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에 은빛 물결

▲ 이제 막 바다에서 건져온 멸치들이 은빛 물결을 이룬다.
 은빛으로 반짝인다. 걸음걸음, 선착장 앞길을 은빛으로 채워가는 중인 오애심(75) 할매.

 “허치는 것도 기술이여. 뭉치지 않게 고로고로.”

 한 주먹 집어 후두두두 멸치를 흩뿌린다.

 “여그 멜이 좋제, 바다 잔 보소. 얼매나 깨깟한가.”

 이 ‘멜’을 품은 저 큰 바다로 눈을 뜨게 하는 말씀.

 “원래는 선창이 꽉꽉 차제. 근디 올해는 멜이 안들어.”
“여그 멜이 좋제. 바다 잔 보소. 얼매나 깨깟헌가.” 오애심 할매.

 막내아들이 늙으신 부모님 돕겠노라고 올해 들어왔다.

 “근디 멜이 안 든께 까깝시롭네. 물때 따라 한밤중에도 일어나 물보러 가야 하고. 멜을 한다는 거이 아조 힘들어. 젊은 사람 아니문 못해.”

 러시아에서 온 일꾼도 있다. 샤샤(25)를 소개하는 할매의 일성은 “이뻬”. 부록처럼 따라붙는 말씀은 “이녁 새끼들맹이제. 나도 객지에 자석들 내보내고 사는디.”

 “즈그 각시랑 애기도 있더랑께. 쉴참에는 맨나 사진 딜다보고 있어. 오죽이 보고 싶겄제.”

 샤샤의 대변인 오애심 할매. 말은 안 통해도, 맘은 말없이 통한다.
 
 “인자 사리 지나고 그물 끌어올릴 때여”

 “거그 새우랑 꼴뚜기랑 추려묵으쇼. 막 삶아져나온 거라 맛나라.”

 느닷없이 권해지는 ‘길거리음식’이다. 멸치그물에 한데 올라온 새우도 멸치 사이에 간간이 섞였다.

 바다를 등 뒤에 두르고 한창 멸치를 너는 중인 진명회(60)씨.

 연홍도에서 멸치잡이를 하는 세 집 중 한 집이다.
멸치는 신선도가 생명. “긍께 빨리 날라다 빨리 삶아서 널어야제.” 진명회씨.

 “한명회가 아니고 진명회여라”라고 이름을 대는 그이는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살다본께.”

 물때 따라 살아온 고향의 삶이다.

 “하래 두 번, 밤에 한 번 나가고 아침에 또 나가고. 사리 때 많이 들제. 인자 사리 지나고 그물 끌어올릴 때요.”

 싸목싸목 살다가도 ‘멜 일’을 할 때만은 날래진다. 멜은 신선도가 생명.

 “쫌이라도 지체하문 금세 배가 벌어져불어. 긍께 빨리 날라다 빨리 삶아서 널어야제.”

 “멸치 잡으문 마을 이웃들한테 한 포씩 돌려”

 작업장 대문 돌기둥에 ‘멸치 팝니다’라고 크게 써졌다.

 진성수(73) 할배는 그 앞에서 바느질 삼매경.

 “딴 바느질은 못해도 내가 그물은 잘 쭤매. 그물 한 틀을 새 걸로 사자문 얼매나 비싼디 착실히 쭤매서 써야제. 해마다 낡아지고 많이 상해. 조류가 물씸이 씬께. 같은 마을이어도 어장지가 달르고 막은 위치가 달른께 물씸이 다 달라. 물빨이 센 디다 하문 암만해도 고기가 많이 들제. 사리 때 고기가 많이 들어. 사리 때 물이 씰 때 그물 딱 피노문 막 들어오제.”

 멸치는 4월부터 12월까지 잡는다.

 “겨울에는 굵은 멸치 나오고 지금은 자잘한 세리 나오고.”

 세리는 세멸이다.

 “바닷일이 힘들제. 나이들수록 더 힘들고. 품이 많이 들어. 고기 잡으러는 물때 맞으문 날마다 나가는디 일주일이나 십일 되문 그물을 또 철수해서 말려줘야 되고. 그물에 뻘 끼고 잡풀이 질어분께. 글문 금방 낡아불어.”

 그 순간 훅 들어오는 말씀. “잡사봐. 다디다요.”

 작업장에서 나오던 남순안(85) 할매가 싸맨 신문지를 주섬주섬 풀어 대뜸 멸치 한 줌을 건네준다.

 “나도 얻어갖고 가요.” 그러니 ‘내야(내것)’가 아니라는 듯한 투로 권하는 ‘잡사봐’의 내공.

 “무단히 노느니 항꾼에 멜을 추래준께 쥔네가 무쳐묵으라고 주요.”

 할매는 요리법까지 부록으로 건넨다.

 “안 보끄고 참지름 떨치고 깨랑 꼬칫가리 째까 여서 주물주물해서 묵으문 맛나.”

 느닷없이 길 위에서 마른멸치를 얻어먹는다. 자꾸 ‘손이 가는’ 맛이다. 간간함이 적당해 고소함을 더한다.

 멸치 맛은 염도가 중요하다.

 “막 잡아서 삶으고 소금을 안하고. 소금을 너문 근대가 많이 나가. 짠께 무게가 많이 나가. 멸치 양이 적게 들어가제. 다섯 포 맹글 놈이 여섯 포가 나오제. 근디 멸치가 굵어지문 또 소금을 좀 너야 간이 맞고 입맛에 맞아.”
바다로의 출퇴근. 섬의 일상이다.

 올해는 멸치가 귀하다.

 “수온이 안맞아서근가 벨로 안나. 태풍이 와서 수온이 내려가불어서 근가 멸치가 형성이 안돼.”

 진성수 할배는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지 돈에 연연하문 된다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멸치 잡기 시작하문 끝날 때까지 전 마을주민들한테 한 포씩 돌려. 반찬 하라고 주제. 한 번에 많이 잽히는 것이 아닌께 집집이 차근차근 주제.”

 고향 찾아온 후배나 동생 같은 이들한테도 “고향 생각함서 이거나 맛봐라” 하고 한 포씩을 앵겨 보낸다.

 “주고 산께 맘이 핀하제. 우리 집사람도 똑같애. 주기를 좋아해. 고생하고 일해도 한 포씩 반찬하라고 나놔주는 그런 재미가 있어. 나만 묵고 살라고 하문 일이 더 고된 벱이여. 놈도 나놔주고 그 재미를 알문 일이 덜 고되야.”

 잡아온 다른 고기들도 이웃들간에 종종 나눈다.

 “여그 고기가 질도 좋고 맛도 좋아. 농어 능생이(능성어) 같은 고급어종이 먹이가 좋은께 새우가 많이 난께 득량만으로 산란하러 와. 우리 마을은 산란하러 가는 길목이여. 고기가 몇 개월씩 정착했다가 빠져나가. 농어 같은 것이 이 앞바다에서 많이 나제.”
 
 “우리는 바다가 젤로 중하제”
“여그 고기가 질 좋고 맛나제.” 박동문 할배.

 그물 손질중이던 박동문(79) 할배는 “여가 옛날에는 고기잡이를 아조 심하게 하던 어장촌인디”라며 “지금은 다 나이들어논께 바다에 많이 못 나가요”라고 말한다.

 “여가 간만의 차이가 커요.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사리 때는 너무 쎄. 긍께 조금때 하제. 낚시질로 많이 해요. 주낙 할 때는 부부지간에 가고.”

 임신선 할매가 ‘평생 동업자’다.

 “고기라는 것이 뻘에서 사는 것하고 돌 사이에서 사는 것이 맛이 틀리답디다. 여그는 돌팍에서 난께 더 맛나. 쫌뱅이가 돌 사이에 살아. 긍께 낚시가 잘 떨어져. 돌 사이에 끼여서 걸리문 떨어져불제. 태풍 불어서 바다가 뒤집어지문 물이 탁해. 인자 물이 쫌 맑아져야 쫌뱅이를 잡제.”

 머리의 등쪽으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솟아 있는 붉은 색 물고기 쏨뱅이.

 “쫌뱅이가 빈내도 안나고 꼬들꼬들하니 맛나. 매운탕으로 낄여놓든가 꿔묵든가 영 맛있어.”

 이것은 이연엽(87) 할매 말씀.

 많이 나는 고기 중 하나인데 이곳 사람들은 다 ‘쫌뱅이’ ‘좀뱅이’ 라 부른다.

 “엊지녁에 금풍쉥이랑 능생이랑 전어 잡아갖고 오늘 새복에 녹동 가서 폴고 왔어.”

 ‘도희호’의 주인 김이철(61)씨.

 “도희는 우리 딸 이름!”

 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웃음 벙글어진다. 옆엣 배에는 ‘KBS’라고 새겨져 있다.

 “아, 저거는 김봉선씨 배여. 방송국 배가 아니라, 허허.”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오래 살다 아이엠에프를 겪으며 돌아왔다.

 “우리는 바다가 젤로 중하제. 바다가 잘 지캐져서 고기 씨알이 말르지 않애야제. 배 가지고 어장으로 묵고 산께.”

 배엔 전어며 갑오징어 광어 간재미 소라 같은 것들이 조금씩 남겨져 있다.

 “인자 요것은 술안주! 허허.”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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