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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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나 마주앉으면 딱 맞을 크기지만 서넛도 도래도래 둘러앉고 다섯도 모닥모닥 모태앉을 수 있는 밥상.

 꼭 장구처럼 생겼다 해서 ‘장구상’이라고도 불리는 밥상에 상보가 고조곤히 덮여 있다. 들춰보니 더 고조곤하다.

 7첩반상도 3첩반상도 아니다. 물 말아먹은 밥그릇 하나에 반찬이라곤 김치 한 가지. 더 헤아릴 것도 더 뺄 것도 없다.

 ‘혼밥’의 시간 오래 되었을 어매의 밥상이다.

 ‘삼시세끄니’란 막중한 소임을 감당하며 질기게 밥의 역사를 꾸려온 한생애. 식구들과 훈짐나게 둘러앉은 밥상에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올리려 밭으로 뻘바닥으로 종종걸음쳤을 시간을 지나와 이제 홀로 밥상을 마주한다.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공광규 ‘얼굴 반찬’ 중)

 ‘얼굴 반찬’ 없는 밥상 앞, 어매는 물 만 밥으로 고조곤히 한 끄니를 건너왔으리.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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