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 메리노 글, 그림 / 노은정 옮김/ 사파리
나는 별난 꼬마 악어가 아니에요. 나는 그냥…

▲ 그래도 별난 꼬마 악어는 외톨이가 되는 것이 더 싫었어요.
 여자는 왜 꼭 얌전해야만 하는 걸까? 여자들도 얼마든지 심한 장난도 칠 수 있고 어쩌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참 이상하다.

 나에게는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 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수학이 어렵다. 집에서 수학공부를 할 때면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실 때가 있다. 수학을 못 한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엄마한테 공부 못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넌 몰라도 돼.’ 어른들이 이야기하실 때 옆에서 듣다보면 궁금한 것이 참 많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질문을 하면 어른들은 이야기 중이니 조용히 하라고 하시면서 넌 아직 몰라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몰라야 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들일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비밀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몰라도 된다.’라고 하시면 더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진다.

 나도 어른이 되면 내 아이에게 그렇게 얘기하게 될까?
- 짜증나는 말 ‘박소윤. 광주서초3’
 
 조심성 많은 소윤이가 자신이 써온 글을 아이들 앞에서 차분한 어조로 발표를 했다. 소윤이의 글을 듣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 마디씩 내놓는 것이다.
 
 “그래, 맞아. 공부 못 해도 친구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도 있는데…공부를 왜 그렇게 잘 해야 하는데? 다른 것을 잘 하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아?”

 “나는 할 일을 정말 빨리빨리 하거든. 그런데 내 물건을 자꾸 어디에 놓고 와. 그래도 어디에 놓고 왔는지 알고 꼭 다음에 찾는데... 엄마는 자꾸 물건을 놓고 온다고만 야단을 쳐.”

 “나는 윤채가 명랑하고 적극적이어서 좋아. 뭐든 열심히 하잖아. 나는 모든 여자들이 얌전해야 한다고 생각 안 해.”

 “남자도 그래. 내가 울면 친구들이 놀려. 여자 얘들은 더 놀려. 남자가 우냐면서…왜 남자는 울면 안 되는데? 슬프면 울 수 있는 거잖아.”
 
 9살 짧은 인생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이렇게 자신을 부정당하는 말을 많이 들었는가 보다.

물을 싫어하는 아주 별난 꼬마 악어가 있었어요.
 
▲물을 싫어하는 아주 별난 꼬마 악어
 
 옛날 옛날에 엄마 악어에게는 아기 악어 10마리가 있었다. 모두 작고 귀여운 꼬마였다. 꼬마 악어들은 모두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씻고, 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같이 놀았다. 꼬마 악어들은 여느 악어들처럼 물놀이를 좋아했다. 단 한 마리만 빼고 말이다. 이 한 마리는 별나게도 물을 싫어했다. 물을 싫어하는 별난 꼬마 악어에게 형제 악어들은 “들어와 봐. 이렇게 시원한데. 들어와서 같이 공놀이 하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을 싫어하는 별난 꼬마 악어는 온 몸을 차갑고 축축하게 감싸는 물의 느낌이 싫었고 물에 들어갈 수 없었고 수영도 하지 못 했다. 별난 꼬마 악어는 물놀이보다 나무를 타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하지만 형제 악어들은 나무타기를 하지 못 했다. 별난 꼬마 악어는 물 속에 들어가지는 못 하지만 형제 악어들과 함께 놀고 싶어서 물 주변을 떠날 수는 없었다.

 별난 꼬마 악어는 점점더 외로워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형제 악어들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냈다. 별난 꼬마 악어는 예전부터 조금씩조금씩 모아두었던 용돈으로 빨간 튜브를 하나 샀다. 그리고 그 튜브를 몸에 끼고 용기를 내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같이 공놀이 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튜브를 끼고는 공놀이도, 물 속에서 헤엄치기도 힘들었다. 몇 날을 생각해서 짜낸 계획이 예상처럼 되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별난 꼬마 악어는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형제 악어들이 있는 물 속으로 그냥 점프해 들어가 보려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심호흡을 하고, 하나, 두우울, 둘 하고 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별난 꼬마 악어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 ‘물을 싫어하는 아주 별난 꼬마 악어’ 중에서

▲별난 꼬마 악어1

 “할머니, 이거 내가 그렸어요.”

 “오메~ 잘 그렸네. 그런데 왼손으로 그렸어? 오른손으로 그렸어?”

 할머니에게서 왼손, 오른손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칭찬받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던 5살짜리 왼손잡이 지윤이가 금세 시무룩해져버렸다. 그리고 그림을 가지고 휙! 하고 할머니에게서 돌아서버린다. 지윤이의 할머니는 지윤이가 그림을 잘 그렸다고 생각하고 대견했지만, 왼손잡이 손녀를 꼭 오른손잡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왼손으로 그렸니? 오른손으로 그렸니?’라고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지윤이엄마는 왼손잡이는 문제행동이 아니고 시대가 예전 같지 않으니 자꾸 고치라고 아이에게 강요하지 마라고 할머니에게 말해 보지만, 할머니는 ‘안 된다. 그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데… 고칠 수 있을 때 고치는 것이 좋아.’라고 지윤이 엄마의 말을 일축해 버린다. 지윤이 할머니는 우리 사회 환경이 다수인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왜냐하면 지윤이 할머니는 왼손잡이이기 때문이다. 다수인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회 물리적 환경에서 왼손잡이로 살겠다는 것은 활동할 때 따라 오는 거북스러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 할머니가 생각할 때 아무리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아닌 소수의 집단에 속해 있으면 불이익이나 부당한 처사를 당할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하는 손녀를 소수의 집단 속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윤이에게 하나, 두우울, 둘 하고 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하고 형제 악어처럼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라는 것이었다.
하나, 두울, 두울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별난 꼬마 악어2

 신학기는 아이들이 1년 동안 자신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반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들과 어떻게 만나느냐는 1년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고 그들을 만나는 순간은 1년을 좌우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아빠 없는 사람, 손들어!”, “엄마 없는 사람, 손들어!” 민지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담임선생님은 이 중요한 신학기 때,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부분의 이야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하나의 업무를 처리하듯이 질문하고 조사했다. 아빠가 없는(돌아가신) 민지는 얼굴이 새빨개지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을 크게 뜨고 옆에 짝꿍이 느끼지 못 하도록 심호흡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손을 들 수는 없었다. 마음이 이미 새빨개져 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들에게 있는 아빠가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이, 엄마아빠자녀로 구성되어지는 다수의 가족형태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가족형태가 ‘아빠 없는 사람? 엄마 없는 사람?’이라고 분류되어지고 호명되어져버리는 순간, 자신이 다수에 포함되지 못한 이질적인 존재로, 이물감을 주는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어지며 수치심을 느꼈고, 같지 않아서 배척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민지는 1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아빠가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친구가 집에 오면 재빨리 아빠의 영정사진을 감추었다. 자신을 사랑했지만 돌아가신 아빠와 혼자서 아빠의 빈자리까지 채우려고 노력하는 엄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지는 선생님을 볼 때면 ‘아빠 없는 사람 손들어!’라는 말이 오버랩 되었고 그때마다 마음이 새빨개져버렸지만 아무렇지 않는 얼굴로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학교에 다녔다. 하나, 두우울, 둘 하고 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다른 악어 형제와 똑같은 척 해야만 했다.
 
▲별난 꼬마 악어3

 현서는 휠체어나 목발을 사용하지 않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걸을 때 조금씩 뒤뚱거린다. 현서는 다리 치료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큰 수술을 두세 번이나 했고 지금도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비대칭의 다리로 인해 척추가 휘어지는 신체적인 압박감이 있음에도 현서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깊은 생각과 밝은 웃음의 소유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에게 현서는 다소 행동이 느리고, 행동이 불편한 친구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미 학습되어진 도덕적 가치와 의무감으로 볼 때 현서는 배려해 줘야하는 친구였다. (실제 현서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더 정교하고 민감하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가졌기에 돕고 배려해야만 하는, 그래야만 생활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지는 것 또한 올바른 인식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몇몇 아이들이 현서를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놀리기 시작했다. 현서가 다수의 아이들 신체조건과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놀림을 주도하였던 아이들은 도덕적 가치와 태도보다는 같은 무리 안의 연대감과 그 연대감에서 비롯되어지는 삐뚤어진 특권을 맘껏 휘두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이었다. 다수라는 이름을 특권으로 여기는 아이들은 현서가 걸어갈 때, 뒤에서 현서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과장되게 뒤뚱뒤뚱 걸었다. 현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다수라는 이름을 특권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 특권을 다수에 포함되지 않은 소수에게 행사하고자 했던 아이들은 실수를 하거나 서투르게 일을 하는 아이에게 ‘야, 애자야.’라고 현서 옆에서 놀렸다. 사진을 찍으며 ‘애자처럼 찍어, 애자처럼 찍어.’라면서 다리 길이가 비대칭인 포즈, 얼굴이 일그러진 포즈, 침을 흘리는 포즈 등을 취했다. 현서는 보았지만 보지 않은 척 했다. 들었지만 듣지 않은 척 했다. 특권의식으로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성적인 대화로 부딪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두우울, 둘 하고 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에에에에취이이이이! 물을 싫어하는 별난 꼬마 악어는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별난 꼬마 악어가 아닌 너는…
 
 외톨이가 되기 싫었던 별난 꼬마 악어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형제 악어들이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보려는 것이다.

 “하나, 두우울, 둘 하고 반, 세에에에에엣! 첨벙. 어푸어푸 도와주세요!”

 별난 꼬마 악어는 형제 악어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후로 별난 꼬마 악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코가 간질, 간질간질, 더 간질간질, 점점 더 간질간질하더니...예에에에취이이이이! 화르르르르르! 별난 꼬마 악어는 재채기와 함께 불을 내뿜었다. 이런! 별난 꼬마 악어는 바로 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별난 꼬마 악어는 헤엄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별난 꼬마 악어 아니 꼬마 용은 입으로 불을 화르르 뿜어서 형제 악어들을 열기구에 태워줄 수 있다. 그리고 형제 악어들을 자기 등에 태우고 하늘을 훨훨 날 수도 있게 되었다. 형제 악어들도, 별난 꼬마 악어 아니 꼬마 용도 모두 자유롭고 행복했다.
- ‘물을 싫어하는 아주 별난 꼬마 악어’ 중에서

꼬마 용은 형제 악어를 등에 태우고 훨훨 하늘을 날 수도 있었다.
 
 별난 꼬마 악어1이었던 지윤이는 같은 학번 학생들 사이에서도 주사를 잘 놓는다고 칭찬받는 간호대생이다. 아마 지윤이는 능숙하게 왼손으로 주사바늘을 꽂고 능숙하게 왼손으로 혈압을 재고 능숙하게 검진차트를 정리할 것이며 능숙하게 환자들을 간호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능숙하게 그림을 잘 그린다.

 별난 꼬마 악어2였던 민지는 다양성에 대한 예민함을 가진 나름 멋진 성인으로 성장했다. 민지는 자기마음이 새빨개졌던 중2 그 때, 그 자리에 자신 말고도 새빨개져버린 마음이 여럿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나중에서야 알았다. 폭력적 권력은 소수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기회와 조건을 모두 없애고 막아버린다. 그래서 소수자는 연대하지 못 하고 개인으로 흩어져 수적으로도 소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민지는 자기와 다른 이유로 새빨개진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남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이야기한다. 폭력적인 권력이 싫다고 말한다.

 별난 꼬마 악어3이었던 현서는 눈이 나빠 멀리 있는 것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비염이 있어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리 길이가 달라 뒤뚱거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며 그들 안에서 날카로운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으며 현재 생활하고 성장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나는 악어가 아니라 용이며, 용으로 살 것이라고 외치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안전하게 보장되어지고 인정되어지는 사회의 물리적 기반과 인식을 우리가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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