람들 모두 일제히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쳐다본다. 하얀 머리 검은 양복 어르신들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 바로 국민의례. 새삼 깨달으며 멍하게 있는데 낯선 구절이 귀에 꽂힌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어느새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결 듣기 좋다만, 충성을 굳게 다짐해야 한다는 건 똑같잖아.

 청강실에 모인 모두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민일 팔자. 국가라는 이름은 가부장제처럼 보호막인 동시에 억압이기도 하다. 엄마아빠는 맞아가면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웠다는데. 나는 운동장에서 긴긴 훈화말씀을 들으며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명연기를 펼치는 상상을 했다. 마지막은 국민체조로 마무리. 언젠가 어떤 정치인이 자신의 건강 비결은 매일같이 하는 국민체조라 밝힌 기사를 봤는데. 아무튼 아나키스트를 꿈꾸는 건 아니다. 나이 먹고 다시 매일 국민체조를 하더라도, 괜히 이상한 동작 하나 억지로 끼워 넣어 ‘아무개체조’라고 어깃장 놓고 싶은 국민도 있다.
 
 “그녀는 빙글빙글 도는 헝겊 인형 같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그녀를 봤을 때 받은 강렬한 느낌, 뭔가 ‘옳은 것’이 들어왔다는 느낌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스르르 내 앞으로 왔다. 그녀의 눈은 이상야릇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딱 한마디 했다. ‘나랑 춤추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춤을 청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온다 리쿠 ‘나와 춤을’ 中.
 
 낡은 공회당에서 마을 파티가 열린다. 따뜻한 조명 아래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은 소년소녀들이 짝을 지어 왈츠를 춘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선 주인공은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데. 그때 가벼운 흙색 옷을 입은 소녀가 다가와 뻔뻔하게 춤을 청한다. “나랑 춤추자.” 주인공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춤은 남자랑 여자가 추는 거잖아.”

소녀는 노래하듯 대답한다. “여자애들끼리 추면 안 돼? 혼자 춰도 안 되는 거야?” 홀리듯 그녀를 따라 나가면, 하얀 달빛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떨어지는 어둡고 차가운 공간. 두 소녀의 스테이지다.

 몇 안 되지만 춤에 관한 내 기억중 하나. 열 살 때 동네 언니랑 문화센터에 스포츠댄스를 배우러 다녔었다. 소극적이고 비활동적인 내가 답답한 엄마의 닦달이었다. 몇 달 배우고 마지막엔 학부형들 초대해서 공연도 열었다. 선곡은 양혜승의 ‘결혼은 미친 짓이야.’ 지금 곱씹어보니 대체 뭐지 싶고 영문도 모르고 귀여운 재롱이나 기대했을 부모님들이 약간 가엾다.

흥겨운 리듬에 열심히 몸을 흔드는 자녀를 보는 기혼자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은 안 가지만, 그래도 나한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무용 선생님 자수 청바지 멋있었고 율동은 그런대로 흥겨웠다.

 나름 추억을 가진 멜로디가 오랜만에 들려온다. 셀럽파이브 때문이다. 일본 가수의 원곡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오기노메 요코의 ‘Eat You Up’에 맞춰 토미오카 고등학교 여자 댄스팀이 퍼포먼스를 한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고, 한국 여자 코미디언 다섯 명이 팀을 이루어 커버했다. 80년대 여성의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우스꽝스런 춤을 추지만, 보다보면 이들의 무대가 결코 코믹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절도 있는 표정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파워풀한 군무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춤의 기원은 주술일까 구애일까. 기원이야 어쨌건 춤의 영역은 예술이 발전할수록 확대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돌 산업 안에서 춤의 의미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The Dance_앙리 마티스
  
 “춤을 청한다는 건 옛날부터 구애를 의미했고, 같이 춤춘다는 건 한 쌍이 됐다는 증거지. 동물도, 새도, 화려한 외모로 구애의 춤을 추는 건 수컷 쪽이야. 하지만 난 남이 추는 춤을 보고만 있는 건 싫어. 누가 춤을 청해주길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싫어. 내가 추고 싶을 때 언제든 춤추고 싶어.”
 -온다 리쿠 ‘나와 춤을’ 中.
 
▲무너지거나, 무너뜨리거나
 
 춤의 기원은 구애일까? 아마도. 물론 주술적 역할도 약간 담당했겠지만. 기원이야 어쨌건 춤의 영역은 시간이 흐르고 예술이 발전할수록 확대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돌 산업 안에서는 춤의 의미가 오히려 한정되고 있다. 멋있는 걸 좋아하고 예쁜 걸 기대하는 대중에게 일정한 기술 몇 가지로 성애를 팔고 있으니까.

 이 냉혹한 무대 가운데 이상한 옷과 화장을 하고 나타나 이상한 춤을 추는 객기. 두꺼운 벽 하나가 무너지는 기분 좋은 굉음이 들린다.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고 살랑살랑 춤을 추는 걸그룹의 무대는 대체로 예쁘다. 그러나 그걸 보는 소녀들은 똑같은 이미지를 추구하기를 강요받는다. 셀럽파이브의 무대는 억눌렸던 피곤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은 무엇도 강요받지 않는 공백에서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추고 싶은 대로 춘다. 아마 이런 걸그룹이 많아진다면 소녀들은 좀 더 자유롭게 자라날지도 모른다. 괴상하고도 파워풀한 무대는 이렇게 말한다. ‘저렇게 해도 돼. 너를 표현하는 방법은 무한가지야. 그 누구도 어떤 룰도 너를 막지 못해.’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빛 속에서 깡충깡충 뛴다. 두 소녀의 점프, 점프, 점프. 몸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해방되었다. 기쁨이 느껴지고 음악이 들렸다. - 온다 리쿠의 ‘나와 춤을’ 中.
 
 춤의 영역은 전복과 파괴로 나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울타리가 존재하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 울타리들의 높이는 분명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느리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해도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변화는 아주 느리게 온다. 야속하고 답답할 땐 템포를 바꿔 춤을 추자. 정자세를 어지럽히고 고리타분한 몸짓을 파괴하는 막무가내 점프. 그저 그런 욕구의 충족을 위해 계산된 몸짓은 버리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춤을 추자. 춤은 진짜 나를 해방시킨다.
 
 “‘어느새 나는 그녀와 손을 잡고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빛 속에서 깡충깡충 뛴다. 두 소녀의 점프, 점프, 점프. 팔을 축 늘어뜨리고, 엉덩이를 낮추고, 오랑우탄처럼 걷는다. ‘나 없다 나 없다 메롱’ 하며 혀를 쏙 내민다. 몸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더없이 해방되었다. 기쁨이 느껴지고, 음악이 들렸다. 내가 그런 식으로 춤출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때뿐이었다.”
 -온다 리쿠 ‘나와 춤을’ 中.
 
 무너지거나, 무너뜨리거나. 춤은 두 가지 결과를 만든다.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무언가가 붕괴되거나, 나를 억압하는 무언가를 파괴시키거나. 무대 위에 선 한 명의 이상한 무용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선 네가 원하는 공연이 열리지 않아. 내 흉한 몸짓과 괴팍한 점프가 보기 싫다면 나가렴. 하지만 신난다면 같이 춰도 좋아. 그러나 나는 누가 나가든 말든 상관 안 해. 관중이 있든 없든 난 계속 춤을 출거야. 내 뇌파대로 내 심장 박동대로 몸을 구기고 피고 뛰고 할 거야.’

 또 한 번 제야의 종은 울리고. ○○년생이 수능을 봤으니 20세기 소년소녀들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됐다. 새삼 옛날사람 같다. 그래봤자 애송이인 주제에. 너무 늙었단 소릴 매년 하며 조금씩 ‘진짜로’ 늙어간다. 그러나 변하지도 늙지도 않는 불안한 어린 아이, 늘 내 맘속에 있다. 그 애를 화나게 하는 울타리도 여전히 굳세게 서있다. 그게 외부의 벽이든 내부의 벽이든. ‘울타리는 낮아지고 있다!’ 때때로 낙관하며 뻣뻣한 몸으로 서툰 춤을 추자. 우스꽝스런 점프가 야트막해진 울타리 하나 훌쩍 넘는 순간을 가져다줄테니. 빌리처럼.
김연우 <조선대 국문과 3년, 인문학공간 소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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