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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Finnish Journalist Rauli Virtanen<2>
An Account of Gwangju’s 5.18 Democratic Uprising:
광주 5·18 민주항쟁에 대한 이야기
핀란드 저널리스트 라울리 비르타넨<2>
기사 게재일 : 2019-12-18 06:05:02
▲ 2019년 8월 광주 방문한 비르타넨. Virtanen.
Monday the 26th

 The government was asking all the foreigners to leave Gwangju, meaning mostly missionaries and journalists. I remember writing in my report that there was a shortage of food, but some fresh eggs were somehow smuggled into the city; there was no meat or fish. That night, the students were collecting money for a mass funeral.

 The sports gymnasium held all the coffins at that time. I counted 56. Some of them were covered by the Korean flag. At the end of each coffin, you would also have a photo of the student or victim. Those who were not yet identified were outside next to the government building where they let people in groups of 15 come and identify the bodies.

Tuesday the 27th

 Tuesday morning, we heard loudspeakers and the radio saying in English that we foreigners would be in danger if we were outside. Then around four o’clock, I heard shooting and helicopters and that’s when they started the operations. I think it took about two hours for the students to surrender. I took this photo here. It’s funny - I have a similar photo from Kuwait during the Gulf War and it shows the same tactics. The soldiers were detaining people who were suspected of participating in exactly the same way. It’s amazing how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you can humiliate people, and use power to dehumanize.

 GN: Your story is really powerful. From your experience as a foreign journalist in Korea, how did everything shape your philosophy on journalism?

 Virtanen: Well what I’m worried about in foreign reporting is that it is becoming more shallow. Today, where everything is digital, you don’t have so many long stories or background stories. People want to see video clips on their cell phones that are less than 60 seconds. It doesn’t help us understand the problems that are behind the events, for example, on migration or for refugees. You never hear about the ordinary lives of these people. They may be strangers, but they share the same dreams everywhere in the world.

 GN: Lastly, if there were one core message you would like to share, what would it be?

 Virtanen: My main message is, of course, to keep on reading, challenging the fake news, finding facts, caring, and to keep on contributing to a human dialogue, an intercultural dialogue. Keep the humanitarian spirit alive. We are already in such a multicultural world - one should be more open. Closing the borders is not a solution.

 GN: Thank you, Mr. Virtanen, for sharing your story.

 Mr. Virtanen has written seven non-fiction books in Finnish on the topics of humanitarianism, peacekeeping, and foreign journalism. He was a visiting professor of journalism at his university in Tampere during 2015-2016 and currently works as an Espoo city council member directing the board for multicultural affairs. During his visit to Gwangju, he contributed his works and photography to the Gwangju 5.18 Archives.
Interviewed by Seol Yun-Hee
Photographs courtesy of Rauli Virtanen

Seol Yun-Hee recently returned to South Korea after studying abroad in the States. She is enjoying connecting with her Korean culture and is exploring her passion for writing.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September 2019 issue.
Gwangju News is the first public English monthly magazine in Korea, first published in 2001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Each monthly issue covers local and regional issues, with a focus on the stories and activities of the international residents and communities. Read our magazine online at: www.gwangjunewsgic.com

-<원문 해석>-
Virtanen’s report on Gwangju on a Finnish newspaper. 핀란드 신문에 실린 비르타넨의 광주에 대한 기사.

26일, 월요일

 정부는 모든 외국인들이 광주를 떠날 것을 요구했는데, 대부분 선교사들이나 기자들을 말하는 것이었죠. 제 보고서에 음식이 부족했다고 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신선한 달걀도 약간 광주로 밀반입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기나 생선은 없었습니다. 그날 밤, 학생들은 대규모 장례식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관들은 체육관에 있었습니다. 세어보니 관이 56개였습니다. 일부는 태극기로 덮혀 있었습니다. 각 관의 끝부분에는 학생과 희생자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신원 미상의 주검들은 도청사 옆에 있었는데, 사람들을 15명씩 들여보내 시신을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27일, 화요일

 화요일 아침, 우리는 확성기와 라디오에서 영어로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이 밖에 나온다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4시쯤, 밖에서 총소리와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전이 시작된 겁니다. 학생들이 항복하는 데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여기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재미있는게, 걸프전쟁 때 쿠웨이트에서 찍은 비슷한 사진이 있는데, 같은 전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걸프 전쟁 때와 똑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억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어떤 지역이든 사람들을 모욕하고, 권력을 이용해서 인간성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GN: 당신 이야기가 정말 실감나네요. 한국에서 외국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비르타넨 씨의 저널리즘 철학을 어떻게 형성시켰나요?

 비르타넨: 글쎄요, 제가 국제 보도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점점 얕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긴 이야기나 배경을 다룬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60초 미만의 짧은 동영상들만 휴대폰으로 시청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짧은 영상들은 사건 뒤에 숨겨진 문제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난민 이주 같은 문제 말이에요. 이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는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남일 수 있지만, 세계 어디서든 사람들은 같은 꿈을 꿉니다.

 GN: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가 있나요?

 비르타넨: 제가 전달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는 계속 독서를 하며, 가짜 뉴스에 맞서 싸우고, 진실을 찾아내며,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간의 대화, 즉 문화간의 대화에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인도주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세요. 우린 이미 너무나 다문화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더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국경을 닫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GN: 당신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르타넨씨.
체육관에 놓인 56개의 관을 세는 비르타넨.

 비르타넨 씨는 인도주의, 평화유지, 그리고 국제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책을 7권 핀란드어로 출간했다. 그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본인이 다녔던 탐페레에 있는 대학교에서 언론학과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에스푸 시의회 의원으로 다문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비르타넨 씨는 광주 방문 중에, 자신의 사진 작품들들 5.18 기념관에 기증했다.

사진=라울리 비르타넨

번역=이유니 (광주국제교류센터 자원활동가)

설윤희씨는 최근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국 문화와 교류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며, 열정적으로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광주뉴스 2019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광주뉴스는 광주국제교류센터가 2001년에 처음 발행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문 대중월간지입니다. 매월 발행되는 각 호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지역민의 활동과 지역사회의 이야기 및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잡지를 볼 수 있습니다. (www.gwangjunewsg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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