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교과서, 깡깡이마을

▲ 영도의 깡깡이 마을은 일찍부터 배를 수리하고, 배에 부착한 이물질을 제거하는 곳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
 시간은 쏜살같다. 부산에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런 저런 일들에 치어 다니다 보니 그날의 생동감있던 감동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다시 애써 기억을 호명한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후다닥 송부할 원고를 쓰느라 그곳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만 부산시에서는 적어도 수도였던 흔적과 역사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대통령의 거처였던 곳을 보존하고 인접한 지역을 임시수도 거리라 명명하며 현장을 꾸며 놓았다.

 그곳을 벗어나 이번에는 산복도로를 향해 일행들은 떠났다. 나는 원고를 쓰느라 나중에 합류했다. 이미 전에 방문했던 지역인 아미마을이라고, 일제강점기 일인들의 묘지로 쓰던 곳에 묘지 둘레석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마을로 향했다. 지상의 방 한칸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부산에서는 새삼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곳이 아미 마을이다. 그 마을의 커뮤니티를 굳건하게 만들었던 ‘아미맘스’라고 하는 어머니들의 모임을 만나 인터뷰했던 기억이 새록 거린다.
대한민국 임시수도 기념거리.

 나중에 합류를 하고 보니 일행들은 1세대 다큐 사진가인 최민식 선생의 갤러리에 있다. 안내를 맡은 손반장의 설명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손과 발이 불편한 한 장애인 신문팔이를 정면으로 응시하여 찍은 사진은 당대의 삶이 얼마나 신난한지 보여주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앵글이 주시한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여진다. 대체 무엇이 저 불편한 몸에 희망을 주었고, 저런 모습을 주저함 없이 카메라로 옮겨낸 관계는 또 무엇인가 싶었는데, 손반장은 최민식 선생이 이 사진을 찍고 그로부터 몇해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분이 보이지 않아 이곳 저곳 소식을 물으니 한분이 베시시 웃으면서 가판대를 가르켰다고 한다. 아! 그 가판대에 버젓이 그 얼굴이 있었다. 거리를 종횡무진했던 불굴의 의지가 이제는 정착민으로 안정화 된 삶의 반열로 접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낮에 본 삶의 치열함과 배치되는 밤풍경
 
 그 얘기 앞에서는 부산이란 도시는 어쩌면 희망과 꿈을 현실로 바꾸는 매력 있는 도시 아닌가 라는 긍정이 생겨났다. 다시 우리는 미니버스에 탑승하여 저녁을 먹으러 간다. 용궁식당이라는 곳에서 회를 먹었다. 손 반장의 팀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믿음이 가는 곳이니 더 맛있고 신뢰가 갔지만 한편으로 이곳까지 와서 자갈치 시장에 가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야간 투어의 일정이 있는 탓이다.
깡깡이 마을을 안내하는 마을 해설사.

 여행이긴 하되 배움을 전제로 한 여행이라서 우리는 멈출 수 없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야간투어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부산의 산록과 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디오라마 전망대로 향했다. 시멘트 골조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광주의 어반 폴리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의 한 조각을 옮긴 듯한 텅 빈 공간에 데크가 있고 그곳의 계단을 따라가면서 발아래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는 또 한편으로는 무등산의 세인봉에서 시내의 야경을 보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모두들 그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을 하면서 다음 코스로 넘어간다. 부산대교를 거쳐 영도의 청학수변공원을 거닌다.

 해변의 야경은 도시의 조명에 의해 황홀경을 연출한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들은 다 육지의 사람들이다. 바다 사람들이야 늘상 보는 것이니 무감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일종의 로망과 같았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부산대교를 거침없이 내지르는 차량의 행렬에 우리도 편입하며 다음 코스인 이기대 공원으로 갔다. 이곳 또한 해운대 센트럴 시티 쪽이 휘황하게 빛나는 전망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부산의 밤풍경은 낮에 보았던 삶의 치열함과는 배치되어 마치 우리를 빛의 터널이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애써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도 빛나는 삶의 모습들. 과거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는 홍콩도 이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위용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시 걸음을 옮겨 광안리 해변으로 갔다. 부산 사람들은 밤이 더 활발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데, 광안리는 더욱 심했다. 온갖 잠 안 오는 사람들이 모두들 이 바다로 모여진 것 같았다. 버스킹을 하는 뮤지션들의 장단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 호프를 즐기는 사람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사이에 우리도 편입해 보는 부산의 밤이 깊어졌다. 이제 숙소로 들어와 뒷정리를 한다. 각자의 소회를 들어 보며, 이 독특한 여행이 갖는 강점을 우리의 시티투어 안에 어떻게 반영해 볼지, 발전시킬지 이야기하며 바빴던 하루를 마감했다.
다큐 사진가인 최민식 선생의 갤러리.
 
▲환경 미화보다 삶의 이력을 우선시
 
 다음날 아침. 뷔페식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이번에는 영도대교의 깡깡이 마을로 간다. 어제가 투어였다면 이번에는 도시재생의 가장 최전방을 찾는 것이다. 함께 여행한 분들이 모두 관광 베이스의 일을 하지만 또 언제 유관 부서로 이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 도시를 가면 접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접하는 것이 최상이라 판단했다.

 영도의 깡깡이 마을은 일찍부터 배를 수리하고, 배에 부착한 이물질을 제거하는 곳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가 그 둔탁한 쇠와 만나며 깡깡 울려댄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깡깡이 마을이다.

 이곳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해 일한 기획자들의 모임은 ‘플랜B’ 라는 사회적 기업이다. 항시 최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 대안이 오히려 옳을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플랜B는 그것에 착안한 커뮤니티로 광안리와 해운대 사이의 언어적 차이를 탐구한 잡지를 낼 정도의 내공 깊은 단체다. 깡깡이 마을의 일을 총괄한 송교성 실장이 이 프로젝트의 길잡이로 나섰다. 전에도 혼자 들른 적이 있어 그 디테일과 주민과의 협력이 배우고 싶었던 터라, 내 첫 번째 질문은 송실장의 전공이 무엇인지였다. 사회학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감탄이 나왔다. 문학 평론을 하는 친구가 “지역은 당신의 캔버스가 아니다”라는 일성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깡깡이 마을의 아파트 벽면을 가득채운 벽화.

 한 도시를 문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대부분은 환경 미화에 먼저 힘을 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삶의 이력이 먼저였다. 주민을 만나고 공장주와 노동자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들의 애환을 담아 책을 만들고 재주를 찾아 그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거리와 공유 지대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실효적인 효과였다. 타 도시에서는 그 느리고 더딘 일을 왜하느냐고 물었고, 영도구 또한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겼을 법 하다. 하지만 플랜B는 흔들림 없이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며 과감히 더디게 해 나갔다. 마을 해설사 어르신이 묵직한 걸음으로 그런 변화의 공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신다.

 마을 투어를 장장 두 시간 동안 했다. 그 사이에 3년 동안 해운항만청과 숙의하며 도입한 유람선에 탑승도 해 봤다. 전국이 도시 재생이니 뉴딜이니 새뜸 마을이니 문화적 도시재생, 폐산업시설 문화공간화, 전통시장 살리기로 몸살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 깡깡이 마을이야 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서 같은 것이라 여긴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보람찬 마을 투어를 마치고 마을주민과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척에 자갈치가 있지만 그건 눈으로 보고 패스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공정여행을 실천하는 마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F1963에 자리한 YES24 .
 
▲쇠줄 만드는 제강공장이 문화공간으로
 
 이제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F1963으로 옮긴다. 과거 쇠줄을 만드는 고려제강의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거대한 공장이 지금은 갤러리 두 개와 YES24 라는 책방과 가드닝을 도울 화훼원과 복순도가라는 막걸리 제조공장과 브루어리, 테라로사가 있는 곳이다.

 갤러리 한곳은 부산문화재단에 위탁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인연이 있는 문화재단의 후배에게 안내를 부탁하여 공간을 둘러본다. 광주로 치면 전남방직과 같은 곳이고, 목포로 치면 조선내화와 같은 공장지역이다. 한데 이 거대한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어제의 영도다리가 롯데에서 가설해 주는 기적이 있었다면 이곳은 고려제강이 시민들의 문화향수권을 진작하기 위해 사회공헌을 한 곳이라 여길 수 있다. 거기에 숨겨진 것이 있다면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공간 배정이 눈에 들어온다.

 강릉에서 움직였던 테라로사라는 커피숍이 이렇게 부산까지 거대하게 진출한 힘이 새로웠고, 복순도가의 1만5천원이라는 막걸리에 열광하는 것이 그러하고, 헌책방인 YES24로 책을 들고 오고, 책을 사서 가는 행렬이 그저 단순하게 문화향유가 아닌 참여와 지속성을 보장하는 힘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은 나만의 것으로 남기지 않고 정책이나 실천 속에 아름답게 결실을 맺을 날을 기약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되, 내 지역이 가진 특징을 더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부산의 속살을 만났던 즐거움을 마감한다.
전고필<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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