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무엇으로 자랄까?

 까맣고 마른 몸에 또래에 비해 작은 키, 갸름한 얼굴, 하회탈처럼 웃는 동호.

 7월14일은 동호의 생일이다.

 동호의 3학년 친구들 뿐만 아니라 1, 2학년 동생들이랑 6학년 형들도 모였다. 동호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이다. 실은 잿밥에 더 관심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모두 목소리 높여 동호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앞에 놓여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만발의 준비를 하고서 말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동호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동호야, 빨리 소원 빌어. 촛불 끄기 전에 소원 비는 거야. 소원 빌었어?’.

 ‘얼릉 촛불 불어. 하나, 둘, 셋!’ 동호가 케이크를 한 입 먹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은 들고 있는 분홍수저들을 일제히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꽂는다. 아이들끼리 ‘야, 크게 떠서 먹지 마라.’, ‘너무 빨리 먹지 마라고. 동호는 세 번 밖에 못 먹었어.’, ‘흘리면 어떻게 해. 아까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주변 아이들이 몇 번 떠먹는지 확인하면서, 아이들 먹는 것을 참견하면서 먹느라고 엄청 바쁘다. 순식간에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사라졌다. ‘아~ 아이스크림이라도 좀 더 사올 걸.’ 이라는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동호 생일파티에서 아이들은 동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동호는 그 순간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중심이었다.
 
▲동호의 생일
 
 1학년 때 동호는 시설 생활지도 선생님이나 친구, 형, 누나, 심지어 동생들 사이에서도 산만하고 문제를 자주 일으키고, 눈치까지 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암묵적으로 받았다. 동생들조차 동호가 하는 말은 슬쩍 그리고 은근히 못 들은 척 넘겨버리고, 동호가 무슨 실수라도 할라치면 선생님에게 이르겠다고 놀리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면 동호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고의성이 없었음을 호소하다가 동생을 때리거나 감정에 복받쳐 울어버렸다. 동호는 아이들 사이에서 불안했다.

 동호는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아이라 울기도 자주 하고, 웃기도 자주 했다. 호기심과 표현 욕구도 풍부해서 질문도 많고, 말도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때마다 자신의 욕구를 솔직히 표현했다. 이것저것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 보고 싶어했다. ‘이거 뭐예요?’, ‘이거 어떻게 해요?’, ‘해 보고 싶어요.’ 가만히 보면, 동호는 1학년 아이다운 1학년 아이였다. 다만 동호는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이다 보니, 단체생활 속에서 유독 이런 모습이 부각되어 문제행동으로 인식된 것 같았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유독 상황파악능력과 관계유지능력이 발달한다. 그런데 우리 동호는 아직 연령적으로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기인데다 시설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 능력이 다소 덜 발달해서 상황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어렵고, 엇박자를 만들어 냈던 것 같았다.

 3학년이 된 동호는 3학년답다. 아니 시설에서 생활하는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가정에서 생활하는 3학년 아이들보다 훨씬 상황파악능력과 관계유지능력, 상황대처능력이 발달하였다. 동호는 1학년 때보다 훨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신뢰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면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한다. 다른 친구와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알고, 상황을 보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또 동호는 다른 친구들의 장점도 잘 발견하고 받아들여주며, 나서서 칭찬해 준다.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자신이 가지게 된 감정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안다. 하지만 실현될 수 있는 욕구와 실현될 수 없는 욕구를 구분하고 실현될 수 없는 욕구는 포기하고, 그래도 남는 아쉬운 감정은 스스로 처리할 줄 안다. 예를 들면 ‘후원자님 집에 가고 싶어요. 나도 후원자님 차타고 집에 가면 안 돼요?’라고 말해 놓고, 당황하는 후원자를 보면 재빨리 ‘장난이에요’라고 웃으며 후원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동호는 진짜 나의 집에 가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것이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동호는 자신의 욕구를 빨리 숨기는 것이다.
 
▲집과 같은 분위기의 시설

 동호는 또래에 비해 체격과 신장이 작다. 1학년 때는 아주 조금 작은 편이었는데, 3학년이 되니 차이가 좀 많이 난다. 동호와 함께 생활하는 채은이는 1학년 때는 또래에 비해 큰 체격이었는데, 3학년이 되니 보통 체격 정도 되었다. 미림이는 동호처럼 중간 체격이었다가 작은 체격이 되었다. 아이들을 오랜만에 보는 자원봉사자가 ‘에구, 우리 아이들이 많이 안 컸네요.’라는 말을 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왜 더디게 자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들으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동호가 살고 있는 시설은 꽤 안정된 시설이다. 아이들은 형, 친구, 동생, 그리고 복지사 선생님과 한 집(호실)에서 생활한다. 이곳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첫 소감은 무척 밝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시설도 깨끗하고 또 아이들이 사는 집도 밝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척 밝다는 것이다. 가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식사도 집(방)에서 한다. 반찬과 국은 식당 조리사가 만들어주시지만, 밥과 또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반찬은 집에서 복지사 선생님과 형이 직접 해 준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집이 집집마다 풍경과 분위기가 다르듯이 이곳 시설의 각 집의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시설의 선생님이나 관계자가 아이들의 영양관리를 소홀히 해서 아이들의 체격이 더디 자라는 것이 아니다.
 
▲생일 때 엄마가 만드는 팥시루떡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는 생일 때면 팥시루떡을 해 주시곤 했다. 사실 그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달콤하고 예쁘기까지한 케이크를 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팥시루떡 안 먹겠다고 심통을 부린 적도 많았다. 엄마는 그럴 때면 “이 떡 먹어야 우리 수정이, 올해에도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나쁜 사고도 없이 잘 지낼 수 있어. 쑥쑥 클 수 있다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내 귀에는 비싼 케이크를 사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감언이설로 들렸고 그래서 엄마가 밉고 서운했다.

 커서 알았다. 예부터 붉은 팥은 잡귀와 액운을 막아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러한 신통한 능력을 가진 팥으로 떡을 만들어 아이에게 먹이면, 아이에게 올지도 모르는 병액과 부정한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생일 때 팥으로 시루떡을 만드는 것은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비는 엄마의 기도이자 엄마가 할 수 있는 아기를 보호하는 행위였던 셈이다.

 나의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또 그 엄마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시루를 올려놓고 쌀가루와 붉은 팥고물을 켜켜이 쌓아올리며, 나의 건강과 안전을 기도했다. 엄마의 기도가 들어 있는 팥시루떡을 먹은 나는 1년을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었고, 또 팥시루떡에 들어있는 엄마의 기도와 바람과 사랑 덕분에 나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라는 생각을 커서야 했다
 
▲아가마중

 골목 속의 작인 집 젊은 새댁이 아기를 뱄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것입니다. 첫아기 맞을 준비가 대단합니다.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는 일이 없던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가서 아기가 뱃속에 편안히 앉았나를 진찰받습니다. 또 뱃속의 아기가 먹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과일도 빛깔 곱고 향기로운 과일로, 채소도 싱싱한 채소로, 생선도 물 좋은 생선으로, 고기도 신선하고 맛 좋은 고기로 골고루 먹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몸 뿐 아니라 엄마의 마음도 뱃속의 아기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관심 쏟지 않았던 이웃에게도 이야기를 건냅니다. 아침마다 신문 배달해 주는 소년에게도 미소 짓고, 소년의 작고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도 합니다. 엄마는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아기 옷도 여러 벌 장만하고 아지랑이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아기 이불도 만들었습니다. 튼튼하고 빛깔 고운 목욕 대야도 사고, 눈에 들어가도 맵지 않은 비누도 사고, 엄마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샀기 때문에 엄마의 주머니는 헐렁헐렁해졌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은 날로 가득해 집니다.
 아빠의 마음도 분주합니다. 아빠는 믿음직스러운 아빠가 되려고 준비합니다. 더러워진 시소, 한쪽 줄이 끊어진 그네. 위험해 보이는 맨홀구멍, 사람을 치고 뺑소니친 차, 어린이를 꾀어내 감춰놓고는 부모한테 돈을 달라고 한 사람 등등 세상은 온통 위험한 것 투성이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아빠는 아기를 위해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아빠는 아기를 위해 밝고 따뜻하게 방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위험하거나 고장이 잘 나는 장난감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아기가 탈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단하게, 다시 끊어지지 않게 동네어린이놀이터의 한쪽 줄이 끊어져있는 그네를 고쳤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빠의 마음처럼 다른 사랑하는 마음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랑하는 마음들을 아기가 만났을 때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를 참 잘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세상에 사랑하는 마음들이 많이 생기게 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도 벌써부터 아기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준비한 선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나, 눈에 보이는 어떤 선물보다도 으뜸가는 선물이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선물을 마련해 놓고 아기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은 마냥 찬란하기만 합니다. 할머니는 아기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작정입니다. 아기에게 꿈을 줄 작정입니다. 아기는 커 가면서 꿈을 열쇠 삼아 사람과 사물의 비밀을 하나하나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참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아가마중’중에서
 
 생일을 맞은 동호에게 ‘아가마중’을 읽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읽어주지 못 했다. 동호가 나를 마중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볼까봐.

 생명을 맞이한다는 것은, 아가를 마중한다는 것은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다. 두려우면서도 그만큼 행복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간절한 기다림과 따뜻한 마중을 통해 아가는 세상에 온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러지 못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동호다.

 동호는 결혼하지 않는 어린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생명을 맞이할 준비 없이 불쑥 맞게 된 아이를 어린 엄마는 열 달 동안 뱃속에서 보호하고 키웠다. 그 엄마의 옆에는 함께 아이의 생명을 만든 남자친구는 없었고, 두려워하는 엄마를 안심시킬 엄마의 가족도 없었다.

 동호에게는 아기를 위해 믿음직한 존재가 되겠다는 아빠가 없었고, 이야기 선물을 잔뜩 준비해 놓고 아기를 기다리는 할머니도 없었다. 동호를 기다리고 따뜻하게 마중하는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지난 후, 엄마는 동호를 떠났고, 동호는 이제 붉은 팥시루떡을 만들어 입에 넣어 줄 엄마조차 없게 되었다. 동호가 눈을 마주치기를, 동호가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기를, 동호가 처음 내뱉는 말로 자신을 불러주기를, 동호가 안간힘을 쓰며 두 발로 서기를, 동호가 첫발을 내딛기를, 동호가 밥을 먹기를, 동호가 계단을 오르기를, 동호가 첫 친구를 사귀기를, 동호가 기저귀를 떼기를, 동호가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가기를, 동호가 그네를 타기를, 동호가 두 발 자전거를 타기를, 동호가 책을 읽기를, 첫 글자를 쓸 수 있기를, 동호가 사랑해라고 말해 주기를 동호의 이름을 불러주며 동호 옆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려준 마음이 동호에게는 없었다.

 아이들은 눈 마주침을 통해 자란다. 아이들은 쓰다듬는 손길에서 자란다. 아이들은 자기의 말을 귀기울여주고 마음을 이해해 주는 눈빛을 보고 자란다. 아이들은 아이의 순간순간을 기뻐해주고 안타까워해주고 걱정해주고 함께 설레여 주는 마음을 먹고 자란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을 했든, 착한 일을 했든 상관없이, 항상 변함없이 자기 옆에 존재하는 한결같은 존재가 주는 안정감을 통해 자란다. 시설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살펴주는 복지사 선생님들이 바뀌게 된다. 아이에게는 자신의 안전과 건강과 마음을 챙겨주는 보호자가 바뀌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설에서 사는 아이들은 가족형태로 생활하는 아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동호가 또래 아이들보다 신장이나 체격이 작고 유독 늦게 자라는 것을 보며 ‘아이는 좋은 음식으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팥시루떡 아닌 케이크라도 괜찮다면…

 아이의 생일이면 아직도 팥시루떡을 만드는 집들이 있다고들 하지만, 많은 집은 나처럼 팥시루떡 대신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살 것이다. 제과점에서 나는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신중하게 고른다. 케이크를 고르면서 아이가 어떤 모양을 좋아할까? 어떤 맛을 좋아하더라? 싫어했던 맛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들 것이라고 확신이 드는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케이크보다 더 신중하게 촛불을 챙긴다. 케이크를 먹는 것이지만 소원을 비는 것을 촛불이기 때문에 촛불은 케이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나이 수대로 부러진 것 없이 챙긴다. 아이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까 아이의 생일케이크를 가지고 가는 내내 기분이 좋다. 아이의 생일케이크를 내놓고 아이의 얼굴을 살핀다. 아이가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향해 ‘후~’하고 불었을 때 한 번에 꺼질 수 있게 촛불위치를 잘 맞추어 꽂아둔다.

 아이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후~’하고 바람을 불 때면, 나는 아이 뒤에서 아이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라고 바람을 빈다.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짧은 시간동안 만나는 것이 고작이지만, 동호에게 도움이 되는 말도, 행동도 잘 해주지 못 하지만, 팥 시루떡이 아닌 케이크과 촛불을 챙겨오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동호 곁에, 아이들 곁에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고 싶다. 동호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동호와 아이들 곁에 기다려주고 생각해 주는, 사랑하는 마음들이 더 많이 와 있었으면 좋겠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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