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의 시인이다

▲ 허난설헌의 초상.
 가을날 깨끗한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 허난설헌 ‘연밥따기 노래’
 
▲특별한 아이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 종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허난설헌을 읽으면서 기형도의 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어떤 존재는 너무 일찍 태어난다. 여성이 제 존재의 색깔을 드러내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자신을 끝없이 지우며 살아야했던 여인 난설헌. 그녀와 비슷한 시간을 겪어냈을 사람이 어디 난설헌 뿐이랴.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욕망의 지향성을 갖는다. 그 욕망이 타인이 바라는 것을 그저 바라는 욕망인지, 나로부터 비롯한 고유한 욕망인지에 따라 자기실현의 깊이는 달라진다. 전자의 욕망은 집단적 유행이 왔다가 갈 때마다 형태를 바꾸며 부유한다. 그것은 얇고 가볍다. 후자인 욕망은 체제와 불응하며, 혹은 체제의 가두리를 타고 끝없이 달린다. 그러다 순간, 반복을 통한 밀도가 한계치에 이르면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우리를 이끄는 별이 되는 것이다. 별은, 밤이 어두울수록 그 빛이 밝다. 어린 시절 이름 초희. 홍길동전을 쓴 개혁주의자 허균의 손위 누이이며 신사임당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 문장가 허난설헌이 그렇다.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는 대신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것이 좋았던 아이, 소복이 내린 흰 눈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 꽃고무신과 버선을 벗고 맨발로 눈 위를 걷던 아이. 강직하나 개방적이었던 아버지 허엽과 오빠들을 스승이자 동문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던 아이. 어려서부터 글 짓는 실력이 뛰어났던 소녀는 여덟 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신선 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전 ‘광한전 백옥루’에 초대받은 초희가 궁궐을 지을 때 올리는 상량 의식에 필요한 ‘상량문’을 지어 바친다는 내용의 글월은 멀리 중국에까지 전해져 어린 신동의 다음 글을 모두가 기대하게 했다.
 
 엎드려 바라오니,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 꽃은 시들지 말고, 아름다운 풀도 사철 꽃다워지이다. 해가 퍼져 빛을 잃어도 난새 수레를 어거하여 더욱 즐거움 누리시고, 땅과 바다의 빛이 바뀌어도 회오리 수레 타고 더욱 길이 사소서. 은빛 창문이 노을을 누르면 아래로 구만리 미미한 세계를 내려다보시고, 구슬문이 바다에 다다르면 삼천년 동안 맑고 맑은 뽕나무 밭을 웃으며 바라보소서. 손으로 세 하늘의 해와 달을 돌리시고, 몸은 구천의 바람과 이슬 속을 노닐게 하여지이다.
 -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중에서

난설헌의 글과 그림 ‘앙간비금도’.
 
▲열다섯에 시작된 비극

 아버지와 오빠들의 격려와 지지는 초희에게 기쁨이었을까, 초희의 어머니가 걱정하고 우려한대로 조선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엄혹함을 무시한 불행의 씨앗이었을까. 향기로운 난과 희고 차가운 눈을 좋아하는 초희에게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를 선물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나도 아버지와 오빠처럼 내 글이 적힌 종이에 호를 적어 넣을 수 있다! 부모가 준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이라 여겨 이름을 ‘호’로 대신했던 조선의 양반계에서, 열다섯 소녀는 그렇게 난설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열다섯은 난설헌이라는 문재(文才)와 더불어 서슬 퍼런 명문가의 아내이자 며느리가 되어야하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길의 시작이었다. 친정과는 너무나 다른 고압적인 분위기. 글을 읽고 쓰는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시어머니는 가부장사회가 바라는 여인상에 자신을 완벽하게 일치시킨 여인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아들 김성립의 번번한 과거시험 낙방이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탓이라고 여긴다.

 딸과 아들이 차례로 태어났으나 돌볼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손자를 직접 품에 안아 기르고 손녀는 유모에게 맡겼다. 어린 딸이 전염병에 걸려 어미를 부르며 울자, 시어미는 가장 먼저 손자에게 병이 옮지 않도록 손녀를 외진 방으로 격리시켰다. 의원을 부르는 일은 없었고 아이가 차디찬 주검이 되어서야 난설헌은 아이를 품에 안고 꺼이꺼이 울 수 있었다. 뱃속의 아이와 남은 아들까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난설헌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자 난설헌의 정신과 육체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스물일곱, 봄이었다.

난설헌의 ‘묵조도’.

 우리가 그녀의 시를 만날 수 있는 건 난설헌이 적어둔 젊은 날의 빛나는 문장들을 동생 허균이 간직했기 때문이다. 난설헌이 혼인 후 적었던 글들은 불태워지거나 짓이겨졌다. 때로 시대와 조응하지 못하는 인물들, 가령 돈키호테와 뫼르소와 최치원과 박지원과 이상을 생각한다. 상업주의가 시작되는 근대의 문턱에서, 중세에 멸절한 방랑기사가 되어 약자보호와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던 키하다 노인은 돈키호테가 한낮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임을 알자 죽음을 맞는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개인의 태도를 철지난 관습에 맞추어 재단하는 일이 정직이고 도덕인양 착각하는 군중 앞에서 절규한다. 골품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최치원은 지리산으로 몸을 숨기고, 권문세가의 허위에 속할 수 없었던 박지원은 시정잡배들의 호방함에 섞여 개혁을 꿈꿨다. 누군가는 안주하고 누군가는 탈주한다.

 허난설헌은 이른 죽음에서 도피처를 찾았을까. 죽어서 백옥루 상량문에 도달했을까. 가족이라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에게 행하는 불가항력적 억압은 변명의 여지없는 ‘악’이다. 그녀에게 양반댁 규수라는 굴레는, 탈주를 꿈꾸기엔 너무도 두텁고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필멸인 인간을 가볍게 넘어 불멸의 이름으로 여기, 머물고 있다.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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