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암, 정비 막아내 탄생한 예술촌

▲ 배움 여행의 마지막 밤, 담양 문화의 발전을 기원하는 풍등을 날리는 일행들.
 3일째의 밤, 보장암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밤은 무척 짧고도 강렬했다. 일행들 모두에게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이 다음날 아침이었다. 늦게까지 현지인과 술자리를 했다고 하지만 내가 돌아온 시간이 시작이었다. 후문을 들어보니 대만의 예술인 친구들은 다양한 한국의 음식에 대해 얘기하며 직접 먹어본 것과 먹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음식문화와 현재 진행형인 한국의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이야기, 한국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했다.

 지금 촬영 중인 보장암에서의 일도 한국의 유명한 만화작가와 협업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게 맞다. 문화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국수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교육을 받아왔다. 그 전제가 바로 백의민족으로 대별되는 순혈주의 즉, 단일민족이라는 우월성을 내세우며 다양한 이웃과의 교류를 원천 봉쇄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중국을 우러러 보는 모화사상처럼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백인을 우러러보는 웃긴 상황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의 3대 기조가 자율성, 창의성, 다양성임을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그 세 가지는 자칫 다른 정부와 차별화 하는 구호로서 프로파간다를 형성할 우려가 크다. 왜냐면, 그것을 실행하는 정책집단이나 중간지원조직이 과거의 관습과 안락의자 속 행정 처리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몇 개의 정권을 만났지만 현장을 존중하는 정부를 만나 보지 못했다. 물론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씩 귀퉁이를 열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장관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모조리 그 곁에 교수나, 연구원이나, 업계의 재력가나 벤처의 성공한 CEO를 두고 정책의 개선과 방향을 이야기 할 뿐이다. 저 발밑의 생태계가 자금과 제도와 각종의 사다리에 걷어차인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 아우성이 저 꼭대기에 직접 도달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지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하여튼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만의 예술인과 대한민국 전라남도 담양군의 문화예술과장, 담양문화재단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새벽 두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가 가지고 간 한국의 반찬과 고추장은 대만 친구들이 싹쓸이 해 갔다는 것까지. 그랬지만 모두의 아침은 행복했다. 발 아래로 담수강이 흐르고 불야성을 이루는 대만 중심지의 불빛이 이곳이 동남아의 한 도시임을 직시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옹벽의 경사진 사면에 들어선 이 궁색한 살림집이 3층짜리 게스트 하우스가 되어 수많은 이야기와 교류와 창작의 원천 소스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란 사실에.

보장암 벽화.
 
▲대만까지 밀린 병사들 거주지
 
 비가 내리는 아침 모두는 로비로 모여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사진을 찍고, 우산을 챙겨 보장암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찾아 나섰다. 공산당에 밀려 이곳 대만까지 오게 된 국민군들, 장교들이야 좋은 공간을 차지하여 입주하지만 사병들은 시내로 들어설 수 없었다. 밀리고 밀려 공간을 마련한 것이 바로 현재의 위치였다. 마치 부산의 비석마을과 같은 지형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는 목포의 온금동과 같은 사면에 오횡묵이 말한 것처럼 물고기의 비닐처럼 다닥 거리며 가구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 비석마을은 자갈치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사면에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곳은 일본인들의 묘지로 쓰였던 곳이다. 묘지를 형성한 곳에 난간석이 둘레를 치는데 그 위에 판잣집을 얹어 살게 된 것이 광복 이후, 한국전쟁 무렵이었다. 몰려드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주거지를 만들 내 땅이 없는 이들은 밀리고 밀려 묘지 위에 집을 얹은 것이었다. 보장암의 병사들도 그러했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위치를 가진 이곳에 있는 참호와 벙커와 군사시설이 사병들의 살림집으로 변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의식주중 주거의 공간으로서 생애의 기술이 집적된 곳이 바로 보장암이라 할 수 있다.

 아 이곳의 지명이 보장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마을 초입에 보장암이라는 사당이 있어서 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보물창고 같은 언덕에 보물 같은 대만의 병사들이 깃들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 공간이 노후화 되고, 주거 인구도 고령화 되면서 대만 정부는 이곳을 정비하려했다. 터무늬를 없애려는 것에 반대하는 일단의 주민과 예술가들이 이에 대응하면서 대만사회의 이슈가 되었고, 결국 이곳을 국제적인 예술촌으로 만들기로 하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다. 단일 장르의 예술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장에서 접한 오브제를 활용하며 함께 고민하는 다양한 예술가와 콜라보를 통해 복합예술장르가 꽃 피우는 곳이 바로 보장암국제예술촌이다.

예류지질공원 버섯바위.
 
▲진과스, 지우펀, 스펀 그리고…
 
 이곳의 흔적을 지우려 했던 곳과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을 둘러보며 낡고 오래된 것이라고 무조건 개조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또 여실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오늘 남은 일정은 정말 가벼운 여행이다. 예류의 지질공원으로 가서 여왕의 머리를 만나고, 바람과 파도의 일이 대만에서는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친견하는 것 첫 번째 코스였다. 비는 내리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우리는 출발했다. 시내로부터 한 시간 이상을 나가니 그 바다가 나온다. 나는 그 사이에도 대만통인 친구 김 박사와 카톡을 통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를 탐문하고 있었다. 이곳은 해안이라 회를 먹어야 한다는 김 박사의 말에 동의하며 예류에 들었다.

 비와 바람이 거센 날이었다. 지난번처럼 나는 여왕의 머리 형상을 한 기암괴석보다는 발바닥에 보호받지 못하면서 닳고 닳아지는 화석을 찾아 다녔다. 하늘에 별이 있다면 예류에는 바위 암반에 별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산호의 화석이라고도 하고, 해초류의 화석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늘 지상의 별로 보였다. 촛대바위나 코끼리 형상, 선녀의 신발, 여왕바위, 버섯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 형상은 대만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예류를 만드는 포인트였다.

 우리들은 두 시간여 동안 이곳을 탐색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저 한편에서는 해양리조트가 있어 돌고래쇼 등을 하고 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점심 식사를 하러 해변으로 나갔다. 어부가 직접 물질을 해서 잡은 조개류와 게와 어류들이 즐비하고 가격대도 저렴했다.

 회를 먹자고 제안을 했지만 내 제안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뭔 회가 맛있냐고 꽃게탕으로 먹자고 했다. 같은 담양 사람인데, 이유가 뭘까 물어보니 읍내에서는 회를 먹지 않는단다. 그간 읍내에 수많은 횟집이 생겼지만 오래 가는 집이 없었단다. 영산강의 시원, 추월산, 삼인산, 몽성산, 병풍산 이런 자락과 뜨락 넓은 곳에 사는 담양 평야의 사람임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담양에서도 읍내권과 수북권과 수남권인 창평, 고서, 남면이 있고, 추월산 자락의 용면 등으로 문화적 자장이 나뉘는 것은 알지만 식문화에도 이런 격차가 있음을 새삼 터득하는 순간이었다.

진과스의 황금.
 
▲폐광된 탄광을 관광자원으로
 
 탕으로 점심을 먹고, 일행은 진과스로 올라갔다. 폐장된 탄광을 다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지혜를 엿보기 위함이었다. 그곳에 있는 황금을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키 포인트였지만 모두들 시큰둥했다. 내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곳곳의 조형물과 삶의 흔적을 남긴 아카이빙은 철저하게 찾아내고 기록하고 있었다.

지우펀의 거리.

 이제 지우펀으로 이동했다. 탄광촌의 배후 소비지인 이곳이 탄광이 사라졌음에도 수많은 인파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은 저렴한 가격, 밀집된 상가, 다양한 음식, 대만의 모든 생산품이 응집한 힘이다. 거기에 좁다란 골목에 스며있는 대만인의 친절함과 환한 미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영화 비정성시를 떠올렸다. 다시 일행들을 챙겨 이반에는 스펀으로 간다. 소원을 담은 풍등을 날리기 위함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풍등 가게를 찾았다. 언어가 잘 통하니 덤도 따른다. 여행사와 연대하지 않으니 개별 손님만 받는다는 이 가게에 하루 300여 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적잖은 숫자이다. 각각 소원을 4개의 면에 적는다. 개인의 소망, 가족의 소망, 직장의 소망, 국가의 소망이 거기 적혀 진다. 모두 나이가 든 탓이다.

시립미술관 전경.

 다른 한국인들의 글을 본다. 너무나 소박하다. 사랑, 취업, 건강, 외모, 돈 이게 전부다. 현실적이다. 대만 하늘에 한국어가 치솟아 오른다. 한국인의 소망도 하늘이 이어져 있으니 추월산이나 삼인산 어디쯤에서 받아 주실 거라 여기고, 여정을 접는다. 일행 중 한분은 사용하지 않아야 할 하얀색을 사용했다. 간밤에 집안에 상이 생겼다. 공무출장중이라 나서서 얘기하지 않았지만 눈물 가득한 풍등을 보며 나도 마음이 아려왔다.

 가벼운 나들이 길이라 했지만 강행군이었다. 모두들 숙소로 돌아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던 것을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청사를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공간을 찾았다. 굵직한 예술가의 작품과 시민들의 아틀리에와 문화예술 공간으로 동시 활용을 하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실리를 찾으려는 대만의 모습을 다양한 문화시설과 여행지에서 조우한 행복한 여행은 그렇게 5일의 여정에 막을 내렸다. 담양 문화의 새로운 시도가 여기 배움 여행에서도 한 실마리가 되었으면 하면서.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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