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하는 언어, 언도에 온도를!
소통하는 언어가 진정한 질병의 통역사

▲ 마음을 나누는 언어는 아픈 마음을 치료한다. 언도(言道)에도 온도(溫度)가 있다. 빠롤(Parole)의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 빠롤의 언어는 상처를 치유한다. - 르네 마그리트, ‘La Therapeute(치료)’
 “잠깐만요, 다스 부인, 왜 당신은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제발 나를 다스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는 스물여덟 밖에 안 되었어요. 당신의 재능 때문에 말씀드리게 된 거예요.”

 “무슨 말인지요?”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나는 8년 동안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친구에게도, 더욱이 라즈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아직도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신은 내게 할 말이 없으세요?”

 “무엇에 대해서 말입니까?”

 “내가 방금 말한 것에 대해서요. 내 비밀, 나의 이 끔찍스러운 느낌에 대해서 말이에요. 아이들을 쳐다보면 끔찍스러워요. 라즈는 더 끔찍스럽고요. 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어떤 날은 창문을 열고 아이들을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카파시 씨, 뭔가 할 말이 없으세요? 난 그게 당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직업은 관광 안내를 하는 겁니다, 다스 부인.”

 “그거 말고요. 당신의 다른 직업, 통역사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통역이 필요합니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세요?”

 “무슨 뜻입니까?”

 “난 그 동안 그런 끔찍한 느낌을 갖고 살아온 생활이 피곤해졌어요. 카파시 씨, 무려 8년 동안 고통을 느끼며 살아온 거란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내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뭔가 치료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것이 정말로 아픔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입니까?”
- 줌파 라히리, ‘질병의 통역사’ 中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아픈 청춘의 언어
 
 두 사람의 대화가 심각하다. 한 사람은 제발 나 좀 이해해달라고, 또 한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이해해달라는 것이냐고 호소하고 있다. 스물여덟의 젊은 부부가 여행하고 있다. 인도 출신 미국인인 이들은 채 열 살이 안된 아이들 셋을 데리고 고국으로 휴가를 왔다. 그런데 젊은 부인 미나는 이 여행이 즐겁지 않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무신경하다.

 지루함에 못견뎌하던 미나가 돌연 호기심이 발동한다. 낯선 고국을 차로 안내해주러 온 여행 가이드 카파시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안내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중년의 카파시가 하는 다른 일이 미나의 무료함을 깨웠다.

 드넓은 인도의 각 지역에는 오지가 많은데 이 지역들의 방언 또한 그 수만큼 많아서 언어 소통이 만만치 않다. 지방 소도시의 병원에서는 오지의 환자들이 찾아오면 외국인들보다 소통이 더 어려워 진료하기 힘든데, 오지 출신 도시인인 카파시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통역을 맡고 있다. 카파시의 이 특이한 직업이 미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까?

 미나와 라즈 사이에 태어난 세 아이 중 하나는 라즈의 아이가 아니다. 오래 전 이들 부부의 집을 찾아온 라즈 친구와의 일탈로 태어난 아이가 둘째 보비다. 미나는 지금 라즈도 모르고 그의 친구도 모르는 비밀을 처음 만난 여행 가이드에게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하듯 쏟아붓고 있다. 젊고 멋진 여인으로부터 관심을 받아 잠시 상상의 로맨스에 잠긴 중년의 카파시는 난데없는 충격에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리의 카파시는 어떤 해결책을 주어야 하는가? 해결책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마음을 읽지 못하는 병든 인생의 언어
 
 “프렘웰 양. 당신은 물론 저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우리가 약혼한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요?”

 “고마워요, 레몬 씨. 하지만, 저는…”

 “아, 알아요! 제 머리 때문이죠? 언제나 머리 위의 이 빌어먹을 상처가 문제라니까요!”

 “어머나, 그렇지 않아요, 레몬 씨.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물론 그 상처에 대해 조금 궁금해한 적은 있어요.”

 “이 빌어먹을 구멍이 늘 문제라니까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치 않으면 안하셔도 돼요.”

 “어느 날 아내가 망치로 제 머리를 내리쳤답니다! 정통으로 내리쳤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죠!”

 “아아, 가엾은 레몬 씨.”

 “저는 소파에 누워있었고 아내가 그런 저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죠. 화요일 오후 2시 무렵이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별 이유도 없었어요. 그 여자가 못돼먹어서 그런 거죠.”

 “하지만 왜 그래야 했을까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미친 여자였나요?”

 “그랬겠죠. 미쳐서 그랬던 게 틀림없어요. 아내는 갑자기 공포에 질려 비명을 세 번 지르고는 바닥에 망치를 내동댕이치고 문밖으로 달려나 갔습니다.”

 “도대체 왜, 부인은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아마 망상에 사로잡혀 그랬겠지요.”

 “하지만 말다툼을 벌였다거나, 뭐 그런 적은 있겠죠?”

 “말다툼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느긋하게 앉아 있었을 뿐이에요.”

 “혹시 말인데요. 다른 여자를 만났나요?”

 “천만에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지는 않았나요?”

 “어쩌다 한 모금씩은 마셨지요. 아시잖아요, 아주 조금씩.”

 “도박을 했나요?”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 레이 브래드버리, ‘레몬 씨의 가발’ 中
 
 두 사람의 대화가 진지하다. 십오 년 차이가 나는 싱글 남녀가 그들이 사는 아파트 포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중년의 레몬 씨가 젊은 프렘웰 양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레몬 씨는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이유가 나이보다는 그의 이마에 난 커다란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멍이 난 그의 이마에 대해 구구절절 프렘웰에게 쏟아붓고 있다. 레몬 씨의 이마에 구멍이 난 까닭은 무엇일까?
언어는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도 전달한다. 마음을 전하는 질병의 통역사에게는 소통의 마음도 필요하지만 대화의 기술도 필요하다. - 르네 마그리트, ‘대화의 기술’
 
▲서로에 닿지 못하는 죽은 단절의 언어
 
 에그버트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냉랭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그는 희미한 종교적 빛에 대해 자기 소견을 말했다. 앤 부인은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에그버트는 차를 따랐다. 앤 부인이 먼저 침묵을 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점심때 내가 한 말은 순전히 학문에만 적용되는 거야. 그런데 당신은 거기에 개인적인 의미를 덧붙인 것 같아.”

 앤 부인은 침묵을 고수했다.

 “우리가 좀 어리석게 굴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

 에그버트가 쾌활하게 말했다.

 “아마 잘못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나한테 있을 거야.”

 에그버트가 말을 이었지만 쾌활한 태도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간일 뿐이야. 당신은 내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에그버트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책임을 져야 마땅한지도 몰라. 그렇게 해서 상황을 좀 더 행복한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고 기꺼이 약속하겠어.”

 에그버트는 안경을 통해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내와의 말다툼에서 지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독백에서 지는 것은 처음 맛보는 굴욕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가겠어.”

 그는 의도적으로 제 목소리가 약간 엄격하고 단호한 울림을 띠게 했다. 문간에서 결국 마음이 약해진 그는 한 번 더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말 어리석게 굴고 있지 않아?”
- 사키, ‘앤 부인의 침묵’ 中
 
 두 사람의 대화가 어색하다. 한 사람만 열심히 말하고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그버트와 앤 부부는 낮에 말다툼을 벌인 듯하다. 앤 부인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있었던 둘의 대화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누가 말실수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에그버트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평소보다 크게 다툰 것은 아닌 듯싶고, 역시 평소처럼 앤보다는 에그버트가 화해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왜 화해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일까? 보통은 내키지 않더라도 화해하고 넘어가는데 오늘은 왜 부부가 따로 식사를 해야만 할까?
오랜 세월 함께 살던 부부가 한 배우자의 죽음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시신과 대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가. 그들에게 사랑의 연가는 없다. - 르네 마그리트, ‘사랑의 노래’
 
▲언어, 정보와 지식을 넘어 마음을 전한다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언어임에도 인간은 왜 늘 소통에 허덕이는 걸까? 정보와 지식이 많으면 그만큼 이해의 속도나 이해의 폭이 빠르고 넓을 듯한데. 소통은 정보와 지식의 양이나 언어체계의 발달정도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미나는 카파시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라즈와 미나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 일찍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았는데도 아직 스물여덟이다. 불살라야 할 청춘이 푸르고 푸르건만 미나는 가정을 지켜야 하고 남편을 내조해야 하며 자식들을 돌봐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이 미나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미나의 외도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상을 부엌에서 분주히 오가는 짓은 이십대에게 지옥일 수 있다. 말할 수도 없고 탈출할 수도 없는 미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물여닯의 미나를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다. 다스 부인이 아니라 그냥 미나로 존재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카파시의 통역이 필요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어떤 것도 털어놓을 수 없는 스물여덟의 청춘은 지금 음성언어의 통역이 아니라 마음을 받아줄 통역이 절실한 것이다. 이런 청춘에게 다스 부인 운운하며 ‘아프냐? 나도 아프다’, ‘죄스럽냐? 누구나 죄스럽다’ 하는 한가하고 밋밋한 통역을 하는 건 청춘에 대한 중년의 배반이다. 질병의 통역사가 아닌 것이다.
 
 “저는 그저 느긋하게 앉아 있었을 뿐이에요. 오후가 되면 셔츠 단추를 풀고 신발을 벗고 앉아 있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뭘 사러 가고 싶다던가, 그런 말은 했지만, 저는 날씨가 너무 덥다고 했지요. 그냥 누워있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제 기분 따위는 헤아려주지 않았죠. 틀림없이 화가 났을 것이고 한 시간 동안 그 일을 생각하다가 망치를 들고 방으로 들어와 내리쳤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날씨 때문에 그 여자도 이상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 레이 브래드버리, ‘레몬 씨의 가발’ 中
 
▲질병의 통역사, 빠롤의 온도가 필요하다
 
 레몬 씨 이마의 구멍은 이런 이유로 뚫렸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오전 잠깐 일을 하고, 오후에는 집안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사람이 레몬 씨다. 그의 부인이 무슨 말을 하건 레몬 씨는 그의 안락한 일상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날마다 그리고 주말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별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레몬 씨의 머리에 망치 구멍이 365개가 아닌 것은 아마도 그의 부인이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에그버트가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나간 뒤에도 앤 부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화를 풀 수 없었다. 앤 부인은 이미 두 시간 전에 죽었다. 에그버트는 부인의 시신과 애써 대화를 시도하다 포기한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 산 부부가 생명이 끊어진 것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무슨 대화란 말인가?

 사람 사이의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역할과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누군가의 사연을 들을 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말하고 바르게 들을 수 있을까? 말하기는 쉬우나 실제로는 쉽지 않다.

 언도(言道)에도 온도(溫度)가 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을 이야기한다. 대화자 상호간의 공통된 규칙성과 상식이 랑그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개별적 감성과 특수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은 빠롤의 범주에 속한다. 언어는 이 두 가지의 특성이 골고루 반영될 때 제 구실을 한다. 랑그가 지나치면 메마르고 차가우며 빠롤이 과잉이면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언어는 정보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이 아프고 병들면 마음을 나누는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는 질병을 통역하는 수단으로서 매우 훌륭한 도구이며 인간은 질병의 통역사로서 제 몫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질병의 통역사에게는 머리에 구멍 날 일도 없고 시체와 대화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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