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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신대철 ‘아주 행복해보이죠?’ & 피터 웨어 ‘트루먼 쇼’
안전한 세상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9-12-23 06:05:02
▲ 영화 ‘트루먼 쇼’ 중. 우리가 리얼리티 쇼를 즐기는 이유.
 이 상점엔 사람이 만든 것 일색이군요.
 그럼, 저건 어떠신지? 폭발적 인기죠.
 아주 예쁘게 웃는데요? 인형이군요.
 아주 행복해 보이죠?
 조그맣고, 사람 맘에 들게 웃고, 눈물도 없고…….
 - ‘아주 행복해보이죠?’, 신대철
 
▲세상이라는 세트장
 
 아기가 방송국에 입양됐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세상으로 편입되는 것처럼 트루먼 버뱅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방송국에 속하게 되었다. 순전한 우연이었다. 입양 후보 다섯 명 중 방송일정에 맞춰 나온 태아. 이후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은 50억이 애청하는 24시간 생방송 리얼리티 쇼가 되어 전 세계로 팔린다. 작은 국가의 1년 수익에 맞먹는 운영비, 인공 달과 해. 태풍과 집중 호우를 만드는 인공 기후 조절장치까지 갖춘 거대한 세트장 씨 해븐. 트루먼은 이 섬에서 학교에 다니고, 결혼하고, 보험설계사가 되어 성실하게 살아간다. 수만 개의 카메라가 거리와 자동차안, 화장실 거울에 부착되어 오직 트루먼을 관찰하고 찍고 전파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하늘에서 조명 장치가 거리로 떨어져 깨진 사건이 의심의 발단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로, 건너지 못하는 바다를 바라보던 어느 날 밤의 소나기가 문제였다. 사소한 기계 결함으로 비를 내려 트루먼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던 각본이 하필, 트루먼이 앉은 자리에만 둥그렇게 쏟아졌던 것이다.
 
 세계는 진실한가. 만나고 듣고 접하는 기사와 정보들은 사실인가. 의심하지 않고 믿고, 확인하지 않고 전하며 지엽적 단편을 일반화하여 편리하게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내가 믿던 사실이 진실의 한 단면일 뿐임을 알 때, 잘못 내린 비를 맞은 트루먼처럼 당혹스러운 적 몇 번이던가. 더욱 나쁘기로는 트루먼을 강타한 소나기처럼 나의 섣부른 단정이 누군가를 아프게 했으리라는 의혹이다. 안정된 지반이 흔들리는 것, 불현듯 한 충격은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그 조짐이 마치 풍문처럼, 바람에 날리는 전단지처럼 띄엄띄엄 흩날리다가 ‘훅’하고 한방을 먹여오는 것이다. 트루먼에게 라이트 훅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등장이었고 레프트 훅은 같은 시각, 같은 거리에서 각본대로 움직이던 엑스트라들의 규칙적인 동선과 씨 해븐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운행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였다. 트루먼은 바다를 건너 탈출한다. 트루먼의 배가 수평선 세트장 벽에 부딪히고, 그려진 하늘을 주먹으로 치며 울 때 하늘 저 위에서 울려 퍼지던 방송국 수장 크리스토프의 전지전능한 목소리. “트루먼, 난 너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너는 나갈 수 없어, 트루먼. 바깥은 위험하지만 씨 해븐은 안전해. 너는 언제나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외면했지. 지금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야. 여기서 너는 스타야, 돌아 오거라.”
 
 그러나 쇼는 끝났다. “다시 못 뵐지 모르니 미리 인사드리죠. 굿모닝, 굿 애프터눈, 굿나잇” 트루먼이 최초로 자신이 인식한 세계의 청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비상구 밖 어둠을 향해 ‘줌 아웃’할 때 30년 동안 트루먼에 열광하던 전 세계의 사람들은 벌써 무심하다. “채널 돌려봐.”
 
▲영화라는 허구가 알리는 진실
 
 세상에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관성과 거부하지 않는 관성들이 있다. 중력은 오늘도 등을 내리누르고 호흡을 통해 들어온 산소가 온몸을 도는 동안 몸밖의 별들은 태양을 운행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율법들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매달리고 사실이 아닌 일에 대의를 바치며 시간을 쏟아 몰두한다. 가령 미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단련하기 위함이 ‘공부’다. 성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노력의 과정이 곧 ‘배움’이다. 참아야할 현재가 아니라 즐김을 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음을 누리는 일이 ‘삶’이다. 진실은 보려고 하면 도처에 널려있건만 텔레비전 광고처럼 미화된 혹은 가장한 신념들은 “그것만이 세상”이라 외치며 인간 안으로 파고든다.

 트루먼의 아내인 메릴이 등장해 선전하느라 바쁘던 콘플레이크와 조리도구, 잔디 깎기 기계들은 PPL을 은근히 비꼬는 풍자이자 익살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물신의 양상을 보이는 일말의 진리이기도 하다. 매번, 적확한 음성으로 상품의 장점을 알리는 메릴을 향해 트루먼은 “대체 누구를 향해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 메릴이 말을 거는 대상은 불특정 다수이며 사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메릴에게 중요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상품에 대한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끝없이 하나의 물신에서 다른 물신으로 갈아타게 하는 일에 의해 그녀의 역할이 갖는 위상은 오르고 몸값은 높아진다. 친절한 아내를 연기하는 메릴, 메릴의 역할에 심취한 청중들이 그녀가 제안하는 제품을 살 때, ‘트루먼쇼’라는 텔레비전 속 세트장은 텔레비전 바깥으로 확장돼 세상 자체가 한편의 거대한 ‘트루먼쇼’ -진실한 사람들이 벌이는 쇼-가 되는 것이다.

 근대를 연 철학자 데카르트는 엉뚱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세상이 진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세계의 상(像)은 감각기관을 통해 구성되는 세계이므로 객관적이며 절대적이지 않다. 추상적 사유도 의심스럽다. ‘1+1=2’라는 자못 엄정한 수학적 체계마저도 어떤 짓궂은 악마가 나의 머리에 그렇게 믿게끔 넣어둔 거짓일지 누가 아는가.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한 후 데카르트가 내린 단 하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것이었다. 바로 지금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알려진 유명한 철학적 명제이자 방법적 회의를 가리키는 ‘코키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므로 의심을 품어보는 회의(懷疑)란 자기 진리에 이르는 열쇠이자 사유를 위한 첫 단계다. 의심은 트루먼을 가둬두려던 크리스토프라는 유사 아버지와 씨 해븐이라는 잘 포장된 거짓에서 실비아라는 사랑으로 움직이게 한 동력이었다. 영화의 말미,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크리스토프의 단언에 트루먼은 묻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있나요? 트루먼을 의심하지 않았던 크리스토프의 완패다.
박혜진<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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