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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노성두 ‘청동에 생명을 불어넣은 로댕’
생각한다는 것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9-09-09 06:05:01
▲ ‘생각하는 사람’.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하여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에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바쳐 외롭고 수줍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
 
▲하나의 세계가 된 남자

 오귀스트 로댕(1840-1917),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존경한 인물이자 로즈 뵈레와 카미유 클로델 두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았던 사람.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은 이 순박하고 우직한 조각가는 20년 동안 단테의 ‘지옥의 문’을 구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1880년에 주문받은 작품은 높이 7.75m, 넓이 3.96m에 달하는 거대한 문이었고 문에는 200여개의 형상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고도 수백수천의 형태들이 스케치 되고 제작되고 망가뜨려졌다. 있던 것이 떼어져 망치에 스러졌으며 작업실 구석에 있던 다른 형상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지옥의 문이 놓인 로댕의 작업실이야말로 케르베로스가 지키는 아비규환의 입구였다. 세상을 만들고 다시 허물어뜨리는 시간들이 그 방의 ‘디멘터’였다. 20년이 지나 파리 예술부와 작품을 약속한 시간을 멀찍이 넘긴 노예술가는 ‘지옥의 문’을 전시하기보다 차라리 그동안 받은 제작비 전액을 돌려주는 길을 택한다. 그의 내면은 속삭인다. ‘아직 아니야.’

 무엇이 그에게 ‘아직은 아니’라는 고갯짓을 하게 만들었을까? 부조처럼 문에 바싹 붙어있는 하나하나의 작품은 사랑과 절망과 희망이 뒤엉킨 죄악과 부조리의 순간들을 밀도 높게 구현한다.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들끓고 넘치는 생각들, 그러나 그에 미치지 않는 손의 능력. 로댕은 절망에 사로잡혀 “나는 지금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있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한다.

노아의 방주, 신께서 인간계를 물로 뒤덮을 제 지구상에 남겨둘 생명 한 쌍씩을 데려와 가두라고 명했던 거대한 묵시론적 배. 로댕이 ‘지옥의 문’에 태울 인물들은 종말의 세기들을 뛰어넘어 인간을 증명할 하나의 형상, 예술로써 삶과 운명을 대변할 서사시가 되어야 했다.

 나는 ‘지옥의 문’이 제작되다 멈춘 것마저 작품의 일부라고 느낀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는 완결이 없음을 보여주듯 로댕은 미완성인 ‘지옥의 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자신의 묘지 위에 ‘생각하는 사람’을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는 그렇게 자신이 만든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주어진 운명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살아낸 자로서 ‘지옥의 문’을 지키는 또 다른 단테, 혹은 뭇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도자 베르길리우스가 되었다.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책속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을 묵연히 바라본다. 본디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들보 위에서 지옥의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로댕이 다시 독자적인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눈썹 사이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 비스듬한 시선은 아래를 향했으나 밖이 아닌 내면을 더듬는다. 로댕이 살았던 19세기, 생각은 여전히 선택된 부류를 위한 것이었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법적 신분은 무너졌으나, 드넓은 대지를 소유한 귀족과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는 이름을 잃지 않았고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지식 대중화의 이름으로 학교가 세워졌으나 농토를 잃고 떠밀려온 농민들과 거리를 떠돌던 무리를 흡수해 최소한의 문해력을 가르치던 수업시스템은, 기계 작동법을 읽고 출퇴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규율과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사칙연산의 답을 틀리지 않는 것도 생각인가, 가르치는 것을 습득하는 능력도 생각인가. 그것이 전부라면 학교는 이해를 가장한 노예의 생각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평등은 널려있었으나 자유는 말뿐이었다. 실현된 평등도, 똑같은 시각에 출근하고 우르르 공장 문을 나서는 12시간 노동의 평등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중절모에 모직 양복을 입고 지하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물결 위로 목장으로 향하는 양떼 무리를 겹쳐서 보여준다.

그 곳에 공장이라는 획일화된 질서에 도무지 순응이 안 되는 찰리가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순식간에 나타났다 지나가는 나사 하나를 조이는 일에는 생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아니, 생각이 끼어들면 끝이다.

짧은 점심시간, 옆자리의 당신이 풀어놓은 네모난 도시락에는 무엇이 들었는가. 그 맛은 어떠한가. 호기심도 많고 웃음도 넘치는 찰리는 상상한다. 저 소녀는 왜 우는가, 저 여인은 왜 빵조각을 훔친 소녀의 상황보다 행위의 결과만을 보는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기로 한다.

적어도 감옥은 불합리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와 있기에 타당하고 적법한 논리가 있다. 그러나 찰리, 맑은 영혼의 눈이 보는 20세기 런던 도심은 부조리가 이성의 이름으로 활개 치는 곳이다. 그곳에는 사유가 없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문 지키는 ‘생각하는 사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블루칼라 노동자의 몸을 하고 있다. 계몽이 날개를 드리운 산업혁명 이후, 자본의 등에 올라탄 제국주의 시대를 살았던 로댕은 ‘생각’의 정체를 고통과 고뇌로 보았다.

‘지옥의 문’은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서 얻은 영감의 소산이라지만 나는 ‘생각하는 사람’을 조금 더 국소적 시간틀 안에서 읽고 싶다. 생각이 고통스럽다면 이유는 내가 해결해야할 대상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면서도 거부하는 기묘한 역설! 혹은 결과를 강하게 욕망하지만 과정을 즐기지는 못하는 수단주의. 우리가 조급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근대 이후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자연의 법칙을 궁리하고 우주를 경외하며, 별들과 대화하기를 바란 갈릴레이 혹은 케플러가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은, 생산과 판매의 손익분기점을 어떻게든 맞추려고 애쓰는 현대의 얼굴이다. 생각하는 사람, 그가 ‘지옥문’앞에 앉아있는 혹은 지옥문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나는 추측할 따름이나, 모든 예술가는 나름의 영매적 기질을 가졌음을 나는 안다.

로댕이 조각을 통해 드러나게 한 예언 혹은 진실은, 당시에 이미 싹이 비치고 있었던 현재 조만간 도래할 미래의 모습임을.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신이 아니니, 그가 딛고선 신성은 자연적 생명을 밟고 선 것이며 인공으로 얻은 생명. 전기공급만 끊어져도 아비규환이 되는 의존적 인공 기계-장기들, 그것은 결핍을 쏟아내는 과잉. 때로 어떤 아이들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현대도 그러한가. ‘행복’을 투쟁해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배우며 자라는 시대란 얼마나 불행한가. 공허로 이루어진 불멸에의 갈망.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19세기를 상징하지만, 인류 자신이 되어 먼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욕망하는 주체, 결과를 만든 담지자로서.
박혜진<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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