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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연홍도 사람들<3>
기사 게재일 : 2019-12-27 06:05:01
▲ “없는 사람을 더 우대하자, 그 정신이 있었제” 김봉추.
 “고향을 한번도 안 떴제. 도시바람이 어째 나한티는 안 불었어. 안 불어서 안 갔어, 허허.”

 고향을 지키고 살아온 한평생을 그렇게 말하는 할배.

 “함자가 봉자 추자 되십니까” 여쭸더니 깜짝 놀라신다.

 “어찌 내 이름을 아요?”

 방구석 택배 상자에 쓰인 이름을 가리켰더니 할배가 상자에 대고 짐짓 타이르듯 건네는 말씀이 유머러스하다.

 “너, 저리 보고 있제, 왜 이리 봤냐.”

 김봉추(84). 받들 봉(奉), 가을 추(秋).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 집 마당의 풍경 하나. 옹잘옹잘 야무진 녹두가 키에 담겨 알알이 빛난다. 바람이라도 불면 키가 후떡 날아갈세라 그물쪼가리로 묶은 작은 돌멩이로 눌러놓은 채다. 가을볕 귀하게 잘 쓰는 그 일도 ‘가을을 받드는’ 풍경이 된다.
 
한번도 고향을 뜨지 않고 뿌리내린 한생애

 “옛날에 여가 김이 좋았제. 일본으로 수출했어. 일제때 김 등급이 송·죽·매·동·추·풍·등이 있고, 등외가 있는디, 연홍도 김은 ‘추’나 ‘풍’을 맞았어. 추나 풍만 맞아도 김값이 좋았제. 파지가 없고 된 볕에 등이 갈라지거나 트지 않고 파래나 이런 거 안 끼고 그런 김이 좋은 김이여. 파래가 끼문 맛은 더 좋아. 그래도 등급은 더 낮았어.”

 지주식 김농사는 말을 박는 게 고된 일이었다.

 “솔나무도 있제만 참나무가 좋아. 수명이 더 길고 사람 말을 잘 듣거등. 세와서 여그다 꽂아야것다 하문 잘 들어가. 말 안 듣는 나무들도 있어. 낙엽송 같은 거는 바다에 찌르문 부력이 커서 잘 안들어가. 이리 가까 저리 가까 흔들려. 그러문 정한 자리로 못 들어가. 혼자서 못 질러. 뜬께. 참나무는 무가서(무거워서) 제 힘으로 그냥 들어가. 오래 쓰고.”

 흔들림 없이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할배, 그 참나무 같은 사람이런가.

 김은 작은 섬 연홍도를 사람들로 들썩이게 했다.

 “김값이 좋았을 때는 여가 사람들이 꽉 찼었제. 그때는 의지할 집이나 방만 있으문 들와서 살았어. 한국에서는 연홍이 인구밀도가 제일 높을 것이라 우리들이 그랬거등.”

 집들이 120호에 달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60집 정도다.

 “인자 다 늙고 힘이 없어서 인간이 할 일을 다 못해.”

 그 ‘할 일’이란 “농사도 하고 고기도 잡고 그래야 하는디”란 말 속에 담겼다.

 “농토가 놔두문 산천이 되어불제. 사람 손이 가문 농토고 놔두문 산천이고. 초목만 우거지제.”

 지난 시절에는 한없이 절실하고 간절했던 땅들이다.

 “우리 아이들 배불리 믹여서 키와야겄다, 그때 어무니들은 그 정신으로 몸을 애끼들 않고 일했제.”

 할배가 “가수 진성이 부르는 ‘보릿고개’ 노래 들어봤소?”묻는다. ‘아야 뛰지 마라 배꺼질라…’로 시작되는.

 “긍께 고구마를 많이 심었제. 옛날에는 방도 잘잘한디 그것도 반절은 칸을 막아서 고구마를 쟁여놓고 살았어.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내내 묵어. 봄이 오문 이 나물 저 나물 나물 캐다가 끼니를 잇고. 나물밥 해서 늘켜 묵고 바다에서 톳 캐다가 톳밥을 해서 늘케 묵고. 없는 사람들은 톳밥 많이 묵었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땀흘려 땅을 일구어낸 역사는 연홍도에서 여전히 귀하게 간직돼오고 있는 공동의 기억이다.

 “60년대 초반쯤에 저 건네 김일체육관 바라다보이는 거그다 주민들이 자치로 논을 만들었어. 저 건네 둑이 있제, 그 안에 연홍 사람들이 단체로 나서서 원을 막아서 만든 논이여. 무건 갯돌을 이고지고 배에다 실어서 푸고 푸고 해서 막았제. 없는 사람들, 빈한한 사람들 땅 가지고 살아가라고 더 존 디로 띠어주고. 없는 사람들을 동정하자, 해갖고 더 우대를 해줬어. 있는 사람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 위주로 다 평등하게 벌어서 묵고살자 그 뜻이었제.”
 
새끼 젖먹이려 바다 헤엄쳐 건너던 에미소

 저 건네 논으로 배 타고 농사 지으러 다니던 시절은 이제 다만 추억이 되었다.

 “농사 지슬라문 얼매나 힘들었제. 논갈이 할 때문 소도 마을에서 배로 실코 갔다 실코 오고. 각자 자기네 작은 목선을 노 젓고 가는 거여. 그때는 소도 그랄 줄 알고 배에다 실으문 카만 있어. 소가 영리해. 저 동네 가서 거서기 하더라 하고 알아서 가. 의젓하게 가.”

 그 시절 이야기 한 토막.

 “소가 새끼를 나문 집에다 새끼만 매놓고 저건네 가서 논밭 일을 하는디 거리가 짧은께 어짤 때는 지가 헤엄쳐서 와불어. 우리 새끼는 굶고 있는디 내가 가야 새끼가 배불리 젖을 묵을 거 아니냐 그 생각을 하고. 나를 얼마나 지달리고 있으까 그 생각을 하고. 짐승 생각이나 사람 생각이나 새끼 생각하는 마음은 같은 것이여. 저그 목이 썰물에나 들물에나 상당히 씬디 물에 받쳐서 떠날라가도 건네와. 새끼 젖줄라고, 그 정신으로. 새끼 없는 소들은 다 배타고 오제. 썰물 돼서 물이 쑥 빠지문 배가 출발도 못하고 있는디 새끼 나서 집에 두고 온 에미소는 그동안에 발버둥을 쳐. 그러다 고삐 매놨던 거이 끌러져불문 헤엄쳐서 와부는거여.”

 그 시절 어미소의 사정까지 헤아리며 할배는 사람이나 소나 그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었노라고 말한다.

 “어찌 보문 사람이 참 독하제. 근디 묵고살란께 그거이 다 어짤 수가 없는 일이었어. 어떤 때는 소가 일하다가 논 바닥에서 새끼를 나(낳아)불어. 글문 어른들이 지게에다 송아지를 지고 오고 그랬어.”
 
 “우리 연홍이 단체심이 아조 좋아”

 억씨게 농사 짓고 바닷일 하던 그 시절, 일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것은 마을 사람들 함께 어우러지던 재미였다.

 “연홍 사람들이 단체심이 아조 좋아. 예전에는 8·15 해방 기념으로 매년 8월15일에 금산면소재지 금산국민학교에 금산면 마을들이 다 모태서 체육대회를 했거등. 배구 씨름 달리기 이런 거를 하는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아조 잘했제. 우승하문 받는 우승기를 다음해 체육대회를 할 때 갖다가 게양해 놓고 하는디 3년 연속 1등을 하문 인자 그 마을 기가 되는 거여. 여그 사람들이 3년을 계속 우승했는디 그 우승기를 안 줄라고 도망치는 놈을 잡을라고 담박질을 치고 뉩혀서 뺏고 한바탕 난리가 났제.”

 돌아보면, 그런 즐거운 난리가 있었다.

 “특히 씨름을 잘 했어. 하여간 씨름만 붙이문 연홍이 1등을 나갖고 송아지를 차지했제. 2등 상품은 보릿가마니, 3등 상품은 마포였어. 체육대회 앞두고는 동네 장정들이 한 달내 밤마다 저어그 모래밭에 모태서 달리기도 하고 배구연습도 하고. 그러다가 뱃바닥에 가서 잠을 자고. 배 한 척에 칠팔 명썩 자고 그랬어. 그러코 한테 어울림서 고된 일에서 해방되는 시원한 재미를 봤제.”
“존 놈 나쁜 놈 다 섞여서 시끌시끌해” 장정자.

 “나는 이것 시고 있네. 어짠 사람은 돈을 시고 있을 것인디.”

 할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껏 고개 수그린 채 진품명품 감정이라도 하듯 톺아보고 있는 것은 녹두알.

 “물짠 놈 추려내니라고. 뚜드러서 금이 벌어져불었네.”

 가을볕은 이리 훤한데 할매는 “우짜꼬, 눈할라 침침해갖고”라며 더욱 골똘히 들여다본다.

 “자석들이 요 정성 몰라줄지언정 주는 재미는 어디로 안 가.” 자식 넷한테 ‘고로고로 나놔줄’ 녹두다.

 “존 놈은 자석들한테 보내고 나는 물짠 놈 묵고.”

 한 톨도 할매한테는 한없이 귀하다.

 “농사진 사람한티는 한 톨도 귀하제. 이녁이 땀을 흘리문 귀하고 이녁 땀이 안 들어가문 시피 보고 그런 벱이여.”

 태풍이 잦았던 올해, 할매는 애를 태웠다.

 “여영 못씨게 돼불었어. 꽤도 못허고 꼬치도 못허고. 바람이 때려불어.”

 할매는 금산면소재지에서 시집왔다.

 “여그는 김 일이 숴랍다고, 부모네가 욜로 보냈어. 여그는 보선 신고 김 뜯으러 간다고. 다른 디는 뻘에 빠짐서 맨발로 걸어댕개얀디 여그는 발 안빼고 김 한다고. 그래도 김이 숴랍가니. 우리는 고생 많이 하고 살았어. 시대를 잘못 만냈어.”

 ‘없는 시상’을 만났노라는 할매.

 “긍께 자석들도 공부 제대로 못 갤치고. 자석들을 갤쳤다문 즈그들도 고생을 안하거나 덜할 거인디. 근디 애기들이 착해갖고 원망이 없어. 더 미안시롭고 더 짠하제. 긍께 다만 요런 것이라도 보내고자퍼. 항시 주고만자퍼.”

 신중히 추려내는 손길 그치지 않는 할매.

 “나쁜 것조차 많이 섞였네. 존 놈 나쁜 놈 다 섞여서 시끌시끌해.”

 뒤섞인 그 속을 할매는 시끌시끌한 세상이라 말한다.

 “이 시상도 존 사람만 살문 시끌시끌 안할 거인디. 벌어진 것 노랗게 된 것 빼낼라고 공력이 이러코 들어가네. 요놈을 기양 한테다 놔뚜문 벌레가 생개. 존 것까지 나쁘게 맹글어불어.”

 한사코 존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손길. 할매의 지성스런 손길따라 시끌시끌하던 한세상이 말갛게 평정되어 간다.
[사진1]
 “애자 오네” “애자 가네”….

 누구가의 오고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에서 선착장에서 ‘오늘의 뉴스’처럼 말해진다.

 “항, 우리 연홍도에서는 유명하제.”

 집배원 남애자(49)씨다. 금산우체국 소속으로, 연홍도 우편배달을 도맡은 지 14년.

 “지금은 배가 아주 큰 편이고요. 예전엔 진짜 쪼그마했어요. 파도가 치문 기우뚱 기우뚱….” 조마조마한 순간들 많았던 출퇴근길이었다.

 섬 구석구석 가가호호 애자씨의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눈 감고도 온 동네 60여 집집이 훤하다. 어느 집이든 이무롭게 들어선다.

 “어매”라고 정답게 부르는 그이를 어매들도 모두 딸처럼 대한다. 때로는 이름으로 부른다.

 동네서 제일 나이 많은 아흔넷 할매한테도 “효덕씨”라고 부른다. 할매가 웃는다. 다른 어매들이 “누구는 이름 불러주고 나는 왜 이름 안 부른가”라며 귀여운 질투를 하기도 한다. 어매들도 정작 잊고 사는 이름을 자꾸 자꾸 불러주는 애자씨.

 “자식들한테는 통장 못 맽겨도 우리 애자한테는 믿고 맽긴다”는 어매들을 대신해 은행 심부름도 하고 공과금 심부름도 한다. 어매들이 부탁하는 급한 생필품도 사다 나른다. 한글 못 읽고 눈 침침한 어매들한테 우편물 읽어드리는 것도 애자씨의 일.

 “혼자 사시는 어매들은 많이 아파도 자식들 걱정 안시킬라고 쉬쉬 하고 병원에 가시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럴 때 자식들한테 전화해서 아프시다는 소식도 전해드리고.”

 그래서 애자씨의 핸드폰엔 연홍도 자식들네 전화번호가 많이 저장돼 있다.

 “섬에선 자식들이 멀리 있다 보니까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식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어매 얼굴이 벨라도 훤하고 이뻐 보일 때면 사진을 찍어서 자식들한테 보내기도 한다. 애자씨가 연홍도를 오간 십여 년 동안에도 열너댓 분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 “더 잘해야죠”라고 딸 노릇을 다짐하는 애자씨.

 “근데 연홍도 자식들이 다들 효자효녀에요.”

 그냥 덕담인가 했더니 “택배 많은 걸 보문 알거든요”라고 말한다.

 “자식들이 부모님 드시라고 간식거리며 두유며 과일이며 그러코 많이 보내요.”

 택배 물품이 많다 보니 불끈 힘쓸 일이 많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철철이 나는 생선이며 김치며 파래며 마늘이며 도시 자식들한테 내보내느라 늘 택배가 많다.

 “일하면서 제가 더 고마운 게 어매들이 그렇게 정을 주고 마음을 주셔요.”

 참기름이며 깨며 콩이며 김치며 한없이 나누고 건네주는 주름진 손들과 인정을 만나고 또 만난다.

 오늘도 애자씨 가는 곳엔 어매들 웃음꽃 핀다.

 “저도 잘 몰랐는데 중학교 동창회서 만난 친구들이 저를 ‘잘 웃던애’라고 기억하더라고요.”

 그 명랑한 웃음도 날마다 연홍도에 배달하고 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뉴스검색제공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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